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선생님께서 이번 졸업식 때 특별상, 공로상을 받는 학생들을 교장실로 모아달라고 하셨다.
학생들이 많아서 특별상과 공로상 분야로 나눠서 학생들을 인솔해 갔다.
학년부장인 나도 함께 있어도 된다고 하셔서 학생들과 함께 앉았다.
교장선생님은 이 자리까지 오게 된 학생들의 수고를 알아주시면서, 또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게 된 학생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해주셨다. 굳이 따로 불러서 얘기하지 않아도 상을 받는 것만으로도 그 수고를 인정받는 것이었지만, 학생들은 교장실에 좋은 의미로 불려간다는 사실에 대해서 벌써 들떠 있었고, 말씀하시는 내내 몰입하며 경청했다.
교장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게 된 그 역량과 능력을 계속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하시며 그렇게 시간이 20년 정도 흐르고 성공한 자리에 서게 되어 여유가 있을 때쯤 모교를 잊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다. 후배들을 위해 작은 장학금이라도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하시는데 내가 다 울컥했다.
아이들도 부담을 느끼는 표정이 아니라 교장선생님의 기대대로 각자의 성공을 이룬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성공에 대한 응원과 격려만이 아니라 성공 이후에 다른 이들을 돌아볼 수 있는, 베풀고 나누는 삶에 대한 삶의 교훈에, 모교를 잊지 말라는 자긍심까지 심어주셨다.
그 순간 학생들은 이 학교를 대표할 만한 졸업생으로서 성공할 이유와 열심히 살아야 할 의미를 부여받았다.
그리고 졸업 상품에 대해서도 선생님들의 깊은 고민이 담긴 귀한 것이라는 의미 부여도 해주셨다.
그 영예와 축복과 감동이 전해지는 현장에 학년부장이라는 이유로 함께 할 수 있어 나의 마음도 웅장해졌다.
얼마 전에도 모든 중3 학생들의 고입 합격이 확정되었다는 보고를 드리자 교장선생님께서는 3학년 담임선생님들 너무 고생과 수고가 많으셨다고 직접 인근 시장에 나가셔서 손수 고른 과일을 챙겨주시기도 했다.
티 내지 않으시고 진심을 다해 쌤들의 교육활동을 어떻게든 도우시려는 모습에 숙연해졌다. 교장선생님으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하며 마음껏 챙기는 리더십의 모형을 보여주시는 듯했다.
교장선생님의 많은 역할 중에 이런 역할은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였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시는 세심함이라서 울림이 더 컸다.
교장선생님과의 만남으로 교육의 목적과 의미를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학생들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지각을 하면 안 되는지, 왜 영혼을 담아 청소를 해야 하는지, 왜 학교에서 쓸데없이 보이는 대피훈련까지 받아야 하는지, 학생들에게 성적 외에도 왜 인성이 중요한지...
모든 교육의 상황에, 매 순간 학생들에게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 있는 맥락을 연결하는 역할...
물론 초중학교에서는 의미를 부여하기가 더 어려울 거라는걸, 중학교에 와서 더 실감했다. 심지어 납득 못 시키고 강요해야 하는 순간들이 많아 힘겹기도 했지만 포기할 수 없는 교사의 역할이다.
우리에게 가장 힘겨운 순간은 아마 무의미함을 마주할 때일 것이다. 의미가 부여되지 않으면 삶의 의욕도 찾을 수 없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정신 의학자인 빅터 프랭클 박사의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삶의 기록인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의 원제는 <Man's Searching for Meaning>이다.
이 책에 대한 추천의 글에서 Gordon W. Allport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며, 수용소에 갇힌 이들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오로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 중에서 가장 마지막 자유'인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뿐이었고, 프랭클 박사의 체험에서 특히 생생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던 수용소의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었겠지만, 수용소를 나가서 해야 할 일이 명확한 사람들의 생존 가능성이 높았다고 한다. 프랭클 박사도 작업한 원고를 다 빼앗기고 마음속으로 다시 쓰는 작업을 하며 언젠가 살아나가서 책을 출판하겠다는 목표를 가졌던 것이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 부여였다. 그렇게 그 순간을 버틸 이유를 찾으면서 열악한 상황에서 살아야 할 의지를 다졌을 것이다.
목적 없이 땅만 파는 것은 삽질이지만, 파고 나면 보물이 있을 거라는 목적을 알려준 후에는 의미 있는 행위가 된다.
교사가 학생들 대신 의욕을 갖게 해줄 수는 없지만 스스로 의욕을 가질 수 있도록 의미 부여를 해주며 기다릴 수는 있다.
내가 중학교에 와서 힘들었던 것은 그런 의미 부여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서 24년간 의미 부여를 해주며 학생들의 열정과 간절함을 마주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내게, 허공에 메아리치는 듯한 나의 한계를 마주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다. 물론 끝까지 나를 신뢰하고 따라주었던 학생들, 그리고 당장은 확인할 수 없지만 나의 교육을 머리로까지는 받아들였던 학생들을 보면 나의 4년은 절대 무의미하지는 않았겠지만...
철없던 젊은 교사 시절,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전혀 안 하는 아이들이 동아리활동에만 열심일 때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교감선생님께서 그게 이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는 유일한 이유이니,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해주셨던 말씀에 젊은 날의 성취 중심의 가치관을 돌아보았던 적이 있다.
그러고 나니 평소에 거의 늘 무기력하던 아이들도 점심시간이 되면 급식을 서로 먼저 먹으려고 달려나가던 것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그런 의미 부여가 가치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니까.
숭고한 목적이 아니라도 괜찮으니, 성적이나 결과에만 집중하여 과정 중에서 의미를 못 찾아 헤매는 일이 없게 교사들은 사소한 곳에서부터 아이들의 의미 부여를 도와야 하지 않을까...
학교를 떠나게 된 내게, 교장선생님께서는 이곳 학생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가게 되는 학교 학생들에게 축복일 거라고 하시면서, 절대 중간에 명예퇴직하지 말고 정년까지 끝까지 교사를 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평교사인 내 모습 그대로 정년까지 해야 한다는 격려를 받다니, 수석교사나 승진에 대한 권유를 받을 때보다 훨씬 가슴 벅찼다.
학교에 계속 있어주기를 바라시지만,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고등학교를 다시 도전하겠다는 나의 앞길을 막아설 수가 없다는 예전의 응원의 말씀도 진심이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교장선생님 자신의 입장보다 학생들과 교사들의 행복을 우선으로 생각하시는 진심 어린 감동적인 응원의 말씀에 눈물을 겨우 삼켰다.
내 체력과 연한이 다할 때까지 어떻게든 학생들을 향한 나의 역할을 다해 헌신하려는 것이 나만의 다짐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에 전율했고, 내가 끝까지 교사를 해야만 하는 의미를 부여받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것이 교육자의 역할이었다.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진심을 만나고 의미를 부여하며 스스로 열심을 낼 수 있는 이유를 찾게 해주는 따뜻함. 그런 감동의 교육이 앞으로도 내가 추구해야 할 교육의 모형이었다.
교육의 의미를 찾는 여정에서 교장쌤과의 만남으로, 그렇게 나도 퇴직할 때까지 평교사로서 끝까지 학생들에게, 후배 선생님들에게 의미를 찾아주고 진심을 전하는 교육자로 서야겠다는 의미 있는 다짐을, 감사함으로 가슴속에 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