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는 인정에 대한 욕구가 있다. 특히 충분히 존중받지 못한 성장 배경이 있는 사람들이나, 인정을 받았더라도 그 인정만으로 정체성을 부여받고, 칭찬이라는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던 사람들은 끝없는 인정에 대한 갈구함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요즘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을 아내가 계속 보면서 사춘기 딸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으로 반성문을 쓰고 있다. 우연히 한 엄마가 어린 시절 인정받지 못한 좌절감으로 인해 사춘기 아들과의 관계가 위기를 맞는 장면을 함께 보았다.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거나 자신의 열심에 대해서 충분한 행동이나 말의 반응이나 보상을 받지 못하면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던 엄마에 대해 내가 격하게 공감을 하니까, 아내가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며 이렇게 되물었다. “계속 1등 하던 사람이 할 말이 아닌 것 같은데”
그게 문제였다. 오히려 성적과 관계없이 아이들과 뛰놀며 즐겁게 지내던 초등학교 5학년까지는 괜찮았는데... 1등을 하기 시작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나는 스스로 감당하기도 버거운 짐을 계속 져야 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것 같은...
다른 사람들은 부러워하며 사치스러운 걱정을 한다고 반응할 것이 뻔하여서 그 무게는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했다. 고등학교 때 보았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성적에 대한 부담으로 자살하던 주인공에 나를 완전 감정이입시키면서 통곡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위로했던 생각이 떠오른다.
얼마 전 그 당시 일기 같은 기록을 읽어보았다. 내 기억 속의 고통스러움, 그 이상이었다. 난 내 일기장에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었다. 끝없이 쓰고 또 써도 해결되지 않는 나의 괴로움은 신체적인 증상으로도 나타났다. 다섯 군데 병원에 가서도 이상이 없었는데 6번째 병원에서 대학 시험 끝나면 낫는다는 처방을 해준 것이 기억이 난다.
나는 나의 정체성과 가치가 나의 성적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주목을 받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아버지가 목사님이셔서 난 대외적으로도 멀쩡하고 모범적인 자녀와 학생임을 강요 당하는 소위 연극증후군에 시달리게 되었다. 나의 부정적인 감정과 연약한 모습은 철저히 감춰야 한다는 책임감이 너무 강하게 작용하였다.
그 당시 나의 신앙도 복음을 몰랐던 율법주의의 열심을 따르고 있어서 지금 고통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아니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고 정말 잘해서 그 영광을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농촌이라는 지역사회와 학교, 교회 공동체, 중소도시 고등학교 등에서 난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학교와 지역사회와 교회의 대표 선수처럼 반드시 서울대를 진학해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을 가진 사람처럼 살았다.
이미 나의 결론이 정해져 있는 그 길은 늘 좌절스러웠다. 과정 중의 실패와 좌절이 용납되지 않았으며 매 순간 나는 확신이 필요했지만 매번 충족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성적이 잘 나올 때는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더 커졌고, 성적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난 세상 잃은 심정으로 주변의 아름다운 꽃향기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결론에 이르는 과정 중에 나 스스로와 사람들의 기대에 충족해야 한다는 확신을 갈구하는 마음으로 순간순간을 버텨냈다. 공부가 즐겁기도 했지만 그 즐거움마저도 내게는 사치였다. 난 충분히 고통스럽게 공부를 해야만 원하는 것을 이뤄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교류를 거의 하지 않고 왕재수처럼 지냈다. 나의 목표를 위해서는 인격과 인간적인 것을 포기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난 결국 가치 없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 속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에 대해서 그 칭찬과 격려에 대해서 한없이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도 난 늘 죄책감으로 살아야 했다.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그 이상의 뭔가로 다시 보상해 드려야 할 것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목표가 가시화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게 되는 극단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그렇게 난 그 극단 비슷한 데까지 가 보았던 셈이다.
그리고 결국은 서울대를 지원해서 탈락하였다. 그 당시 전화 ARS 너머로 불합격했다는 결과를 알려주는 음성을 탈락이 확정되었음에도 어머니는 굳이 직접 들으시고는 오열하셨다. 나 같은 불효자는 없을 것 같았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고등학교에서 입학 당시 약속했던 서울대, 연고대 진학 시 4년 등록금을 지원받을 기회도 날렸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서울대 떨어지고 나서는 은사님이라고 생각했던 분들도 나와의 연락을 끊으셨다. 겪어보니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 기대는 인간인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응원하는 것이 아니었고 나의 행위나 실적에 대한 찬사였다. 그걸 기대할 수 없게 된 순간 사람들은 즉시 그 기대와 응원을 거두었다. 결국 알게 된 것은 다른 사람의 관심이나 이목은 나의 삶의 결정과 행로에 본질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깨달음은 다른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내가 만든 허상과 착각 속에 혼자 괴로워했던 거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끔찍한 순간과 그전의 눌려 지내던 나의 삶은 오히려 탈락으로 인해 은혜의 자리에 나아가는 기회가 되었다. 백수 같은 재수생에게는 어떤 대학을 떨어졌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난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그 인생의 바닥에서 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고 은혜의 복음을 알게 되었다.
궁극적인 목표를 이루지 못한 나는 더 이상 성적으로 나의 정체성을 증명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난 오히려 자유하게 되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아직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선택보다는 어른들의 강요로 자신의 정체성을 매 순간 그리고 궁극적인 성취로 증명해야 하는 힘든 삶을 지켜내고 있다.
특히 우리는 자신의 성취를 증명하는데 객관적인 자료라고 생각하는 서열을 중시한다.
대학은 서연고서성한이중경외시.. 등의 서열이 매겨져 있다.
고등학교는 과학고, 영재고, 외고, 국제고 등의 특목고와 전국 단위 자사고와 일반고 등으로 나뉜다. 그 특목고 중에서도 서열이 있다.
그 자리를 성취해낸 노력에는 박수를 보낼 수 있지만 그것이 특권의식으로 작용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특권의식이 성장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해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저 자신의 역량껏 최선을 다하다가 처하게 된 그곳에서 행복하게 자신만의 성장을 이루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학생들은 이런 서열에 민감하다. 성균관대 다니는 딸이 '성하예프'라는 그들만의 서열을 말해주었다. 성균관대 밑에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대학이 있다는 말이다. 그들만의 자부심이다. 그런데 성균관대에는 BTS가 많다고 한다. 'Back To 성균관대' 즉 성균관대 학적을 유지하면서 반수를 하여 서연고, 혹은 의대를 노리다가 결국 다시 성균관대로 돌아오는 학생들을 말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자부심과 현실의 모순된 상황이다. 지방 국립거점대학 학생들이 성균관대보다 자신들이 수준이 높다는 말에 대해 성균관대 자신들이 연고대보다 높다고 말하고 있는 것에 빗대어 그 심정이 이해가 된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한다는 말도 들었다.
결국 이 모든 서열이 기득권으로 작용한다. 기득권을 포기할 필요는 없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성장이다. 행복을 포기하면서 이 순간을 고통스럽게 살 필요는 없는 거다.
난 결국 지방대 출신이 되었다. 서울대 지원했으면 합격하고도 남을 성적이었다는 가정법적인 이야기는 현실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찌질하게 들린다. 나의 사례를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인생 그따위로 살지 말라고 분노를 하기도 한다. 그러니 무엇을 할 뻔했다는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은 거다.
특목고에 가거나 서열 위의 학교를 가면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자리에 올라갈 확률이 높아지긴 한다. 우리나라처럼 표준화된 기준으로 생각하며 행복의 크기를 재는 곳에서는 특히 더 그럴 수도 있다.
(물론 소위 높은 서열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나의 말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성취를 위해 갈 만큼 끝까지 가봤던 내 입장에서는 결론을 정해 놓고 몰아가는 것이 얼마나 서로에게 아픔과 고통이 되는지는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난 딸들과 학교의 학생들에게 행복할 권리를 늘 일깨운다.
사춘기 아이들은 공사 중이다. 그 공사 과정으로 우리는 함부로 아이들의 능력과 미래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길을 걷는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해서도 안 된다.
치열한 경쟁구도에서 오히려 사치스러움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모두가 이런 마음으로 행복하면 좋겠다.
과정을 즐기고 누리며, 결국 마지막 걸음이 내디딘 그곳이 도달점일 것
결국 “행복할 만큼만”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충분히 행복을 누리지 못했던 뒤늦은 후회를 담아 이런 말도 해주고 싶다.
Stop and smell the ro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