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의 좌절감을 넘어서

by 청블리쌤

고등학교 와서 첫 중간고사를 치르거나, 1학기말 성적이 정산될 때쯤 학생들은 희망의 흔적을 찾으려 애쓴다. 그러나 희망이 보여도 생각보다 크지 않으면 보통은 외면한다.

인지부조화로 인한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과정이다. 인간은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어차피 애써도 안 될 거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치열한 경주에서 살며시 발을 빼고 싶은 것이 보통 상처받은 학생들의 심리다.

어떤 학생들이 희망을 키워가는가? 능력과 출발점을 떠나서 쉽게 절망하지 않는 부류다. 회복탄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는 학생들이다. 다시 말해 넘어지지 않기 때문에 희망을 키워가는 게 아니라 넘어져도 일어나는 법을 터득한 경우라 할 수 있다.

20년 넘게 고등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켜보다 보니 수많은 사례들이 내게는 통계 결과물처럼 축적되었다. 그래서 난 자신 있게 학생들에게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

드라마를 써 내려간 학생들은 이러한 마인드로 움직였다.

"시작은 초라하지만 결국 가는 데까지만 가는 거다."

그러니 무엇부터 시작할 것인가?

남을 흉내 내지 말고 남들의 속도에 좌우되지 않으며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게 지금 할 일이다. 지금 뭔가 큰 획을 긋는 거창한 활동이 아니라 겸허한 마음으로 부족한 지점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지금도 충분히 뒤처져 있는데, 더 달려도 모자랄 판에 뒤로 물러가라니... 보통 학생들은 이 조언에 분노 내지는 무시로 반응한다. 그래서 악순환이 계속된다.

효율성과 즐거움이 따라야 뭐든 지속할 수 있다.

성취 의지가 높을수록 열심히 눈에 보이지 않는 실력 향상과 점수 향상을 눈으로 확인하려는 외적 행위로 대신하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남다른 열심이나 훌륭한 필기, 완강을 했다거나 책을 몇 번 돌렸다거나 하는 일, 선행을 어디까지 했다는 안도감 등..

그러고 보니 선행은 혼자 안 하면 불안해서 시류에 동조하는 것이고 깊이를 포기한 속도를 선택하여 스스로에게 공부를 제대로 안 해도 된다는 안도감을 부여받는 과정일 수도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

오히려 남들보다 선행을 많이 못 했다는 절박감으로 지금 이 순간에 제대로 더 깊이 땅을 팔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저기 땅을 파다만 것보다 그게 더 의미 있는 행위일 수 있는데 보통은 구멍을 얼마나 대충이라도 많이 파 놓았는지를 경쟁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너무 안타깝다.

그러니까 제대로 학습하는 것보다 눈에 보이는 결과를 통해 위로를 받으며 타협하는 정말 안 좋은 케이스이다. 그래서 늘 애쓴 것만큼 결국은 얻지 못하여 허탈해한다.

공부는 괴로운 과정이 아니다. 부디 요령껏 해야 한다.

한 번에 다하려고 애쓰거나 완성하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겨우 여유가 생긴다.

지금 이 순간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고 암기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망각의 흐름에 따를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 난 이 내용을 완벽하게 다 볼 수 없다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지나가고, 다시 보는 등 시간 간격을 두고 반복하면서 차츰 깊이를 더하고 자연스러운 학습의 과정을 따르는 것이 기억의 메커니즘과 좌절감을 넘어선 효율성과 즐거움의 과정이다.

결과로만 확인하려고 하면, 그리고 그 결과에만 노력의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늘 힘들고 고통스럽다. 중간 과정의 성장에 즐거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오늘 알게 된 단어 하나, 오늘 풀어 본 수학 문제 하나, 수학 문제가 안 풀려도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알게 된 원리 하나.. 그 한 걸음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 최종결과나 도착지는 잊혀진다. 이 순간의 몰입만 즐겁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도달해 있는 깜짝 선물 같은 자신의 위치에 놀라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실력향상이 와 있고, 점수가 올라있고, 킬러문제를 풀고 있기 때문이다. 실력향상은 자신의 각본이나 정해진 기한에 맞춰 의식하고 있는 가운데 이뤄지는 경우가 드물다. 어쨌든 지금 이순간만 중요한 거다. 이후의 성과는 내 소관이 아닌 거다.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는 기말고사 끝나고는 늘 기본을 위한 기회가 주어진다.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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