(2020. 12. 19.)
교육부와 조선일보가 함께 교사들에게 주는 '올해의 스승상'이라는 게 있다. 예전에는 승진 가산점 포함해서 상금을 주며 15명을 선발했는데, 최근에는 승진 가산점이 폐지되고 2천만 원 상금에 7명이 매년 수상한다.
응모 공문이 떴을 때 교장선생님께서 내게 응모해보라고 하셨다. 그 상의 무게와 규모를 이미 알고 있던 난, 그럴 깜냥이 안 된다고 말씀드렸지만 있는 모습 그대로 공적조서를 제출하면 될 거라고 강권하셨다. 특히나 올해는 코로나 상황에 관련된 항목이 신설되었으니 기회일 거라며.
당연히 응모를 한다는 건, 가능성을 두고 있다는 것이고 그 상에 욕심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된다. 응모해도 수상의 가능성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때는 그저 그 상에 대한 욕심 여부를 따져보는 것 자체가 내게 무의미했다.
그리고 이미 상반기에 써 둔 공적조서(TMI: 대개 상 받을 사람을 학교 대표로 응모시킬 때 학교에서 인사자문위원회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적격자를 추천하는 과정을 거친다. 딱히 원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결정된 사항을 난 통보 받고 응모에 필요한 공적조서를 작성했었다)로 별로 애쓰지 않으면서 응모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2배수에 선정되어 학교에 실사를 나온다는 것이었다. 난 처음부터 그런 게 싫었다. 2배수 뽑힐 리도 없지만 그 과정에서 학교에서 실사 준비를 해야 하고, 동료 교사, 학생, 학부모 무작위 면담이 진행되기 때문에 민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현실이 되었다.
민폐 끼치게 된 것이 미안해서 교장선생님께 상황을 보고드리니 실사 나오면 하나의 거짓도 없이 있는 그대로 다 얘기하면 되니 오히려 더 유리할 거라고 격려만 하셨다.
약속된 날에 교육부 직원과 신문기자가 정해진 자리에서 비밀리에 무작위 면담이 진행되었고, 마지막으로 난 면접을 보게 되었다. 난 별로 실감 나지도 않았고 상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면접에 대한 준비는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좋은 경험일 거라는 생각으로 횡설수설하듯 그저 솔직하게 답변하였다.
이렇게 열심히 활동을 하면 다른 선생님들의 부담은 없겠는지에 대한 물음에 난 선생님들께서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자기 모습에 맞는 역할들을 다 훌륭하게 하고 계시고 내가 하는 건 뭐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영어멘토링이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라고 했다.
교육부장관상을 받은 이력에 대해 무슨 공적으로 받았냐고 묻길래 뭘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경력이 쌓이고 순번이 되어 받은 것 같다고 하여 그분들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이런 자리가 부담스럽고 이렇게 될지 몰랐다고 하며 응모하게 된 것도 교장선생님으로 인한 것이라는 핑계까지 대고 나니 좀 구차해졌는데, 2배수 안에 든 것만 해도 대단한 거라고 면접하시는 분들이 격려(?) 해주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면담 시 나를 오랜 기간 봐왔는데 일회성의 이벤트가 아니라 20년 전부터 이때까지 학생들을 위한 진심이 "한결같다"라고 얘기하셨다고 했다. 감사했다. 내가 들을 수 있는 칭찬 중에 극찬이었다.
그리고 잊고 지낸 줄 알았는데. 실사 과정에서 학교에 소문이 다 났고, 검증 과정을 거치기 위해 교육부 홈페이지와 학교 홈페이지에 검증할 수 있는 내용을 보내달라는 게시글이 올라갔기 때문에 주변의 관심을 모른 척 다 떨쳐내긴 힘들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탈락의 결과를 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2배수 안에 들지 않고 탈락한 것보다 더 확실한 임팩트가 있는 탈락이었다. 올림픽에서 은메달 딴 선수보다 동메달 딴 선수가 더 행복해보이는 게 이해가 되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sour grapes라는 용어가 있다. 시도는 해보았으나 손이 닿지 않는 포도가 어차피 시어서(sour) 못 먹을 거라며 포도를 뒤로하며 자기합리화하는 여우의 모습을 담고 있다. 지금은 거기에 내 모습도 담겨 있는 듯하다. 차이가 있다면 난 시도를 하기 전부터도 이미 합리화 중이었다는 것이다.
최종 발표가 나기 전까지는 그래도 거의 2 대 1의 확률인데 나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마치 이래도 욕심 안 부리는 척, 괜찮은 척할 거냐고 나를 시험하고 있는 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혹시라도 수상을 하게 된다면? 그건 나보다 더 묵묵하게 훌륭하게 자리를 지키시는 분들이 이런 수상에 욕심을 내지 않고 나서지 않아서일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받지도 못할 상금이 부담이 되었다. 정당한 노동으로 주어지지 않은 것이니, 그 상이 지상목표인 것처럼 나의 교직생활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니, 받은 상금 기부할 곳을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모든 상금을 다 공개적으로 기부해야 한다는 와이프의 한발 앞선 설레발에 발끈해가면서도 어쨌든 나에게 맡겨진 무거운 짐이 될 것 같아 공상 속에서 큰 부담이 되었다.
책을 뒤적거리다가 아벨과 가인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가인은 아벨의 제사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보고 시기와 질투로 동생을 해쳤던 인물이다. 그의 제사는 분명 순수한 의도가 아니었고 제사로 인한 부수적 대가에 더 초점이 있었던 것이었다. 가인의 모습에 내 모습이 비쳐 보였다. 학생에 대한 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 있고 이런 활동은 세상적 계산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왕이면 세상에서도 주목받고 인정받으면 그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건, 나 자신의 자존심과 성취감을 위한 욕심일 수도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정말 나는 순수하게 아이들을 위하고 주님의 영광을 드리는 그런 예배의 삶을 살고 있는가 다시 돌아보았다. 어떤 이유로든 수상을 비껴간 건, 이후의 다른 성취를 기약하는 것이 아닌 순수성을 해칠뻔한 위기를 넘겼다는 데에 대한 안도감과 감사가 넘쳤다.
칭찬은 부드러운 구속이다. 그걸로 인해서 나의 삶이 규정되고 다른 사람이 눈치를 보며 거기에 맞춰진 틀에 맞춰진 그런 삶으로는 진정한 사랑을 전하는 삶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었을 테니...
물론 처음엔 2배수 안에 든 것만 해도 신기했다가도 떨어지고 나니 내게 무슨 큰 결격사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상상하며 우울감이 들긴 했다. 아예 신경을 안 썼던 건 아니었던 거다.ㅋ
이렇게 좋은 경험을 자초(?) 하여 개인의 성장을 이루었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실은 처음부터 응모를 하는 게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는 지금으로서는 더 크다. 글로 옮기고 나니 탈락한 자의 넋두리나 자기합리화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교사로서의 삶을 의식적으로라도 다시 돌아보게 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그리고 경우가 다르긴 하겠지만 기대를 했건 안 했건 문턱에서 좌절하여 부적격자라는 패배의식을 느끼는 이들에 대한 공감의 마음을 하나 더 배우긴 했다. 아픔은 사명이라 했으니 난 또 하나의 사명이 추가된 것이었다.
나의 교사로서의 삶의 목적은 무엇이었나? 인정과 칭찬에 따르는 대가나 보상이었던 것인가? 돌아볼 기회가 되었다. 수상을 하면 따라올 수도 있는 후광효과에 입맛을 다시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의 교육 활동이 누군가에게 더 쉽게 더 영향력 있게 전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교만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유명해지는 명예와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명예욕과 별로 다르지 않았을 수도 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과장된 효과를 전제로 하는 후광효과에 기대려 했었다는 것도 부끄러웠다. 학생들 교육하는데 전념한다는 이유로 후광효과를 얻을 수 있었던 교과서 집필의 기회도 거절했던 그 마음이 잠시 실종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용히 사명을 다하며 살고 싶었는데 요즘 교육청 수기에도 실리고, 교육신문에도 소개되고 하여 올해는 강연을 나갈 기회가 좀 생겼다.
교사로서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만나고 있는 학생들이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아픔과 좌절을 겪는 이들에게 행복을 전하고 싶다. 복음을 바탕으로 한 행복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부족한 나를 통해서도 위로의 메시지로 전해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