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라는 울타리

by 청블리쌤

(2020.7.11)

큰 딸이 대학 첫 학기를 마치고 거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알바를 하고 있다. 근처 배달 전문 중국집에서 저녁 3시간 동안 전화 주문, 배달앱 주문을 받고 음식을 포장하는 등의 일을 하며 일당을 받는다. 고등학교 때 한 달 용돈을 거의 하루 만에 받는다고 신기해한다.


어제는 알바를 가 있는 시간인데 딸의 흐느낌의 울음소리가 엄마의 전화기 밖으로 들려왔다. 여간해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 딸인데 너무 놀랍고 걱정이 되었다.

알바 가는 길에 자전거를 타다가 골목에서 나오는 차에 살짝 부딪혀서 자전거와 함께 넘어졌다는 것이었다. 운전하는 아주머니는 한참 뒤에 차에서 나와 괜찮냐는 말보다는 더 조심했어야 했다는 핀잔 섞인 말씀을 하셨다는데, 너무 놀라고 경황이 없었지만 딸의 입장에서는 차와의 충분한 거리를 두고 속도를 내지 않으며 지나가면서 생긴 일어어서 자신이 할 말을 다 하며 반박했단다. 넘어졌지만 특별히 심하게 다친 데도 없고 자전거도 괜찮은 것 같아 아주머니가 주시는 연락처만 받아서 알바를 갔는데, 거기서 엄마에게 전화를 하면서 울음이 터진 것이었다. 그러면서 본인은 왜 자신이 우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놀람과 한편으로 많이 다치지 않은 안도감과 오히려 자신의 잘못은 없다고 반응하는 아주머니에 대한 분노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저 엄마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엄마라는 조건 없는 울타리의 의미였던 것이다.


난 그런 일을 겪고도 알바를 하는 딸이 걱정이 되어 바쁠거라 생각하면서도 딸이 일하는 중국집에 전화를 했다. 딸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 괜찮냐고 조용히 물었다. 그리고 음식을 주문했다. 딸은 시원스레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지만 이내 알바의 프로정신을 발휘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카드로 결제하시나요? 현금으로 결제하시나요?"


그리고는 집에 돌아오는 딸을 이토록 애타게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의외로 밝은 표정이라서 안심이 되었다. 중국집에서 일을 잘하고 있다가 내 전화를 받고는 또 울음이 터졌다는 것이었다. 같이 일하는 아저씨들이 전화주문받다가 울고 있는 딸을 보고 또 놀라시길래 아빠가 전화하셔서 그랬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장님이 군만두 서비스를 넉넉하게 넣어주셨다고 했다.


갑자기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줄 때 이런 대목이 있어서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너는 특별한 존재고 너를 너무 사랑하지만 아빠는 하늘나라로 먼저 가게 될 거고 그럼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보살핌으로 너는 잘 살아갈 것이라는 대목이었다.

이 땅에서는 늘 자식들과 함께 일 수 없다. 게다가 이 땅에 같이 있어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이들은 부모를 떠난다. 심리적인 독립을 이루는 사춘기부터 집을 떠나게 되는 과정을 거쳐, 결혼이라는 다른 가정을 꾸리는 완전한 독립까지...

부모는 끝까지 역할을 더 해주고 싶고, 커가는 아이라도 실패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으며 아픔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게 당연하다.


딸은 대학생이 되었음에도 코로나로 인해 집을 떠나 여전히 대학캠퍼스를 갈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서 집에 매일 더 머물러 있으면서 우리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독립할 시기가 보류되고 있는 것일 뿐 여전히 부모 곁을 떠나 살아가야 한다는 건 냉정한 현실인 것이다.

마음이 놓이지 않는 불안감으로 아이를 집에 가둬 둘 수는 없는 것이다. 다행히 딸은 씩씩하게 마음으로부터 독립을 이뤄가고 있다. 집 근처 대학이 아닌 수도권의 대학을 가기로 정해진 순간부터 예상보다 이른 독립이 예정되었지만, 혹 집 근처 대학을 다니게 되었더라도 아이의 독립과 거리는 존중해 주는 것이 서로의 정신건강에 좋다는 생각은 늘 있긴 했다.


그럼에도 독립 여부와 관계없이 엄마, 아빠의 목소리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순간이 있는 거였다. 우리 모두 그러하듯이...


결국 부모와 교사는 아이가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순간을 위해 애쓰고 노력한다.

꼰대라는 말을 들을 각오로, 곁에 있을 때 그 행복을 후회 없이 누리고 즐기라는 가슴 사무친 조언을 젊은 교사들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전하고 있다.

길을 가다가 어린아이들을 보면 난 어김없이 딸들의 어린 시절을 오버랩한다. 그 시절 피곤하고 힘들다는 이유로 좀 더 시간을 함께 해주지 못한 만큼의 후회를 품으면서...


아이들이 중학교 때 사춘기로 힘든 순간을 맞이할 때 아이들을 야단치며 나도 모르게 나의 그 본심이 전해진 적이 있다. 너희들에게 해준 것이 없는 아빠라서 미안하다는 말에... 둘째는 엄마에게 가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아빠라는 울타리를 기억해 주는 딸의 감성에 나도 눈물이 쏟아졌다.


이젠 또 다른 부모의 역할을 받아들이며 후회를 남기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건 딸들에 대한 사랑이다. 세상 모든 부모가 다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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