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발견하는 인생

by 청블리쌤

1. 기회가 늘 있다.

야구는 확률게임이다. 실수를 관대하게 용납한다. 잘 치는 타자도 4할을 넘지 못한다. 실패를 60%이상 하는데 잘 한다고 하는 거다. 게다가 3할 타자와 2할 5푼 타자는 100타석에 들어왔을 때 안타 개수 차이가 5개에 불과하다.

3할 타자는 10번의 기회 중 단 3번을 잘할 뿐이라는 건 실패를 해도 기다려준다는 의미이다.

야구는 지루하게 길지만 그 긴 기다림은 기회라고 바꿔 쓸 수 있다.

타자들이 삼진을 당해도 다음 타석에서 당당해야할 이유이고, 득점권에서 헛스윙으로 기회를 날려도 다음 기회에 만회하면 되는 거다.



2. 예측할 수가 없다.

투수와 타자의 대결은 늘 흥미진지하다. 타자는 스트라이크 3번까지 실수할 기회가 있고, 투수는 4번까지 스트라이크가 아닌 볼을 던질 기회가 있다.

타자의 예상대로 공을 배합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니, 결국 타자와 투수는 서로의 예측을 예상하며 흥미진진한 확률게임을 하고 있다.

보통은 안타를 쳤는지, 아웃되었는지 그 결과만 궁금해하겠지만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공 하나의 의미를 안다. 투수와 타자의 입장이 되어 예측을 해 본다. 그게 인생의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닥치는 것과 유사성이 있다.



3. 선택의 연속이다.

늘 어떤 작전을 지시하고, 선수를 제때 교체하는 등의 감독의 선택이 결과로 보상받지 못할 때 팬들은 감독교체까지 운운하며 불평하기 시작한다. 인생도 결과론만 가지고 따지면 쉽다. 답을 알고 거슬러 올라가면 어려울 게 하나도 없는 거다. 그러나 그 결과론에 의한 후회나 책망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야구를 통해 배워간다. 어떤 해설자는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이랬으면 달라졌겠지요."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야구와 인생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는 멘트다.

그 순간 최선의 선택을 했으면 결과를 떠나서 그걸로 족한 거다. 선택이 늘 최상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야구와 인생의 재미다. 뻔한 결과를 알면서 하는 선택이 무슨 선택인가? 단 책임지는 자세를 배워 가면 된다. 결국 실수를 하지 않아야한다는 부담보다는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감을 배워가야 하는 거다.

야구선수들도 스윙을 하고나서 자책한다. 그러지 않았어야 했다는 표정이다. 잘 치고 나서 자신의 타구가 상대방의 호수비에 잡히면 너무도 아쉬워한다. 조금만 어땠더라면이라는 생각이 개입해서 그런거다. 선택에 최선을 다하고 그 이후의 결과는 자신의 몫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늘 생각하고 집중하는 것이 현명한 거다.



4. 희생을 한다.

스포츠 경기에서 자신을 희생하고 남을 살리는 극단적인 팀플레이를 본 적이 있는가? 야구의 희생번트는 의도적인 희생으로 팀을 살리는 행위이다. 주자는 마치 생명을 연장하려고 애쓰는 것 같다. 생명을 잃지 않고 무사히 홈베이스로 돌아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임무다. 특히 다른 선수가 죽어가면서 살려 놓은 주자라면 더 잘 살아야한다.



5. 집단적인 의리와 신사도가 살아 있다.

상대팀 투수가 우리 타자에게 위협구를 던지면 다음 기회에 똑같이 갚아 준다. 그러면서도 벤치 클리어링에 망설이지 않고 참여 한다. 팀의 의리와 사기와도 관계있다. 야구는 정말 위험한 스포츠다.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게 서로가 보호해줘야 한다. 의도하지 않은 실수는 누구나 이해하지만 의도적으로 다치게 하려는 의도는 반드시 응징해야한다고들 생각한다. 그래야 팀의 소속감과 사기가 올라가고 서로를 보호하고 있다는 안정감이 들 수 있다. 상대에 대한 응징은 원한을 갚는 느낌이 아니라 신사적으로 경기에 임할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6. 상대를 매우 배려한다.

코로나 시국에 메이저리그가 개막이 계속 지연되면서 우리나라 경기가 미국에 생중계 된다. 미국사람들이 우리나라 선수의 배트플립(빠던)에 열광한다. 그리고 몸에 맞는 공을 던졌을 때 사과하는 투수의 모습에 신기해한다.

배트플립을 암묵적으로 금지한 미국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 서로에 대한 배려를 몸에 배도록 한 것이다. 승리감에 도취되어 타구를 너무 오래 바라보거나, 배트를 과격하게 던지는 건 홈런을 맞아 의기소침한 투수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니, 메이저리그에서는 그 다음 기회에 위협구를 맞고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게 되는게 예고된 수순이다. 사실 홈런을 친 것 자체가 기쁨이니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리면서까지 과도한 감정표현을 할 이유는 없어 보이긴 한다. 미국에서 우리의 빠던에 열광하는 것은 자국 리그 선수들이 배우기를 열망하는 부러움의 표현이 아니라 문화차이나 신기함의 표현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오히려 몸에 맞는 공을 던지고 나서 메이저리거는 사과하지 않는다. 자신이 의도적으로 맞추지 않은 것이고 당당하게 던지다 생긴 일이니 그냥 경기의 일부로 보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외국인투수조차 몸에 맞추고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전에 일본 문화에 익숙한 어떤 감독은 사과하는 투수에게 투지가 없다고 질책하여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실수로 몸에 맞춰 진루를 시켰을 때 투수가 미안해한다면, 안타를 치고 나서 타자가 투수에게 미안해해야하는 것인가라는 논리로 봤을 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우리의 인사 문화는 나빠 보이지 않는다.



7. 삶의 모습이 투영된다.

이렇게 야구에서 인생의 면면을 볼 수 있다. 한 경기가 아닌 여러 경기를 계속 치루는 것은 계속 주어지는 기회인 것이다. 확률적으로 볼 때 타자 입장에서는 성공할 기회가 아니라 더 많은 실패할 기회를 갖는다. 그래도 멈추지 않으면 무슨 일인가 일어난다.

삼진이 두려워서 배트를 휘두르지 않는다면 그 타자가 얻게 되는 최고의 성과는 볼넷일 뿐이다. 자기 스윙을 하여 홈런을 많이 하는 타자는 삼진의 개수도 비례하여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야구 경기 하나 하나에서 자신의 인생의 모습을 보며 위로받고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경계해야 할 것은 그게 자신의 인생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전에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대학선배는 야구보는 것을 죄악시했다. 3시간 이상의 경기를 그것도 매일 지켜보는 건 시간낭비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하이라이트로 족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건 매 순간 선택을 함께 하며 그 경기에서 인생을 찾는 사람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응원하는 팀이 이겨서 기분이 좋은 것은 그만큼의 감정이입이 있다는 것이니 뭐라 할 수 없다.

그래도 야구 보는 시간은 줄여야한다. 경기촉진룰을 적용하더라도 선수들의 루틴이나 의미없는 동작까지 살피는 것을 본 인생에서 할 수 있는 소중한 활동들과 바꿀 수는 없다.



8. It ain't over till it's over.

야구계의 전설 요기 베라라는 선수가 9회말 투아웃, 모두가 게임을 포기했을 때 던진 유명한 말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혹은 "끝나야 비로소 끝난 거다."라고 해석한다.

끝나봐야 아는 거다. 포기하긴 이르다. 때론 포기하고 꺼버린 경기가 뒤집힌 역대급 경기를 난 여러번 놓쳤다. 성급한 판단과 때이른 포기로 인한 거다. 승패가 기울면 감독들은 주전이 아닌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기도 하고, 투수를 아끼려고 끝이 보이지 않는 오랜 시간까지 안타를 두들겨맞는 투수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서 욕을 먹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또 다른 희망을 준비하는 과정일 수 있다. 오늘 게임은 망했지만 다음 게임은 안 망하도록 준비하면 되는 거니까.

야구에 이런 불문률이 있다. 점수 차이가 너무 났을 때 도루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일부러 아웃당하면서 퇴근본능을 발휘할 필요는 없지만 악착같이 쥐어 짜내는 듯한 자연스럽지 않는 작전은 이미 백기를 든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아닌 것이다. 이럴 경우에도 보복구가 나오며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기도 한다.



9. 야구의 멘탈과 삶의 자세

야구는 멘탈 게임이다. 어떤 투수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스트라이크를 못 던지기도 한다. 사소한 흐름에도 게임이 파도를 탄다. 이번에 기회를 못 잡으면 그 기회는 거의 틀림없이 상대방에게 넘어간다. 기회는 늘 내곁에 머무르지는 않는거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기회(행운)의 여신의 뒷머리는 대머리라고. 앞에 있을땐 무성한 앞머리를 잡을 수 있지만 지나간 후에는 다른 절대로 잡을 수 없다고. 정말 좋은 기회를 놓친 후의 위기에 대한 불길한 느낌은 자주 현실이 된다.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은 야구멘탈에 적합하지 않다. 최고의 마무리 소방수는 블로운 세이브를 하고 이렇게 말했다. "블로운 세이브는 마무리 투수의 숙명이다."

훌륭한 투수도 홈런을 맞고 훌륭한 타자도 연속삼진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걸 딛고 일어서는 선수만 레전드로 기억된다.


인생도 레전드로 기억되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끝날 때까지 포기해서도 안 된다. 지금 선택의 결과에 대해 후회를 해서도 안 된다. 그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고,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그저 최선을 다하는 거다. 오늘의 승리만 의미 있는 건 아니다. 이후의 승리를 위한 값진 패배에서도 성장하며 기회를 얻으니까...


야구처럼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지, 인생을 살아가는 것처럼 야구를 하는지 뭐가 뭐의 메타포인지 글 쓰는 데 열중하다보니 잠시 혼란이 오기도 했다.


그냥 그렇게 게임은 계속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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