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 정여울

by 청블리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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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희망보다는 허심탄회한 포기가 나을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철들기 시작한다”라는 주제를 담은 정여울 작가의 2017년 에세이 리커버에디션으로, 삶을 소중히 생각하는 이들 특히 자신의 30대를 돌아보며 흔들리는 30대에게 전해주는 따뜻한 시각과 위로의 메시지가 담긴 책입니다.


저는 작가의 타겟 연령대를 훨씬 넘겼지만 예전의 젊음을 기웃거리는 심정으로 책장을 비교적 빨리 넘겼습니다. 나이가 한참 들고 보니 젊은 시절의 고뇌와 고민조차 부러워지기도 합니다. 각 나이대에 감당할 삶의 무게가 다르긴 하지만 말이지요.


그 방대한 내용 중 “기다림”이라는 키워드를 붙잡아봅니다. 이미 작가가 많은 것을 담아내고 있으므로 저의 생각과 의견을 덧붙여 논지를 흐리지 않으려 합니다.




남들보다 빨리 걷고, 남들보다 빨리 말하고, 남들보다 무엇이든 빨리 해내는 게 좋은 것일까. 심리학자들은 이런 속성 성장을 건강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마크 엡스타인은 '빨리 걷는 아이'를 예로 들어, "부모는 아직 아이가 준비되지 않았는데도 계속 아이를 재촉함으로써 아이가 마음속으로 그리고 신체적으로 준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버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부모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어떻게든 더 빨리 일어서고 더 빨리 걸으려고 분투한다. 그 결과 몸이 준비되었을 때 스스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 걷는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빨리 배우는 아이. 부모에게 쉽게 순종하는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건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언가 안정되지 못한 내면의 불안감이 그런 순종하는 인격의 소유자에게 늘 붙어 다닌다"는 것이다. 성장의 고통은 본인이 겪어내는 수밖에 없다. 지나친 순종도 극성스러운 조기 교육도 아이에게 '스스로 느끼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상실의 아픔, 성장의 고통을 스스로 겪는 지혜로움은 삶의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겸허함에서 우리나온다. 우리가 자신의 상처를 돌보면서도 동시에 그 상처에 지나친 자기연민을 기울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은 자기 마음을 좋건 싫건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이 필요하다. 마음의 평정이 시작되는 시간은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순간이 아니라 '트라우마 따위는 없는 척하기'를 멈출 때다.




'왜 다른 애들보다 말이 느릴까'하고 아무리 걱정해봤자 소용없다. 그저 기다려야 한다. '아이를 키운다는 적극적인 능동태보다 '아이가 스스로 자라는 것을 그저 바라본다'는 관조의 자세가 더 지혜로운 육아법일 때가 많다. 와시다 기요카즈는 「기다린다는 것」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로지 기다리지 않으면서 기다리는 것, 기다린다는 사실도 잊고 기다리는 것. 언젠가 알아주리라 바라지 않고 기다리는 것. 언젠가 기다림을 당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채 기대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

이것이 곧 기다림의 비결이다. 돌이켜보면 모든 소중한 기다림의 배후에는 '기대'나 '조건'이나 '기한조차 없는, 어떤 어처구니없는 결정 불가능성이 깃들어 있었다.


진정한 기다림이란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껴안는 것이다. 기다림이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계산도 예측도 보상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지금 이 순간 전체를 껴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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