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학습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교실대화의 기술>이라는 부제가 붙은 교사 언어생활 지침서 같은 책이다.
물론 모든 상황에 정답 같은 지침을 주지는 않지만, 다양한 상황에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친절하게 잘 설명하고 있다. 대본처럼 암기해서 말을 어떻게 할지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어떤 원리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사실 교사의 말은 화술보다는 교사의 인격과 준비도와 마음가짐, 그리고 학생에 대한 진심에 의해 더 좌우되겠지만 이런 책을 통한 의식적인 고민과 노력도 어느 정도는 필요할 것 같다.
책의 내용 중 특히 더 인상적인 몇 부분을 발췌하여 생각을 정리해 보려 한다.
<상처를 후벼 파는 비꼬는 말>
비꼼의 숨은 의도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데 있다. 메리엄-웹스터(Merriam-Webster) 사전은 비꼼을 "상대방에게 상처나 고통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쓰는, 날카롭고 때로는 풍자적인, 혹은 반어적인 말이라고 정의한다. 비꼬는 말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sarcasm'의 그리스 어원은 'sarkazein'인데, 그 뜻은 "개처럼 살점을 물어뜯는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이 책에서는 비꼬는 말을 쓰면 학습에 방해가 된다고 이어서 지적한다. 그러나 이는 교육의 성과나 효율성을 떠나 아이들의 상처와 굴욕감과 상관이 있고 결국 아이들의 자존감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교사와 부모는 늘 주의해야 한다. 때로는 의도하지 않은 비꼼으로도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비꼼의 예로 이런 문장을 들고 있다.
"그럼 그렇지. 숙제를 챙겨왔을 리가 없지."
"선생님이 따라다니면서 치워줘야 되니?"
개별 학생에대한 존중과 인격적인 대우의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출발점은 아이들 개별의 이름을 불러주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 책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름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요소 중 하나로서 자긍심(self-worth)과 힘을 부여한다. 이름을 불러주는 간단한 습관은 아이들이 인정받는다고 느끼고,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인상깊은 몇 명이 학생이 아니라 우리가 만나는 모든 학생들의 이름을 외워서 불러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내적동기 vs 외적동기>
이스라엘에서 이와 관련된 매우 흥미로운 연구가 진행된 적이 있다. 연구자들은 아이를 유치원에서 늦게 데려가는 부모에게 벌금을 물리면 그 부모들이 더 자주 늦게 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Levitt & Dubner, 2005, pp19-20), 부모들은 아이를 데리러 제시간에 가는 것이 교사를 존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겨우 벌금 몇 푼 때문에 시간을 꼭 지킬 필요가 있을까를 따졌다. 그러고는 아이를 데리러 가기 전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기꺼이 벌금을 내는 쪽을 택했다. 통상적으로 보상과 처벌에 바탕을 둔 학교체제에서는 학생들이 보상과 처벌을 경험한 뒤에 이에 익숙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면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단기적 행동에 영향을 주고자 보상과 처벌을 점점 더 강화한다. 그래서 상벌제도를 활용하는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점점 더 큰 보상을 내걸게 된다.
중요한 것은 보상과 처벌이 내적동기를 약화시킨다는 사실이다. 여러 연구가 보여주듯이 어떤 행위에 대해 보상을 하면 그 행위 자체의 가치는 결국 떨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게 하는 것이 목표라면 여름방학에 책을 읽는 학생들에게 보상으로 피자상품권을 줘서는 안 된다. 오히려 독서의 동기를 약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책임감을 갖고 학습을 하길 바란다면 숙제를 제출했을 때 쉬는시간을 늘려주는 방식으로 보상을 해서는 안 된다. 보상을 주면 오히려 숙제를 해야겠다는 동기가 약화된다.
그래서 ‘-하면 –할 거야’,‘-하면 –해줄게’와 같은 표현보다는 규칙을 따르고 타인을 배려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표현을 시도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시험점수 잘 받고 싶으면 공부해라!" vs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다보면 알아가는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거야."
"핸드폰 당장 집어넣지 않으면 압수할 거야!" vs "지금은 핸드폰을 집어넣고 수업에 집중할 시간이야."
앞의 말보다 뒤의 말이 훨씬 더 낫다는 지적이다.
인센티브와 보상이 초래하는 또 다른 문제는 이와 같은 외적동기가 주어질 경우 학생들이 학습활동을 거래적 성격을 띠는 것으로 보고 선택이 가능한 것, 즉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자 "과제를 끝내면 스티커를 하나 줄게요."라는 말을 들으면, 아이들은 과제를 할지 말지 저울질하기 시작한다. '고작 스티커 하나를 받기 위해 부제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렇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면 과제를 하지 않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어떤 교사들은 과제를 제출하지 않는 학생들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F를 받아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 아이들은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뿐이다. 그 아이들에겐 성적이 공부를 해야 하는 충분한 동기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적이 보상으로 작용하는 경우라도 충분히 성적이라는 눈에 보이는 성취를 확인하지 못하면 이내 공부에 대한 의욕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성적이라는 보상도 외적동기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과정에서 알아가는 즐거움에 초점을 맞추고 성적은 덤으로 얻어지는 보너스 같은 축복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면 그 아이의 지속적 학습은 더 이상 걱정할 것이 없다. 그래서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단계별, 수준별 출발점을 잘 진단해 주고, 학습을 지속해나가는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익히도록 도와주며,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끊임없이 응원하며 심어주어야 한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교육적 성과 때문에 늘 조건적으로 아이들과 거래를 한다. 성적 오르면 새 폰을 사주겠다는 약속의 경우, 성취했어도 공부 자체의 즐거움을 얻은 것이 아니고, 성취하지 못했다면 아무 조건이 없던 것보다 두 배의 좌절감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칭찬조차 외적보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성취했을 때 그 성취에 집중해서 칭찬을 해주면 아이들은 유지해야 한다는 더 큰 부담을 가질 수도 있고, 스스로 성취해서 누리게 되는 기쁨이 반감될 수도 있다.
보상과 처벌의 체계는 분명 필요한 면이 있지만 어른의 조급함과 욕심 때문이라면 잠시 멈춰서 생각해 봐야 한다.
확실한 건 부모와 교사의 욕심이 커지면 아이들의 주도성은 그만큼 작아진다는 것이다.
<효율적인 피드백 방법>
아는 게 많지 않다는 생각, 즉 지식격차(knowledge gaps)에 대한 자기인식 때문에 학습동기를 갖게 되지만, 그 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지면 오히려 배움에서 멀어진다. - 존 해티, 그레고리 예이츠
따라서 피드백을 줄 때는 다음 단계에서 해볼 만한, 실행 가능한 방법을 제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너무 많은 피드백을 주거나 너무 어려운 과제를 주면 아이들은 압도되어 포기해버릴 수도 있다.
약간은 도전적인 과제가 주어졌을 때 아이들은 흥미를 느낀다. 너무 쉽거나 너무 어려우면 안 되는 거다. 게임에 중독되는 것은 "할 듯", "못할 듯"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그 접점과 경계를 찾아 맞춤식으로 제시하는 것도 교사들이 역할이며 진정한 개별화교육의 실현이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주면 아이들의 학습동기가 꺾이고, 아이들은 배움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린다. 불행하게도, 과제가 끝난 후 감당할 수 없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가장 많이 받는 아이들은, 긍정적이고 힘을 주는 피드백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즉 인내심과 자존감이 가장 낮은 아이들이다. 건설적인 피드백은 반드시 과제가 진행되는 동안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일단 과제가 끝나면, 장점을 격려하는 일에 집중해서 아이들이 다음 과제를 해낼 열정과 긍정의 에너지를 기를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현장에서 가장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일으켜 세워야 할 인내심과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은 늘 부정적인 피드백 때문에 일어설 용기조차 갖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기 때문이다. 상처를 감당할 수 없어 무력감으로 방어벽을 치는 아이들도 많다. 표준화된 똑같은 피드백이 아니라, 그 아이의 성장속도와 출발점에 맞춘 피드백이 절실하다.
교사들은 교재연구만이 아니라 어떻게 개별적으로 아이들에게 진짜 도움을 제시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경력이 쌓인다고 면제받는 미션이 아니다. 오히려 경력이 쌓일수록 더 멀어지는 아이들과의 거리와 자신의 체력과 타성에 맞선 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
진짜 교사가 되는 길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교사의 힘든 노력만큼 아이들은 상처에서 벗어나 자존감을 회복하고 성장의 길로 들어선다. 진정한 교사의 가치는 연봉이나 당장 눈에 보이는 성적향상들의 객관적인 수치로만 나타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