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교사상 - 기술력보다 중요한 시간낭비

by 청블리쌤

우연한 기회에 졸업한 제자에게는 먼저 전화하지 않는다는 나만의 원칙을 깨고 4년 전 반 학생들에게 전화를 돌리게 되었다. 난 자연스럽게 학생들에게 잊혀지고 있었는데 더 잊혀지기 전에 그때 미처 전하지 못한 아쉬움과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그들에게 건네는 작별인사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이 끝이 아니듯 대학 입학도 성공의 보장도 아니며 어떤 상황에서도 매 순간 성장의 한 걸음씩 내디딜 것과 한참 후에나 확인 가능한 도달점에 가서 누릴 행복 외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행복할 것을 종례처럼 당부하였다.


그리고 4년 전 반 학생은 아니지만, 영남대 의대와 서울대 의대에 간 제자들과도 한참을 통화했다. 꼭 의대라서가 아니라 스스로 어설프게 공부 잘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보다 오히려 겸손함으로 무장한 그 제자들은 성장의 끝을 모른다는 것을 또 한 번 확인하였다.

역시 겸손함은 성장의 출발점이었다. 수업을 잘 듣는 학생들은 개인적인 대화에서도 경청으로 드러난다. 수업 시간에는 눈빛으로 몰입을 증명하는데 목소리만으로도 신기하게 경청이 느껴진다. 사소한 말도 잘 기억하며 어떤 말과 상황을 통해서도 배운다. 상대를 존중하며 감사할 줄 안다. 그저 감동이다. 내가 그들을 돕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난 그들로부터 상상 이상의 선물을 받고 있었다.


난 내가 수업을 잘하는 줄 알았다. 일타강사들의 강의를 한 번씩 엿보며 나의 수업은 그 이상일 거라 생각했고, 학생들의 뜨거운 반응이 그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학생들을 비롯한 대구여고 학생들이 내 수업을 잘 들어 준 것이었고 나의 열정은 그들의 열정에 대한 반응이었을 뿐이었다. 학생들이 내 수업에 몰입하지 않을 때는 좋은 수업의 가치를 모른다며 학생 탓을 하곤 했다. 난 그저 겸손해야 했고 현실을 직시하며 철저하게 더 노력했어야 했다. 그들의 능력을 빌려서 나의 능력인 것처럼 착각했던 지난 시절의 허망한 기억에서 벗어난 건 다행이다.


그럼에도 그 제자는 나에게 고마워했다. 어찌 보면 교사의 역할은 교사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역량을 최대로 끌어내도록 지켜보는 일이다. 오히려 교사의 주도적 역할이 줄어들수록 학생들은 더 성장한다는 건 정말 아이러니다.

결국, 교육현장에서 주연은 학생이고 난 조연일 뿐이라는 사실을 나이를 들어가며 더 절실히 깨닫는다. 학생들이 날 좋아해 주고 존중해 주고 그들의 능력으로 나의 부족함을 끌어 주었기 때문에 내가 훌륭한 교사라는 생각과 자신감으로 지냈던 것이었다. 그래서 난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내게 돌아온 건 더 큰 감사의 말이었다.


영남대 의대에 진학한 학생은 코로나 사태를 맞아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가 자신의 현실이 될 것임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다. 의대 교수님이 늘 강조하시는 의료인의 우선순위에 대한 숭고한 교육도 그 제자의 최상의 것들을 끌어내고 있었다.


서울대 의대에 진학한 학생도 동일한 사명감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본과 들어가기 전의 폭풍의 전야와 같은 시간에 평온함으로 삶에 충실하고 있었다. 서울대 의대 교수님 한 분이 학점 4.3점 만점에서 3.9점을 받았다면 그 0.4점은 다른 의미 있는 활동과 생활로 채운 것이어야 한다는 말씀도 내게 전해주었다(난 그 제자에게 넌 학점과 맞바꾸지 않고도 여유를 가지고 다 감당할만한 능력이 된다고 부담스러운 격려로 반응하였다). 성적과 맞바꿀만한 중요한 활동과 의미 있는 삶으로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는 책임을 묻는 말이기도 하지만, 거의 성적에만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을 서울대 의대학생들에게는 위로와 힐링 같은 메시지였을 것이다. 다른 의대는 본과의 전공과 실습 내용을 1,2학년 예과에서 어느 정도 진행하는 경우가 있지만 서울대 의대는 본과의 내용은 본과에만 집중하도록 하는 것도 치열한 길을 달려온 그들에게 보내는 암묵적인 위로와 칭찬의 메시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제자는 또 카톡에 지인의 생일이 뜨면 선물을 보내주곤 하는데, 어머니께서는 돈으로 뭔가를 해주는 것도 의미 있어 계속하면 좋겠지만,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 더 귀한 일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시간을 내어 전화를 해 준 내게 고마움을 함께 전하기도 했다.

그 말을 듣고 난 또 교사로서의 자세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교사의 역할과 정체성에 대한 재정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공교육 교사들도 수업능력에 프로가 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좋은 인강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로 인해 면제되지 않는다. 이미 어설픈 환경에서 인강을 찍는 교사의 능력을 학부모들이 학생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아니 그 전에도 학생 실력이 높은 학교에서는 교사의 수업을 한 번 듣고는 벌써 학생들 사이에 평가가 끝나기 때문에 실력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언론에 비춰진 무력한 교사에 대한 인상과는 다르게 공교육에서도 수업능력을 갖춘 분들이 많다. 기술적으로나 장비 지원적으로 서툴고 어색한 동영상 강의의 형태 등으로 그 교사들의 능력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그래도 어쨌거나 코로나 사태로 더 뚜렷하게 이 시대는 변화에 대응하는 교사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에 대응하는 교사가 갖추어야할 기술적인 적응과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하는 능력에 가려지지 않아야 할 것은 교사들의 거룩한 시간 낭비이다. 경제성과 효율성을 따지지 않는 헌신이 교육의 효과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증폭시킨다. 어차피 지식전달자만으로서는 경쟁력을 보장할 수 없고, 대면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가 없는 시대적 요구가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온라인개학 전에도 일방적인 수업보다 어차피 오프라인 학교에서도 과정 중심, 학생 참여 수업이 대세를 이루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온라인 교육 플랫폼과 기술적인 문제까지 함께 떠올라서 그렇지 이미 변화는 시작되고 있었던 거다.

그러나 그런 변화 속에서 난 더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교사상을 그려본다. 직접 만나며 교감하고 학생들에게 지식 전달 이상의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인격적인 교사상이 그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서울대 의대 제자는, 실력이 모자라지도 않으면서도 나의 모든 정규수업, 방과후수업, 점심시간인문학독해특강, 게릴라문법단기특강, 방학 심화수업, 1년 내내 영어멘토링자기주도학습 등 내가 하는 모든 영어활동에 굳이 겸손하게 다 참여했다. 그리고 그 학생외에도 많은 학생들의 열정으로 인해 더 열심히 수업을 준비하고 아낌없이 모든 것을 다 내어 줄 수 있었으며 가장 건강이 안 좋은 해였음에도 영어교사임이 너무 행복했었다. 실은 나도 굳이 시간과 노력을 더 들일 필요 없었던 부분까지도 열정의 모습을 발휘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눈빛으로만 수업에 몰입을 말했던 그 제자는 이런 개별적인 기회에 내게 그 성장의 깊이과 사려깊은 말로 내게 많은 영감과 감동과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교사들은 제자들로 인해 자신이 얼마나 축복받은 자리에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올해도 그 축복 가운데 두려움과 떨림으로 학생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내 생애 이런 긴 기다림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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