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 정여울

by 청블리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정여울 작가의 진심 어린 위로가 가득 담긴 책입니다. 공감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이미 작가가 저와의 공감을 이루어 낸 것을 확인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이유도 모르게 힘들고, 힘든 것을 인식조차 못 하면서 힘들어하고 있던 제게 보내진 편지 같은 감동이었습니다.


전체의 메시지가 다 좋았지만 그중 몇 가지 부분만 발췌하여 정리합니다.




<당신과 나 사이의 피할 수 없는 거리감>



갭(gap)이라는 단어는 틈새, 균열, 간극, 차이 등으로 해석되며 A와 B 사이에 벌어진 틈이나 거리를 말하지만, 그 거리감이 차갑고 냉정한 것만은 아니다. 제대로 된 거리감을 획득하지 못해 실패하는 관계가 많다. 커플이라는 이유로 지나치게 모든 것을 공유하다 보면 문득 나만의 시간이나 공간을 갖고 싶어져 상대방의 사랑이 소유욕이나 집착으로 느껴지곤 한다. 모든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내 모든 과거와 숨기고 싶은 아픔까지 상대방에게 다 말해야 한다면, 그것은 사랑을 넘어 집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 사이의 어쩔 수 없는 갭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상대방을 내 눈에 비친 너로만 바라보게 된다. 즉 상대방에게는 내 눈에 비치고 해석되는 그 사람뿐 아니라, 내가 나의 잣대로 해석할 수 없는 낯선 사람의 모습, 내 이해의 폭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또 하나의 타인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놓쳐버리는 것이다.

당신과 나 사이에는 그 어떤 노력으로도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건, 결코 사랑의 포기가 아니다. 그와의 거리감을 존중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내적 자각이다. 거리를 존중할 때, 더 크고 깊은 사랑이 시작된다.



갭을 인정하지 못하면 자신의 눈에 비친 모습으로만 바라본다는 것이 무섭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교사로서 많은 순수한 영혼들을 만나는 저로서는 그들을 존중하며 바라보는 것이 두렵고 떨리는 일임을 의식적으로 인식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합니다.


거리가 먼 것은 눈에 훤히 보이는 문제이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것은 좋은 의도로 포장된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음을, 그런 가능성을 늘 열어두어야겠습니다.


우리 부부는 부모로서 늘 딸들과 그 거리의 긴장감을 두고 신경전을 벌입니다. 거의 매번 아이들과의 거리는 부모의 생각보다 더 멀어야 한다는 것을 씁쓸하게 깨닫게 됩니다.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교사의 말>


내가 트라우마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 트라우마가 나를 소유한다는 말이 있다. 트라우마의 본질은 통제 불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50명이 넘는 아이들 앞에서 나에게 세 글자의 날카로운 비수를 꽂았다. “또 너니?”

“또 너니?”처럼 비수를 꽂는 말이 아니라 “괜찮니?” 같은 위로의 말이었다면, 나는 내 인생 전체를 또 왕따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저당 잡히지 않아도 됐을 텐데. 트라우마의 무서운 점은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단 세 마디가 작가의 삶을 뒤흔들어 놓을 상처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정작 그런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교사는 그 영향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 같아 두렵습니다.

같은 의미의 말을 하더라도 듣는 이의 상처의 깊이는 전달하는 사람의 부정적인 감정이 섞여 있는 만큼인 것 같습니다. 전달하려는 말에 좋은 감정이 담겨 있지 않다면 감정과 메시지를 분리할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합니다.



<제자의 인생을 바꾸는 스승의 언어>


그 사람의 부분만을 알지만, 그 사람의 전체를 미루어 짐작하는 것은 훌륭한 교육자의 필수 덕목이다.

자신의 열정과 재능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학생에게, '넌 여기에 재능이 있고, 반드시 이걸 해낼 수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 그가 진정한 스승 아닐까. 학생이 보여주는 부분적 가능성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전체성을 그려내는 투시력과 혜안, 그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필요한 아름다운 스승의 덕목이 아닐까.


보이는 그대로 말해주는 것을 때로는 팩트폭력이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자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말은 그 사람의 능력과 정체성을 규정하고 제한하기도 합니다.

미래와 잠재성, 그리고 드러나지 않은 부분까지 함께 애정으로 관찰하는 노력과 시간을 들인 교사들만 학생들에 대해 겨우 몇 마디를 던질 자격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말을 너무 쉽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교사로서, 부모로서 늘 하게 됩니다.





<행복한 가정에서도 트라우마는 발생한다>


사랑이 부족해서 상처가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히는 것이었다.

아이에게 과도하게 기대하고 심각하게 실망하는 감정의 패턴은 아이에게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자기 징벌의 사고방식을 각인시킨다.


좋은 의도가 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겠지요. 사랑도 자신의 입장에서의 표현은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관계에서의 상처가 더 클 수도 있는 건 배신감은 기대하지 않았던 안티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서른이 넘도록 아직 꿈을 찾는 당신에게>


서른이 넘어서야 내 꿈을 깨달았지만 결코 늦은 것이 아니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야망이나 적극성이 아니라, 완연한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몸짓이다.

당신이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 꿈을 꿀 수 있다면, 그것은 결코 남들에게 뒤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매번 새로이 발견할 용기를 잃지 않은 것이다.


꼭 서른이 아니라도 학생들은 늘 자신의 꿈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좌절합니다. 전교 상위권은 본인의 적성과 관계없이 의대라는 꿈이 정해진 경우가 많고 전교권이어야 사대나 교대를 꿈꾸는 등 꿈도 성적순으로 취업 잘 되는 순으로 정해진 것 같아 결국 학생들의 좌절은 꿈을 못 찾은 좌절이라기보다 성적에 대한 좌절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찌감치 꿈을 정하고 일관된 노력을 해야 유리하다는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부담감도 한몫하고 있는 현실이지요.

꿈을 찾는 스케줄은 모두가 다 다릅니다. 빨리 찾는 것보다 중요한 건 늦더라도 제대로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꿈을 찾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기다리는 몸짓"입니다.




<콤플렉스, 인간 정신의 화약고>


결핍 자체가 콤플렉스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결핍에 대한 감정이 콤플렉스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가와이 하야오는 콤플렉스를 무조건 숨기고 억누르는 것보다는 무의식 깊이 잠재된 콤플렉스를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의식과 무의식의 평등한 대결을 지향하는 것이 내적 성장의 지름길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콤플렉스 없는 자아실현은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결핍과 매번 싸우는 험난한 투쟁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자아실현, 즉 가장 자기다운 자기가 되어가는 심리적 변신의 과정을 버티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성장의 출발점은 부족함을 인식하는 그곳입니다. 마음이 가난해져야 결국 부유해질 기회를 얻습니다. 상처 가득한 냉철한 현실 인식이 절망이 아닌 이유입니다.



아래의 글은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요즈음 과로로 인해 몸 상태가 말이 아닌 제 입장에서 너무 와닿는 글이라서 길고 구체적으로 발췌하였습니다. 제 의견은 생략합니다.

모두들 너무 불태우지 마시고 여백의 미를 누리며 지내시길...


<번아웃 시대, 내 안의 잃어버린 에너지를 찾아서>


남성과 여성은 번아웃을 표현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여성들이 주로 극도의 슬픔이나 눈물 등의 감정 체계를 동원하여 번아웃을 표현하는 반면, 남성들은 심혈관계 질환이나 골절, 위궤양 등 신체적 질병을 통해 번아웃을 뒤늦게 안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번아웃이 오면 남성에 비해 빨리 깨닫고 자신의 증상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 남성들은 더 오래 참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쓰러질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모든 증상이 신체가 우리를 향해 보내는 구조 신호임을 안다면, 번아웃을 조금이라도 느낄 때 더욱 빨리 적극적으로 신체와 정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스스로에게 정면으로 질문해야 한다. 무엇이 삶을 태워버리고 있는지, 헌신하고 있는 직업이나 직장이 과연 내 가치를 진정으로 발휘할 수 있는 곳 인지, 먹고사니즘이라는 지상명령에 가려 자신의 존엄을 스스로 감아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번아웃의 위험이 높은 사람들의 특징

1) 일중독 성향이 강하다.

자신의 가치를 주변의 인정으로 확인받는 성향이 강할수록, 번아웃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성실함 그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맹목적인 성실함과 자기를 돌아보지 않는 여백 없는 삶이 번아웃을 부추긴다.


2) 몸의 신호를 무시한다.

‘결국 모든 게 잘 될 거야’라는 근거 없는 낙관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3) 주변 사람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때로는 나보다 남이 나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삶에서 일을 하고 성취를 하고 조직 속에 속하는 시간은 이른바 '무대 위의 시간'이다. 우리는 배우처럼 저마다의 무대에서 자신의 페르소나를 드러내며 연기를 한다. 하지만 24시간 내내 무대 위에 있을 수는 없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을 좌우하는 것은 오히려 무대 뒤의 시간이 아닐까. 현대인의 외면과 내면의 괴리를 드러내는 '포커페이스'나 '쇼윈도 부부'라는 말이 있는 것도, 무대 위의 시간에서는 누구나 연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대 뒤의 시간에서는 누구도 연기를 할 필요가 없다. 특히 번아웃 증상의 경우, 혼자 있을 때 자신의 고통과 제대로 대면하지 않으면, 치유의 실마리를 얻을 수가 없다. 왜 이 일에 집착하는지, 왜 타인의 평가에 이토록 좌지우지되는지, 왜 내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일을 하는 도구로 여기는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 일을 중심으로 인생이 돌아가는 것에 질문을 던져보고, 일에 관련된 모든 인간관계와 감정 소모를 되돌아볼 수 있는 무대 뒤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때, 번아웃은 출구를 찾을 수 있다.


번아웃 증상에서 회복되기 위한 길

1) 쏟아지는 일감이나 타인의 요구로부터 벗어나기

거절이 시작이며 거절의 대가를 치른다. 몸과 마음이 잠시 휴식을 원한다고, 더 행복한 삶을 위해 우선멈춤이 필요하다고. 가족에게 진심으로 이해를 구하기.


2) 삶의 속도를 구체적으로 줄이기


3) 주변의 모든 자극을 일의 방해물로 여기는 대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감각 훈련하기

자신에 대한 인식, 감정 표현 솔직해지기


삶은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게임의 레벨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자신과 진솔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느냐에 따라, 삶의 밑그림은 달라질 수 있다. '나이가 차면 취직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해야 하고 집을 마련해야 하고, 일에서 성공해야 하고' 하는 식으로 삶의 단계를 순차적으로 밟아가야 한다는 목적의식으로부터 한 번이라도 벗어나 보자. 자신을 일의 성취도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찬찬히 살펴보고 들여다보자.


삶에 대한 되새김질의 몸짓이 부족할수록, 번아웃에 빠질 위험에 노출된다. 되새기는 것, 돌아보는 것, 헤아려보는 것이야말로 삶의 속도전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 챙김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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