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내게 컨설팅을 받고 학원 그만두고 혼자서 청블리영어코스를 수료하여 시험 영어를 마스터한 친구 딸에게서 문자가 왔다.
고3이 된 김에 쌤 생각나서 연락드려요.
저 이번에 대학 합격하면 쌤 찾아가도 되죠? 딱 기다리고 계세요. 제가 고려대 합격증 들고...><
눈 오는데 눈길 조심하시구 고등학교서 새학기 파이팅 하세용!!
반가운 마음으로 답장을 해주었다.
드디어 너가 찬란한 고3이 되었네 축하한다
고3은 부담이 아니라 특권이란다 생의 가장 큰 기회였음을 지나고 나서 깨닫지 않고 지금 느끼면 과정도 결과도 대박인 거지. 그렇다고 생의 큰 기회를 한 번 더 가질려고 욕심내면 안 된다ㅋㅋ
합격하고도 날 안 보고 서울 올라가면 완전 배신인 거 알지? 지금부터 딱 기다리고 있는다
나는 교사로서 친구 딸은 학생으로서 고3을 맞이하게 되었다. 작년까지 중3을 4년 하며 고등학교로 다시 돌아갈 비현실적인 꿈을 꾸기만 했던 현실을 생각하니 믿기지 않는다.
대학교 때부터 나에 대한 감탄과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아서 나의 자존감의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소중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예비 고3인 둘째 아들 상담을 부탁했다.
이미 큰 아들은 중3 때, 나랑 컨설팅을 했고 지속적으로 한 번씩 상담도 해주었다. 교육특구 고등학교에서 내신에 비해서 월등히 우수한 모의고사 성적으로 정시파이터의 경계를 오가는 고민을 하다가 결국에는 수시로 국립대 의대에 진학했다.
친구 아들을 만나서 상담을 하기로 했는데 도착 전에 이렇게 문자가 왔다.
친구 선생님이라 말 안 하고, 진로 컨설팅으로 유명하신 선생님을 어렵게 예약했다 했거든.
(형한테도 얘기 안 함) 휴~~어렵지?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ㅋㅋ 연기 잘 할게. 틀린 말도 아니고ㅋㅋ
그렇게 한참 전문가인 척 상담을 잘 하고 있다가, 친구들과 한 번씩 PC방에 간다는 엄마에게서 들은 정보를 말해버렸다. 아이는 "이 선생님이 내가 PC방 다닌 거 어떻게 알지?" 이렇게 의아해하다가 결정적으로 언제든 상담 필요할 때 엄마를 거치지 않고 직접 연락해도 된다고 내 명함을 주는 순간 뽀록났다고 한다.
날 본 적은 없지만 내 이름을 보고 엄마 친구라는 사실을 소환했다고. 상담 마치고 엄마를 보자마자 엄마 친구네!! 이랬다고ㅋㅋ
바보같이 난 끝까지 연기에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허술할 수가ㅋㅋ
그리고 아이는 엄마랑, 친구쌤이랑 같은 영어과인데 많이 다르다고 했다고 한다.
당연한 거다. 같은 얘기를 해도 부모의 이야기와 다른 쌤께 듣는 이야기가 다른 것이니.
내 딸들도 그런 증상(?)이 분명히 있었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부터 사교육을 하지 않으면서 믿을 구석이라고는 아빠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고 아빠를 신뢰하게 은근히 가스라이팅을 했기 때문에 입시까지 다른 곳에서 컨설팅이나 상담 없이 어떻게든 해냈지만, 그건 완전 예외적인 경우니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친구 아들을 보면서 신기했다. 친구가 그 오랜 세월 동안 애쓴 것이 보였다. 첫째 아들에 이어서 둘째도 반듯하고 훌륭하게 잘 키웠다.
수시로 의대를 가기에 내신등급의 약간의 아쉬움이 있을 뿐, 생기부의 내용은 컨설팅할 때 모범사례로 들고 싶을 만큼 열심히 지내온 흔적이 충분히 담겼다.
그리고 고2 때까지 모의고사도 상위 0.3% 정도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 시간 넘게 쉼 없이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컨설팅을 했다.
그중 몇 가지 기억나는 이야기만 일부 정리해 보려 한다.
학원 수업 및 숙제 외에 순공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냉철하게 돌아봐야 한다.
시키는 것만 하게 되면, 특히 너처럼 역량이 뛰어난 학생은 남들 10시간 끝낼 일을 5시간 끝내고 여유를 부리는 일이 많아지게 되지. 그런데도 뭘 추가로 더 할 욕심도 안 생기고, 욕심이 나더라도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를 수도 있어 아예 안 하는 거지.
어차피 하루 일당은 똑같은데 더 한다고 일당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이런 느낌일 수도 있고.
여백과 휴식도 필요하지만 극상위권으로 가는 길목에서 가장 주의할 것은 이 정도면 충분할 거라는 방심이란다.
그래서 너에겐 순전한 자기 욕심 및 자기주도성이 핵심키워드일 것 같다.
너만의 계획이 필요한 거다. 그걸 확장하다 보면 학원을 서서히 그만둘 이유도 찾게 되지.
수능시험은 혼자서 마주하는 것이니 결국 자립이 중요하다.
뭐라도 하려 하는데 그래봤자 이벤트같이 일회성에 그치게 되니 의미 부여가 안 되고, 그러니까 아예 엄두를 안 내게 되지.
그러니까 작은 계획부터 혼자 설계해서 지속해야 한다. 대신 거창한 계획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예를 들어 학원에서 주는 읽기 자료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니, 높은 수준의 글도 스스로 읽어볼 계획을 잡아야 한다. 몰아서 읽으려고 하면 시간 낭비 같고 우선순위에서 밀리니까 분량을 쪼개서 굵직한 공부 하기 전에 하나씩 읽으면서 잘게 쪼개서 별로 하는 것 같지 않게 루틴을 만드는 거지. 그러면 애쓰지 않아도 지속할 수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설계한 나만의 공부는 성취감이 반드시 따라오며, 의미 부여도 되게 되어 있지.
학원을 가더라도 주인공은 너여야 한다. 주도성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수업을 들어야 하지. 수업을 들으면서 이걸 정말 알고 있는 것이 맞는지 철저하게 따져보고, 너만의 지식체계에서 수업이 만나서 더 큰 작품이 되도록 애써야 하고.. 결국에는 학원 의존 없이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 독립을 빨리 이룰수록 원하는 성적에 더 가까이 다가갈 거란다.
그냥 수동적으로 수업 듣지 말고 혼자 힘으로 예습하면서 기대감을 가지고 수업을 들어야 하는 거고. 듣고 나서 망각하지 않도록 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필요도 있고.
그리고 열정에 기대지 않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상의 루틴과 습관이 숱하게 마주할 슬럼프에 대처하게 될 힘이 될 거란다. 열정으로 넘어설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지. 지속적이지도 않고.
이제까지 애썼고 잘해왔지만... 고3 모의고사(특히 6모, 9모)는 다른 세계고, 수능은 완전 다른 세계다. 문제 수준도, 모집단도...
이 정도면 되었다는 만족감이 자꾸 미끄러지게 만드는 것이니까. 더 욕심낼 이유가 있는 거고.
요즘 수능은 컨텐츠형수능이라서 축적된 시간과 분량의 벽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현역 고3들에게 유리하지 않은 시험이긴 하지만, 무조건 일반화시킬 수 없으니 너가 그 역사를 쓰면 되는 거다.
매 순간 한 걸음만 더.. 이런 느낌으로 조금씩 너만의 발걸음을 이어가길.
3학년 1학기.. 상대평가 과목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끝까지 잘 관리해야 한다. 게다가 과목이 몇 개 안되니 애들이 몰입할 것이라서 더 치열한 경쟁이 될 것이니 시험공부는 평소에 끝내도록 해야 한다.
수업에 초점을 두고 사전 작업과 사후 관리를 꾸준하게 해두는 것으로...
정시파이터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서는 안 된다.
수시 반수재수가 훨씬 더 유리하고, 평생 자산이니까 아직 결정되니 않은 내신 등급을 최대한 확보해놓아야 한다.
생기부가 너무 훌륭하니 1학기 생기부도 하던 대로 잘 관리하고.
특히 의대는 수능최저가 관건이라.. 의대 증원 이슈가 확정은 아니지만 문이 더 넓어진 것은 맞으니 끝까지 수시 마인드로 해보되... 너만의 욕심으로 시키지 않은 것도 대비하는 수능 공부로 정시대박이 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도전하길.
많은 이들이 의대 증원이 자신에게만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건 체감 못하고 있는 거지. 잃을 것 없는 스카이 및 비메이저 의대의 N수생들이 더 유입될 것인데...
수능을 변수를 넘어서는 실력이 중요하다. 모의고사는 절대로 수능성적이 아니고, 수능실력을 충분히 갖췄어도 수능의 변수는 너무 많단다. 난이도 조절, 모집단의 규모,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지 여부가 다 변수가 되고 운도 작용하기도 한단다. 말 그대로 찍어서 맞히는 경우도 있는 거고, 자칫 서두르다가 실수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잖니.
특히 과탐은 늘 만점을 맞는 너라도 수능 때 난이도나 너와 맞지 않는 유형의 문제를 만나서 하나 이상 틀릴 수도 있고, 사탐런의 트렌드에 영향을 받을 거란다.
물론 나만 열심히 하면 되고 너랑 비슷하거나 너보다 잘하는 아이들이 사탐런을 할 가능성은 없지만 그럼에도 사탐으로 이동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면 과탐 1등급 인원에 영향을 주겠지. 게다가 9모까지도 존재를 드러내지 않던 막강 N수생들이 유입되니 경쟁은 더 치열해질 거란다.
그러니 어떤 영역이든 방심은 금물이다. 모의고사 때 탐구영역 계속 만점 받다가 정작 수능 때 3,4 등급 받는 경우도 의외로 흔하단다.
그러니 정시파이터라 생각하고 수시최저를 맞추려는 마인드가 평소에 필요하다.
재수할 생각이 전혀 없다면 의대가 아니라도 공부하는 중에 적성을 찾을 수도 있단다.
특히 물리를 잘하고 관심이 많으니 공대에서도 잘 해낼 것 같고, 그럴 경우 당연히 스카이를 바라봐야겠지.
서울대에서 과탐 2 필수 선택을 폐지했고, 가산점을 주더라도 과탐1에 비해 표준점수를 생각하면 그렇게 유리한 것도 아니라서 굳이 과탐 2를 할 필요는 없을 듯하고...
그 대신 물리, 화학을 둘 다 하는 건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지도.
물리는 너가 좋아하고 잘하기도 하니 선택해도 좋을 것 같고, 유전에 자신 없다면 생명과학에서 1등급을 힘들 것이니 미련은 없겠지만, 가장 많이 선택하는 지구과학을 내신에서도 선택하지 않아서 지구과학이 옵션이 아니고 너의 공부스타일에도 맞지 않는다면 그래서 반드시 화학을 선택하려 한다면 정말 열심히 해야 할 거다. 계산에 능숙하도록 많이 연습해서 타임어택을 넘어설 수 있도록.
....
그동안 정말 애썼고, 이후로도 모든 과정에 의미 부여하며 행복한 여정을 이어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