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강의 기회도 신기하다고 생각하던 시절을 지나 87번의 강의까지 이르렀다.
계획한 적도 없고, 예상도 못 했던 일이다.
내게 주어진 수업만으로도 신기해하고 감격했었는데, 교실 밖 선생님들, 학부모님들, 교수님들, 학부 및 석사과정 예비 교사들, 다른 학교 학생들까지 이어지는 만남의 감격과 떨림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이었다.
딸들의 중학교 은사님들 앞에서 하는 강의처럼 말도 안 되게 특별한 기회가 아니라도 모든 만남이 내게 다 특별했다.
주위 분들의 예상과는 달리 강의 횟수가 거듭되면서 떨림이 면제되지는 않았고, 그만큼 설렘도 계속되었다.
언제가 마지막일지 모르니 매 강의 때마다 정말 마지막 무대라는 절절한 심정으로 임했다.
이번이 네 번째 복직교사 연수이자 전체 횟수 87번째 강의였다.
그걸 난 일일이 세고 있었다.
복직하시는 분들의 두려움이 낯설지 않았다. 의외로 선생님들 중 MBTI 내향형 'I'가 더 많아(한 설문에 따르면 2/3 이상이라고 함) 연수 중에 발표하는 걸 불편해하셔서, 활동중심수업이 아닌 강의식수업처럼 거의 나 혼자 떠들었지만 개인적인 질문 등의 기회나 설문에서 그 두려움을 감추지는 않으셨다.
에듀테크, 2022 개정 교육과정, AI 디지털 교과서, 한 해가 다르게 변해가는 학생들과 학부모님의 태도, 대구 지역이라서 IB 교육과정의 확대 운영 등의 변화를 마주해야 하는 두려움에, 휴직 기간만큼 뒤처졌을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교육의 본질과 진심의 교감에 대해 강조했다. 준비되어야만 적응하는 게 아니라 시작하는 순간 적응되기 시작할 거라는 팩트에 가까운 위로도.
그리고 시적 허용과 같은 각자만의 스토리로 수업을 준비하시면 된다고 말씀드렸다.
에듀테크에 맞춰 수업하는 것이 아니라, 내 수업에 에듀테크를 보조도구로 활용해야 함도 명확하게 했다.
당장 비서처럼 부릴 수 있는 챗 GPT, 뤼튼 AI, 인공지능 번역기이자 교정기인 DeepL 등의 활용팁과 차차 참고하시면서 활용하게 되실 온라인도구 및 활용팁 꾸러미를 링크로 전해드리고, 내 수업 커리큘럼 구글클래스룸 링크도 인강 패스처럼 증정해 드렸다.
연수 원고, 보조자료, 각종 필요한 링크가 있는 노션 페이지도 선물로 드렸다. 물론 받아야만 선물이겠지만 나의 진심은 어쨌든 거기까지였다. 늘 그랬듯이 거의 모든 연수의 내용과 자료는 내 삶에서 그냥 건져올렸다.
복직하시면 아이들을 위해 당장 쓰실 수 있는 수업 팁과 담임 역할 등도 공유했다.
무엇보다 두려움과 떨림을 학생들에게 자신만의 존재감으로 다가갈 수 있는 만남의 설렘으로 바꾸어드리려 공을 들였다.
행복교육을 이뤄가시길 바라는 응원의 메시지처럼.
거의 3시간 동안 일곱 분의 선생님들께서 한결같이 모두 다 몰입해 주셨다.
감사한 만남이었다.
수업도 강의도 만남이고, 지속성을 갖지 못해도 만남의 흔적과 여운이 삶 속에 남아 있을 거라는 영향력의 가능성에 대한 의미 부여로 뿌듯한 행복감을 누렸다.
강의 시작은 '나는 반딧불'이라는 노래로 본 교육적 함의였다.
학생들 자신이 별이 아니라는 가슴 아픈 현실을 인식하도록, 결론부터 정해놓고 몰아붙이는 선행 진도가 아닌 각자의 출발점을 알려주는 것이 교육의 시작이며,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있는 모습 그대로의 가치를 알려주고 성장의 희망 메시지를 곁에서 전해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일 것이라고 했다.
교육 상황에서 매 순간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가장 중요한 교사의 역할이라는 것도 강조했다.
예를 들어 불이 나면 당연히 대피하게 될 것을 귀찮게 화재대피훈련을 왜 하냐는 학생의 반항 섞인 의문에, "화재 등의 비상사태가 되면 순간적으로 6세 지능이 되기도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유사시에 몸이 기억할 수 있도록 그래서 신속하고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훈련이 필요한 거다. 실제 대구 모 고등학교 5층에서 화재가 났을 때 대피훈련 덕분에 당황하지 않고 모든 학생들이 안전하게 대피한 사례도 있다."라는 의미 부여를 해주는 것...
수업 시간의 학습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암기로 내몰리게 될 것이니, 그 맥락을 연결하도록 의미를 부여해 주면서 학생들의 이해를 돕는 것, 삶의 목적과 매 순간 존재의 이유에 대해 자각하며 소중한 삶의 가치를 마음에 품도록 도와주는 것 등등...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을"인데 교사는 그 "을"을 자처해야 한다고. 그렇게 진심을 전하려는 노력이 교육의 성과를 가져온다고. 사랑하는 관계에서 "을"은 부모님이 그 전형인데, 부모님이 된 것처럼 학생들을 대할 수 있는 축복을 누릴 수 있다고.
이렇게 최근에 블로그에 교육에 대해 올렸던 생각들을 모아서 삶으로 풀어드리는 것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중학교에만 계시던 분들이어서, 고등학교에서 내려온 부적응 교사의 좌충우돌 생존기에 대해서도 매우 흥미로워하셨다.
3시간은 긴 시간이다. 그럼에도 시작할 때 그 시간을 순삭해드리겠다는 기대에 찬 약속을 드렸고 최선을 다했다.
수업이나 강의하면서 시간 가는 줄 안다면, 첫 교감에 실패하고 수강생들이 공감이나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신호다. 강의 시작 전에 내가 느끼는 불안감은 그런 종류다.
감사하게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강의를 했다. 적어도 나 스스로에게 시간 순삭의 약속을 지킨 느꼈고, 준비한 내용을 다 쏟아드리지 못한 아쉬움은 나만의 것으로 접어 두었다.
마지막 연수인 것처럼 비장하게, 하지만 즐겁고 행복한 여유로움으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네 번이나 연속으로 나를 초대해 주신 담당 주무관이신 파견교사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네 번째 강의 섭외 받을 때는 너무 편해져서 이 일정에 가능하냐는 물음에 "콜"이라고 외치고는 민망해지기도 했다. 그때의 민망한 마음을 만남에서 전하니까 괜찮다면서.. 자신은 첫 만남부터 누구에게나 내적 친밀감을 표현한다고.. 그러고 보니 네 번의 초대에 응하고 만날 때마다 처음부터 일관되게 환대 받는 느낌이긴 했다.
교과별 수업 나눔 강사가 바뀌기도 했지만 영어과는 늘 나를 우선적으로 초대하셨다고, 매번 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에.. 오히려 내가 더 감사하다고 우기듯이 마음을 전했다.
휴직하는 선생님들 각자의 사연이 궁금했지만 차마 묻지 못했고, 그저 나만의 스토리로 연수를 진행하며 각자 선생님이 자신만의 스토리를 완성하시기를 마음으로 응원했다.
실제로 강의 마지막에도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단 한순간의 행복도 놓치지 않으시길 응원한다고 마음을 전했다.
선생님들께서는 강의 마칠 때쯤 슬라이도(sli.do) 온라인 도구로 질문과 함께 받았던 연수 후기로 이렇게 감사한 소감을 남겨주셨다. 소감 중 일부...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열정적인 강의와 공유해 주신 팁과 자료들 감사드립니다. 긴 휴직 후의 복직이라 모르는 것 투성이고 긴장되지만 오늘 강의해 주신 내용을 바탕으로 잘 연구해 보겠습니다.
많은 자료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세하고 실용적인 강의를 해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양한 툴로써 힘들지 않고 애들과 같이 즐거울 수 있는 복직 생활이 될 것 같습니다.
교직생활이 20년이 넘었지만~복직할려니 살짝 두려움이 있네요^^선생님의 좋은 강의와 자료 덕분에 두려움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마음이 풍족해지는 강의 감사드립니다
수업 내용이 너무 알차고 재밌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이렇게 나의 강의 라이프를 잘 마감하였다는 생각에 아쉬움과 평안함이 교차하던 저녁 시간...
2월 예비 고1 학생들 대상 영어학습법 및 단기간 몰입 수업 섭외 전화를 받았다. 성사되면 88번째 강의다.
초대받는 순간부터 준비하는 과정과 실제 강의를 마칠 때까지 모든 과정이 설렘과 행복이었다.
그 설렘이 다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