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인 제자에게 이런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 6월 모의평가 잘 치는 거보다 수능 때까지 채워야 할 빈 공간을 잘 찾아내는 기회가 되길...
모의고사는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낼 수 있는 기회다. 오히려 찍은 거 다 맞혀서 기분 좋은 점수가 나올 것을 경계해야 한다. 수능이 가까워진 고3의 모의고사라도 기대 이상의 좋은 성적은 오히려 수능의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은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안도감 때문이다. 좋은 기분의 이면에는 어느 정도의 긴장감에 대한 무장해제가 포함되어 있다.
큰 딸도 6모 대박 나고 오히려 더 힘든 과정을 거쳤다. 그 6모의 성적이 가리키는 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현실적 노력에 대한 부담과 성적을 유지하지도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인과관계라고는 할 수 없지만 결국 수능성적은 6모와는 근접할 수 없는 간극이 생겨 그 간극만큼 딸은 눈물을 흘렸다. 눈물의 의미도 6모의 성적을 자신의 마땅한 권리라고 생각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설사 운좋게 나온 성적이라도 그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은 권리를 박탈당한 느낌으로 슬퍼하게 되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그래서 모의고사는 정말 실력에 딱 맞는 감당할 정도의 결과만 나와야 한다.
그런데 가능성을 읽어내기엔 도저히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좌절감이 든다면? 일단 치열하게 노력하고 싶지 않은 합리화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하고, 그다음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는지에 대한 출발점을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판단하면 된다. 남들보다 초라해 보여도 괜찮다. 자신의 자리가 아닌 출발점은 어차피 무효다. 몇 번의 아픔을 거쳐서 뒤늦게 돌아와야 하는 수도 있으니 빨리 받아들여야 한다.
계단 전체를 볼 필요는 없다. 이 순간 해야 할 일은 발 앞에 놓인 계단 하나에 발을 올려놓는 일이다. 그래서 결국 어디까지 도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불안하지만 그래서 더 희망적이다.
모의고사는 절대 완성의 느낌을 확인받는 보상이 아니다. 수능 직전에 그 보상을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했던 제자는 삼수를 해야 했다. 심리적 완성감은 노력을 막는다.
미완의 기대감이 끝까지 갈 수 있는 동력이 된다. 그래서 드라마는 매회의 마지막에 속 시원한 결론을 내지 않는다. 예고편도 회수하려는 의도를 가진 떡밥투성이다.
고구마 같은 모의고사로 우린 보다 더 확실한 사이다를 기대할 수도 있는 거다.
큰 딸은 그럭저럭 1,2등급을 유지했던 국어를 2학년 때 59점 맞은 순간부터 각성하고 매일 꾸준히 비문학 독서 글을 읽고 문학 문제를 풀며 당장 회복되지 못하는 성적임에도 멈추지 않아 고3 시절 6모부터 백분위 98%의 여유 있는 1등급을 수능까지 유지하였다.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그 과정이 없었다면 수능 때 59점을 맞게 되지 않았을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덕분에 수능은 망했어도 논술 최저등급을 맞출 수가 있었다. 지나고 보니 좌절감이 준 선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모의고사 성적에 기분 좋고 나쁘고는 의미가 없는 거다. 다시 말해 성적에 일희일비하면 안 되는 거다. 모의고사 성적 앞에서는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야 한다.
모의고사는 학생들의 멘탈을 단련시키기 한다. 감정보다 이성적인 의도적인 분석의 과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 냉철한 분석만이 모의고사라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한다.
모의고사를 예측과 판단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적어도 노력의 보상 정도는 느낄 수 있어야 힘이 나는 건 맞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아직 채워야 할 빈 공간을 확인하는 것으로 발전의 무한한 여지를 확인하고 희망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은 시험 없는 세상을 꿈꾸며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지만 인생을 좀 더 살다 보면 차라리 정답이 정해져 있고 무엇을 하면 되는지 방향도 명확한 시험이 더 편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인생은 시험과 테스트의 연속이다.
시험에 대한 멘탈관리는 수능시험이 궁극적인 효용성만 결정하지 않는다. 삶을 배워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때로는 성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스스로 성장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면, 그 과정에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더 빠르고 더 큰 성장을 기대할 수도 있다. 당장 영어 성적이 오르지 않았어도 단어가 좀 더 눈에 들어오고 해석이 좀 더 자연스러워진다면... 아직 익숙하지 않고 준비가 덜 되어 시간이 모자라는 압박감이 있어도 괜찮다.
정해진 기한 내에 이뤄야 한다는 그때까지 원하는 성적의 숫자로 보상받아야 주위의 기대에도 부응할 수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나 사소해 보이는 실력의 향상의 조짐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다면 말이다.
고3 담임하면서 모의고사는 많이 망할수록 좋다는 말은 당장 학생들의 나쁜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진통제 같은 위로가 아니었다. 이런 일이 수능 때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기대감과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불러일으키는 말이었다.
어쨌든 수능 시험을 치를 때까지는 멈추지 않아야 하는 것만이 진실인 거다. 피니시를 앞두고 일부러 속도를 늦출 이유는 없지 않은가. 미리 도달한 느낌이면 오히려 지속하기가 더 어렵다. 때이른 혹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고득점은 때로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고 저주다.
성공과 실패의 경계는 없다. 그저 멈추지만 않으면 도달하는 데까지가 성공인 거다.
중학교 내신과는 다른, 그리고 고등학교에서 제대로 된 첫시험으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반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난 이 성적으로 너희들을 판단하지 않는다. 이 성적으로 어떤 대학을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정보를 줄 생각도 없다. 내가 기대하는 건 이 성적으로 어떻게 맞춰 갈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까지 성장하고 발전할 것인지에 대한 너희들의 도달점이다.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전진하되 그래도 너무 고민스럽고 방법을 모르겠다면 내게 얘기해라. 얼마든 상담해 줄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