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경덕여고 고3 학생이 졸업을 앞두고 내게 보낸 글...
그 당시 학생들에게 내가 어떤 선생님이었는지를 이렇게나 자세하게 묘사했다.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 알아주고 신경 써 주는 선생님
선생님들에 대한 불신들이 조금이나마 없어지게 해 주는 선생님
학생들을 얕보고 무시하지 않고 학생들을 이해하려 하시고 학생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려 노력하는 선생님
학생들 앞에서 때론 홍당무가 되고 부끄러워하시는 선생님
다른 쌤(?)들과는 다른 선생님
학생들을 사랑하시는 그런 마음이 느껴지는 선생님
친구처럼 늘 편하게 대해 주고 거리감이 없는 선생님
그 과목을 좋아하게 만들어 주는 선생님
수업 열심히 하는 선생님
웃으면서 즐겁게 수업할 수 있게 하는 선생님
해맑은 웃음과 꾸밈없는 모습을 지닌 선생님
답답한 마음에서 하는 말을 무조건 들어줄 수 있는 선생님
첫인상과 외모와 관계없이 자상하고 친절한 답을 해줄 수 있는 선생님
늘 자신을 돌아보며 학생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며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선생님
인간적이면서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
존재 자체가 학생들에게 큰 의미가 되는 선생님
지식 전달만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주시는 선생님
일상적인 얘기 하나하나에서도 삶을 배우고 또한 사회를 배우게 하는 선생님
고3 괴롭고 고된 생활 중에서도 즐거움이 되어 주는 선생님
늘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하며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
학생들의 본보기가 되어 주는 선생님
학생들을 신경 써주고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선생님
그런 모습이 늘 변함없는 한결같은 선생님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뒤돌아 봤을 때에도 자신이 걸어온 길에서 선생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선생님
이 학생이 나를 제대로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런 교사가 되겠다는 노력의 방향이 된 것만큼은 확실하다. 20년이 넘게 흘렀는데 학생들의 말과 편지에서 이 칭찬의 흔적이 발견되면 소름이 돋는다. 물론 나의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직 완성의 단계로 가려면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흔적의 일부라도 발견해 주는 학생을 만나면 너무 감격스럽다. 학생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는 의미 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칭찬은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한다. 때로는 기대와 응원이 목표의식으로 내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틈만 나면>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직장인의 틈 같은 시간에 방문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게임을 해서 성공해야만 뽑은 선물을 주는 컨셉이다. 희한하게도 연습할 때는 잘 되다가도 미션 도전을 하면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어내야 한다는 과도한 절실함, 부담감과 긴장감 때문이다. 그럼에도 성취해야 한다는 기대와 응원은 힘을 내는 이유가 된다.
이번에 졸업한 학생 한 명이 전교학생회장에 대한 글을 읽고 이렇게 비밀댓글을 달아 손편지 같은 느낌으로 내게 마음을 전했다.
나도 진심을 담아 답장했다.
칭찬과 격려가 만들어가는 학생과 교사의 동반 성장과 삶의 방향.. 진심이 담긴 성장 기록이다.
<학생 편지>
핸드폰 여기저기에 남겨진 1년간의 기록을 따라가보다가 오랜만에 선생님 블로그를 방문하게 되었어요. 제목에 적힌 전교학생회장이라는 단어에 반가운 마음으로 클릭한 글에서 이렇게 큰 울림을 받을 줄은 몰랐어요. 바보같이 이제서야 제가 정말 감사해야 할 분에게 제대로 인사도 드리지 않고 졸업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늦었지만 이렇게나마 감사 인사를 전해보려 합니다.
우선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늘 학생들을 위해 애써주셨을 선생님과 전교학생회장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하고 싶어요. 이 글을 읽고 보니 선생님과 학생회장이 학생들의 1년을 위해 투자한 노력의 시간들이 제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아서, 저의 1년이 더 나은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애써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해졌어요.
그리고 1년간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학생 개개인의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 주시고,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질의 공부습관을 들이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도움을 주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지면서도 저에게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선생님께서 내밀어 주신 손을 반쯤 걸쳐 잡거나 놓친 적도 많았던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것만 알아주세요.
한 번도 말씀드린 적은 없지만, 저에게는 선생님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너무 소중했어요. 선생님과 대화를 할 때면 저를 간파하신듯한 선생님의 조언에 제 옳지 못한 마음을 고쳐잡을 수 있었고, 선생님의 응원과 격려에 학교생활을 잘 해나가고 있는 건지 걱정하던 마음에 위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해주신 말씀들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해요.
쓰다 보니 글이 많이 길어졌는데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늦게 인사드려 죄송해요. 선생님께서 애정을 담아 노력해 주신 것들이 헛되지 않게 앞으로 더 나은 학생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음 깊이 존경합니다.
<나의 답장>
아침부터 선물 같은 너의 댓글 너무 고맙다. 눈물 나는 줄 알았다.
이렇게 편지를 써주지 않아도 넌 이미 내 수업시간에도, 개별적으로 상담할 때에도 너의 절절한 눈빛과 감사의 마음이 다 전달되었단다. 상담은 내가 해주었는데 오히려 내가 뭔가 힐링 받고 치유받고 응원받는 느낌도 들었었구. 그게 너가 가진 보석 같은 장점이란다. 표현하지 않아도 행동과 표정과 어조와 말 모든 부분에서 진심이 묻어나고 상대를 존중받게 만드는 힘... 수업시간에도 얘기했지만 중3 첫날 복도를 순회하는 널 보면서 첫눈에 알아봤단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틀리지 않음을 1년간의 너와의 만남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어 기뻤고.
그런데 이렇게 글로 표현까지 해주니 너무 고맙다.
학생회장에게도 너의 마음을 전해주렴. 너가 쓴 댓글을 캡처해서 보내줘도 감동할 것 같구나.
너에게 주어진 드러나는 전교회장단 타이틀은 없었지만 누구보다도 학년 전체를 위해서도, 학생회장과 함께 애쓴 거 알고 있단다. 너의 존재 자체가 학생회장에게도 큰 힘이 되었을 거란다.
자신이 해 놓은 노력과 애씀보다 다른 이들의 수고를 먼저 돌아보는 너의 겸손한 마음은 학생회장하고도 닮아 있구나. 그래서 너희들이 역대급 학생회 성과를 거둔 거란다. 그 성과는 학생들의 행복과 학교 선생님들의 소신 있는 교육활동을 가능하게 해준 것이었지. 너도 많이 애썼다. 반장하느라고 고생했고.. 그 가운데 너의 역할을 너무 잘해주었고.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듯 경청하고 몰입하는 너의 수업태도에 많은 분들이 감동받고 격려의 마음을 느꼈을 거란다.
(중략)
내가 내밀어 준 손을 반쯤 걸쳐 잡거나 놓친 적도 많았던 것 같다는 말이 가슴 아프긴 하지만, 너의 바쁜 일상과 의욕 가운데서도 끝까지 뿌리치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구나. 너의 역량과 성실함 등의 자세로 분명 더 발전하고 더 성장할 것이니까.
너가 나의 손을 꽉 잡지 않는 것 같아서 아쉬운 순간은 있었지만, 한순간도 너의 역량과 자세와 잠재성과 가능성을 의심한 적은 없었단다. 심지어 나에 대한 존중의 마음과 잘 하고 싶은 너의 의욕과 그럼에도 주변을 살피면서 배려하는 너의 인성까지도 감탄하면서 응원했단다.
너가 준 나의 칭찬 같은 묘사는 내가 어떤 교사로 이후에 학생들 앞에 서야 할지를 알려주는 것 같아서 가슴 벅찼단다. 그런 모습의 파편이라도 너가 그렇게 느꼈다면, 교사로서 나의 노력도 어느 정도 통한 것인 것 같아 엄청난 보람도 느꼈고, 더 노력해야겠다는 격려와 응원의 마음으로 느껴져서 행복했다.
너와 개별적으로 좀 더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도 들지만, 많지 않은 기회에도 내가 던진 말들을 마음속에 품고 성장의 의지를 다지는 너의 편지를 읽으면서 내가 교사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행복감이 차올랐단다.
졸업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번처럼 용기를 내어 너의 성장 소식을 알려주렴. 혹 내가 해준 말에 대한 기억만으로는 온전히 힘을 낼 수 없어 현실적인 응원의 말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내게 연락해 줘도 기쁠 것 같구나.
나도 1년간 너와 함께라서 행복했단다. 너를 통해 내가 좋은 선생님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보며 더 노력하며 성장한 것 같고.
정성과 진심이 담긴 편지 너무 고맙다. 마음속 깊이 잘 간직할게^^
이런 내 답장에 학생은 누가 더 감동받았는지 내기라도 하듯 다시 답장을 보내왔다. 지난번 졸업 손편지를 전해준 학생들에 이어 이런 사소한 일에도 이렇게 진심을 전하는 학생을 보고는...
내가 훌륭한 교사인 것이 아니라 훌륭한 학생들의 모습이 비춰진 거울 같은 존재였다는 사실과, 교권이 추락하는 시대에 운 좋게 이런 학생들을 만나 정말 축복받은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새삼 더 느끼며 감사했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편지에 마음이 찡해지는 감동을 받아서 몇 번이고 다시 읽었어요. 분명 제가 감사한 마음을 전달하려고 쓴 편지였는데 오히려 감사한 일이 더 늘기만 한 것 같아요. 제 많은 면을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칭찬해 주신 부분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 저의 장점으로 간직하고 더 발전시킬게요. 너무나도 멋지신 선생님과 함께한 한 해는 오랫동안 저에게 든든한 응원이자 원동력이 될 것 같아요! 마음 한편에 든든한 응원을 안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다가 문득 선생님 생각이 나면 꼭 더 성장한 모습으로 안부 인사드릴게요.
선생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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