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은 오랜만이다.
그저 끝이 아니길 바라는지 애써 무딘 척하는 것인지...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졸업식을 일상처럼 마주했다.
작년에 학교를 떠나면서도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아 괜찮을 거라 방심하던 어느 날 밤 갑자기 봉인 해제되듯 터졌던 눈물을 멈출 방법이 없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평정심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아이들이 내 캐릭터를 새긴 케이크와 롤링페이퍼를 안겨주었다.
케이크의 문구도 강력했다. "청블리쌤은 좋겠다. 우리가 제자라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건 내가 할 말인데ㅋㅋ
담담하게 케이크의 촛불을 끄자, 내가 감격해서 눈물을 흘릴 거라 잔뜩 기대했던 아이들이 바로 내게 실망의 표정으로 이랬다.
“선생님 안 우세요?”
“이런 거 자주 겪어서 아무렇지도 않으신가 보다”
아이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미안했다. 혼자 속으로 이렇게 변명하고 있었다.
“얘들아, 너희들이 학교를 떠나고 일상 속에서 너희들이 빈자리가 문득문득 느껴질 때를 위해 눈물은 아껴둘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마지막이라는 비장함이 아닌 고등학교 가서도, 오히려 고등학교 가서 내가 어떻게든 너희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붙잡고 싶어.”
그럼에도 난 알고 있었다. 졸업을 하거나 진급을 할 때 교사와 학생들 간의 주도권은 학생들이 쥐게 된다는 사실... 연락을 자주 할 거라고 내게 강요하듯 약속을 하더라도, 그 말은 하는 그 순간에는 분명 진심이었더라도, 시간의 흐름과 현실과 일상 속에 서서히 멀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그들도 알게 될 거라는걸...
졸업식인데도 코로나 상황으로 아이들과 제대로 작별도 하지 못하고 바쁘게 헤어져야 했다. 차라리 끝맺음을 하지 못한 여운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쉬운 마음을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었다.
고등학교 가서는 못다했던 상담해 줄 수 있으니 연락하면서 지내자는 말만 아이들에게 겨우 전했다.
수업만 들었던 다른 반 학생들을 포함해서 아이들이 내게 전해준 편지의 한 문장, 한 글자가 다 감동이었지만 그중 몇 구절과 간단한 나의 심정을 정리해 보려 한다.
* 중학교 생활의 마지막을 선생님의 첫 중학교 교직생활과 같이 보내서 행복해요. 조용하고 말 안 듣지만 선생님께 애정 가득한 거 아시죠? 잊지 못해요. 열정 가득 항상 잘 챙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너가 언제 말을 잘 안 들었다고 그러니. 애정은 내가 더 가득했다고 자부하지만 인정할게. 나도 잊지 못한다ㅠㅠ
* 커서 만나러 올게요.
- 언제 다 클래? ㅋㅋ
* 저희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너희의 잊지 못할 추억의 한 부분에 날 끼워줘서 그저 고마울 뿐이다.
* 항상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졸업해도 정말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에 남아 있을 거예요.
- 나의 관심과 사랑을 알아봐 줘서 고맙구나. 약속 지키렴. 잊으면 안 된다.
* 선생님과 1년을 보낼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요! 선생님도 좋으셨을진 모르겠지만 서툰 저희 반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당연히 좋았지. 말이라고 하니? 서툰 반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반이라고 해두자. 나도 너희와 1년 정말 행복했다.
* 선생님이 중학교 마지막 담임선생님이라서 너무 좋았어요. 학생 한 명 한 명 최선을 다해서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등학교 가서도 잊지 않을게요.
- 나도 너희들이 내 중학교 첫 제자라서 너무 좋았다. 고등학교 가서 잊지 않았거든 한 번씩 소식 전해주렴.
* 나만의 아기천사 청블리 선생님을 처음 본 순간 심쿵!! 보석 같은 눈과 솜사탕 같은 미소 너무 달콤해. So sweet!
- 어른을 놀리면 못쓴다ㅋㅋ 마스크를 쓰고 있었으니 솜사탕 같은 미소는 눈웃음이겠구나ㅋㅋ
* 저의 중학교 마지막 1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너희들 스스로 만들어갔던 행복을 난 그저 지켜보았을 뿐이구나. 감사하게도...
* 선생님 덕분에 영어에 대한 부담감도 점점 사라지고 영어만 너무 못해서 받던 스트레스도 많이 사라졌어요! 수업시간에 그렇게 열정적인 학생도 아니었는데 항상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시고 책도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 내가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해줬다니 너무 뿌듯하고 기쁘구나. 나의 열심은 어떻게든 의욕적으로 해보려고 애쓰던 너의 간절함과 반짝이는 눈빛에 대한 나의 반응이었을 뿐이란다.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하며 멈추지만 않으면 결국 이룰 거란다. 힘내렴. 그저 영어선생님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진심을 전해줘서 정말 고맙다.
* 1년 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코로나 때문에 많은 추억을 남기지 못하고 졸업해서 아쉽네요ㅠㅠ 그래도 선생님이 많이 신경 써주신 덕분에 올 한 해 알차게 보낼 수 있었어요. 사실 처음에 선생님께서 해주시는 것들을 다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씩 해나가면 된다는 선생님 말씀 덕분에 공부도 열심히 하고 혼자 했으면 버거웠을 고등학교 공부도 할 수 있었어요. 앞으로도 선생님이 해주신 조언대로 열심히 노력해 볼게요. 선생님이 자주 해주시던 고1 선배님 얘기나 타임머신 얘기가 지금 와닿는다는 건 아쉬움이 남는 거겠죠? 조금 더 선생님이 이끌어 주시는 대로 잘해봤으면 좋았을 걸 하기도 하고 선생님께 죄송하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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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연락 자주 해도 될까요? 귀찮으셔도 선생님을 너무 좋아하는 제자로 귀엽게 봐주세요 > < 1년 동안 너무 수고하셨고 감사합니다. 선생님을 못 만났다면 앞으로가 훨씬 막막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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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첫 중딩 제자....
- 내가 진행하는 모든 프로그램에 이렇게 긍정적인 마음으로 한순간도 신뢰를 놓치지 않으며 따라와 준 너가 너무 고맙고 대견하다. 눈에 보이는 성과나 뭔가를 이뤘다는 안도감이 아니라 때론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성장했을 거고 애쓰는 것만큼 실력을 키웠으니 "어쩌다 보니" 반드시 발휘될 너의 성취를 어느 때일지 모를 그때에 마음껏 누리며 행복해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 고등학교에서 중학교에 와서 타임슬립 시간 여행자라고 말하던 나의 외침을 귀담아듣고 너도 애썼기 때문에 아쉬움이라는 이름으로 이전의 과정을 돌아볼 수 있는 거란다. 앞으로 지금보다 더 발전하고 성장할 거고, 그 성장의 폭과 속도도 갈수록 커지고 빨라질 것이니 기대하렴. 언제든 연락하렴. 난 지금 중학교에 있지만 내 삶의 절반을 고등학교에서 보냈던 경험으로 오히려 중학교에서 함께 있었던 때보다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을지도... 나의 수고와 노력도 기억해 줘서 고맙구나. 나도 너의 수고와 애씀, 잊지 않고 계속 응원할게.
* 선생님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저에게 손 내밀어 주시고 조언도 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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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멘토링 하다가 단어와 강의를 병행하며 힘들었는데.. 선생님의 말씀(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을 듣고 조금씩 바꿔나갔더니 영어공부가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고, 무조건 암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렇게 선생님이 하시는 활동(영어멘토링, 방과후수업, 자기주도학습코칭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아요.
방학인데도 전화로 고민상담도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고등학교 가서도 연락드릴 테니까 저 잊지 마세요!!!
- 편지 한 글자 한 글자 감동하며 공들여 읽었단다ㅠㅠ 표면적으로는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지만 너가 이렇게 진심을 다하며 성장할 줄 알고 있었단다. 덕분에 중학교 첫해의 의미를 찾을 수 있어서 참 고마웠다
넌 고등학교 가서도 끊임없이 성장을 이루고, 감동을 전하며 여전히 누구에게도 사랑스러울 거라 믿고, 기대하고 응원할게.
*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공부에 대해, 더 나아가 삶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어요. 1년 동안 선생님께 배웠던 시간이 공부 면에서나 삶의 면에서나 제 인생에게 가장 크게 변화했던(성장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무조건 완벽하게 꼼꼼하게 하려던 강박이 사라지게 되었고, 선생님의 ‘행복할 만큼만’이라는 말씀으로 공부하는 목적을 생각하며 행복하게 공부하자는 의지가 생기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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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짐하고 실패하고 하는 그 과정 동안 선생님께서는 꾸짖지 않으시고 저 스스로 다시 도전할 수 있게, 언제든지 선생님께 다시 찾아갈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만들어주시고, 한결같이 있어주셨습니다.
...
졸업한다고 해도 항상 선생님의 말씀과 조언을 떠올리며 자주 찾을게요.
너무너무 감사했습니다.
이제 선생님을 만나게 될 후배들이 부럽네요. 그 친구들에게 선생님이 큰 힘이 될 거예요.(제가 그랬으니까...)
- 똑같이 수업을 들으면서도 받아들이는 것이 각기 다 다르다는 것... 하나의 소설을 100명이 읽으면 하나가 아니라 100개의 이야기가 되는 것처럼... 이렇게 내 수업에 반응해 주고, 너에 대한 상담과 조언을 꼰대의 말이라고 멀리하지 않고 마음에 새기며 성장을 이뤄갔던 너의 모습을 1년 내내 감탄하며 지켜보았단다. 놀라운 건 그 성장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지. 고등학교 가서 더 멋지게 활약할 너의 모습이 애쓰지 않아도 그냥 상상이 된다. 너는 실패라고 말했지만 그건 성장의 다른 이름이란다. 우리 모두, 세상의 어떤 것도 결국 우상향을 하더라도 굴곡이 없이 이뤄지는 경우는 없는 것이니. 지금이 바닥 같다면 좋아질 일만 남은 것이고, 절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잠시 자연스러운 흐름에 몸을 맡겨 다시 도약할 기회를 보며 여유를 가지면 되는 거다. 그게 너가 고등학교에 가서도 기억해야 할 행복공부의 비결 중 하나란다.
나의 프로그램에 끝까지 살아남아 줘서, 그 자리를 지켜줘서 너무 고마웠다. 힘들 때 고민스러운 일 있을 때, 고등학교 선생님과 우선적으로 친해지고 다가가도록 하는 게 좋겠지만 내게도 한 번씩 연락해도 된단다.
너의 후배들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너의 편지 중 가장 내 가슴을 울렸던 구절대로 후배들 스스로 다시 도전할 수 있게, 언제든지 내게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만들어주고, 한결같이 있어주도록 애써볼게.
난 또 이렇게 행복의 주인공이 되었다. 첫 중학교에서 첫 중학교 제자들에게 중학교 시절에 필요한 것들을 다 채워주지 못하고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아쉬움도 가득하지만, 그들은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면서 스스로 성장을 이뤄가고 있었다. 그러고도 나를 기억해 주다니... 그저 난 복에 겨운 감사를 느낄 뿐이다.
첫 중학교에서 서툴렀어도 난 진심을 다했으니.. 혹 있을 아쉬움에 대해 비장해하지 않고 학교를 떠난 그들에게도 나의 위로와 응원이 닿을 방법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아니 내가 찾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찾아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