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와 이과의 차이에 대해 회자되는 이야기가 많다. 서로가 대립각을 세울 정도로 극명한 차이가 드러나기도 한다. 문과는 굳이 인과관계 없는 감이나 느낌을 중시할 때가 있고, 이과는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으면 믿으려 하지 않는 특성이 두드러질 때가 있다.
문과는 컴퓨터나 모바일의 활용을 하려 할 뿐 하드웨어적인 원리나 컴퓨터 언어 등에 별 관심이 없다. 이과 중 컴퓨터 공학도는 하드웨어, 코딩, 컴퓨터 언어 자체와 그 원리에도 관심을 가진다. 문과의 무모한 상상력이 때로는 이과의 기술력과 전문성을 만나면 기적처럼 보이는 일을 이뤄갈 수 있다. 문과는 대책 없이 확산해가고, 이과는 정답과 원리를 찾아 수렴하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문과인 나는 공대생인 딸 덕분에 뇌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물론 뇌의 기능으로 인한 인간의 아름다운 외적 발현이 너무 단순한 원리로 설명되는 부분에서는 차리리 모르고 있는 편이 더 낭만적이었겠다는 생각을 다소 하긴 했지만, 어차피 문과나 이과가 이분법적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는 것도 아닌 데다가, 서로의 시각을 보완하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기는 했기 때문에 이 책은 내게 흥미 있고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저자는 뇌과학의 대가인 KAIST 생명공학과 김대수 교수... 부연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 분야의 권위자이다.
책의 내용 중 기억과 학습의 원리 및 교육에 관련된 몇 부분을 발췌하여 내 생각을 덧붙여 본다.
뇌 과학 여행의 첫 번째 규칙은 ‘나’와 ‘뇌’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뇌는 전지적 관찰자 시점으로 스스로를 관찰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능력을 뇌 과학 전문용어로 ‘의식 consciousness’이라고 한다.
- 내 생각 : 신기한 일이다. 그 의식조차 뇌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 의식을 의식하는 것.. 그러니까 메타인지 같은 느낌이었다. 익숙함과 당연한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래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이 앎과 학문의 시작인 것이다.
우리 눈앞에 실감 나게 펼쳐진 풍경과 사물은 실제로는 신경세포가 만들어내는 전기신호인 것이다.
- 내 생각 :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바라보는 아름다움이 축소되는 느낌이다. 과학적 팩트의 조합으로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간을 구성하는 산소, 탄소, 수소, 질소, 칼슘, 인, 칼륨, 황... 등의 원소의 총합을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그래도 신기하고 놀랍다.
뇌가 만들어낸 앎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불행이라면 이것을 아는 능력은 축복이다.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사람은 호기심을 가지고 많은 대상들을 새롭게 만날 수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아는 느낌을 내려놓는 경험을 해보라’고 말한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느낌일 뿐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대상에 대하여 진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내 생각 : 모르는 것을 의식하는 것에서 앎이 시작된다는 역설은 뇌 과학이 아니라도 교육이라는 분야를 겪어본 사람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런데 모른다는 것을 자각하거나, 모른다고 생각은 해도 인정하기가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에 우리의 배움도 지체된다.
뇌 친화적 학습은 입력되는 지식의 양을 늘리는 것이 아닌, 적은 지식으로 아는 힘을 키우는 데 있다.
자녀가 공부를 하지 않아서 걱정이라는 부모님들을 만날 때면 나는 ‘자녀들은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고 안 하는 것’이라고 웃으며 말하곤 한다. 평생 앎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과도한 지식을 절제하고 있는 것이다.
- 내 생각 : 뇌 기능과 역할의 경제성이라고 해야 할까? 최소한의 정보와 작업으로 기능을 하려는 본성을 지킨다는 것은 선택과 집중의 역설을 의미한다. 모든 일에 다 집중할 수 없고, 모든 정보를 다 담아둘 수 없다면 가장 필요하고 핵심적인 것을 선별해서 모아두어야 한다.
난 수업 시간에 장황하게 나열하는 것보다 오히려 암기할 부분과 지식의 곁가지를 가지치기하여 가장 핵심을 남겨두는 것에 집중한다. 수업 시간 나의 목표는 별로 아는 게 많지 않다고 오해받는 일이다. 그들의 언어로 가장 쉽고 핵심적인 사항을 응축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크로노스chronus는 해가 뜨고 지고 영원히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하고 카이로스kairos는 주관적 시간으로 특별한 때 혹은 기회를 뜻한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말은 물리적인 시간을 조작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때를 놓치지 말라는 뜻이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물리적으로 흘러가는 강물과 같아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 다만 시간의 흐름 속에 지나가는 카이로스의 시간은 인간이 활용할 수 있다. 뇌는 카이로스를 기다리고 인식하는 데 중요하다.
부모는 늘 자식들이 게임이나 놀이에 빠져 방만한 생활로 시간을 낭비한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자녀들이 적절한 때에 결정적인 인생의 순간을 스스로 깨닫고 낚아채기 위해서는 내면의 농익은 시간이 필요하다. 자녀들이 시간을 버리는 것은 때를 기다리기 위함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부모의 역할은 자녀들과 함께 때를 기다려주는 것이다.
- 내 생각 : 기다림이라는 처방은 어디서나 등장한다. 모든 일에 때가 있는 것인데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 자기만의 타이밍을 강요하려 한다. 우리는 객관적인 시간의 흐름에 좌절하고 조급해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객관적인 시간의 흐름을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며, 또 기다림이라는 여유를 통해 그걸 넘어서야 한다.
뇌는 성공한 경험을 기억하는 기능이 있다. 예를 들어 도파민 신경이 강화학습에 작용한다. 보상이 많은 행동을 하게 되면 도파민이 증가하고 행동을 조절하는 전두엽과 선조체에 작용한다. 보상을 얻을 때 나타난 행동을 기억하고 강화하기 위함이다.
도파민 신경은 예측을 한다는 신기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보상이 주어질 만한 대상이나 상황이 되면 보상을 받기 전에도 도파민 신경이 반응한다. 이러한 예측이 빗나가면 물론 도파민 신경의 흥분이 점차 줄어든다. 그런데 성공한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여전히 도파민 신경이 작동한다면 중독 상태를 의심해 봐야 한다(주식 투자로 손해를 보고 있음에도 계속 투자하는 것처럼). 성공이 보상을 주지만 성공한 경험은 나를 그것에 더욱 몰입하도록 한다.
결국 강화학습 전략은 경험에 의존한다는 것이 장점이자 결정적인 약점이다. 상황이 변한다면 혹은 경쟁 상대가 나의 강화학습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 내 생각 : 성공한 경험에 의한 강화학습 전략은 유의미하며 어느 정도의 성공적인 학습과 성장을 가져다준다. 그 보상을 신경과학적으로는 도파민의 작용이라고 본다. 도파민 작용이 조절이 되지 않는 상황을 중독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독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도 성공한 경험에 의한 도파민 작용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 상황은 늘 변하게 되어 있어 일관된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속성은 보상이 없이도 습관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때로는 보상이 없어도 절제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다만, 습관형성까지의 문턱이 높을 뿐이다. 일상 속에서 습관을 이뤄가는 것에 대한 소소한 성취의 경험이 더 중요하다.
인간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매우 독특한 전략을 가지고 있다. 목표가 나타나기 전에 미리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현재는 보이지 않지만 목표를 설정하고 나면 보다 강력한 동기로 목표를 이루기 위한 목적 지향적 행동이 나온다.
신경과학적으로 볼 때 아이들은 공부에 대한 의욕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공부를 해야 하는 목표를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목표가 생기면 뇌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노력한다.
목표는 공부를 할 의욕을 만들고, 공부를 하다 보면 새로운 목표가 설정된다. 목표와 공부의 선순환을 만다는 것이 공부를 잘하는 원리다.
가장 건전하고 효과적인 목표는 (시험 성적이나 진도 정도가 아닌) 공부 그 자체에서 찾는 것이다.
만일 당장 목표가 없다면 무작정 공부를 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기보다는 먼저 목표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 내 생각 : 인간의 행동이 의미를 가지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목적이며 목표의식이다. 그로 인해 지금 하는 행동이 설명되고 납득이 되어야 한다. 원론적으로 목표 없이 무작정 책상에 앉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리고 저자가 책의 다른 부분에서 진로와 인생의 큰 목표의 설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으나 그래서 아이들이 빨리 진로를 정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더 좌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렇게 쉽고 빠르게 자신의 진로를 결정지을 수는 없다. 그리고 어차피 인생의 큰 목표가 당장 이 순간 책상에 앉을 세세한 동기유발을 보장하지도 앉는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상과 원론만을 외칠 수 없다. 그런 거시적 목표의식이 생길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인생의 꿈과 진로 설정 여부와 관계없이 사소한 목표의식의 설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목적 없는 순간을 잘 견뎌내지 못한다. 그 목적이 즐거움이든, 궁금함의 해결이든, 게임을 할 때 성취감이든 목표는 뚜렷할수록 좋긴 하다. 그래서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이든 아니든 매 순간 목적을 재설정해야 하는데 그 목적은 절대로 거창할 필요가 없으며 진정한 성취는 그 순간을 지난 후에 사소하게라도 달라진 모습이면 된다.
한국 공교육이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최근 뉴스를 보니 학교에서 인공지능이나 코딩 교육을 강화한다고 한다. 대세가 인공지능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미래에 인공지능이 맡게 될 분야나 직업은 어려운 일이 아니고 귀찮은 일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선 현장에서 일어나는 목소리를 이해하고 현장의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를 알고 섬기려는 자세와 그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이성, 지성, 태도가 중요하다. 공교육은 인공지능으로 1등 하는 방법이 아닌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시대의 의도를 이해하고 질문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할 수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의 전유물이 된 반복학습 전략으로는 인공지능 사회에서 차별화될 수 없다.
인간은 반복학습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뇌의 첨단 기능을 발전시켜야 한다.
- 내 생각 : 인간이 지식으로 인공지능과 맞짱 뜰 수 없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지식이 되었다. 하버드 의대에서는 이미 주입식 강의 교육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임상사례와 논문들에 대한 지식을 인간의 머리에 주입하는 것은 인공지능 앞에서 더 이상 경쟁력도,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그 인공지능을 주도성을 가지고 잘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하면 되는 것이다. 곧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되 인간만의 차별화된 지점을 찾는 것이 현명한 시대가 되었다. 그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끼리의 인간적인 네트워크와 공감 능력, 감성적인 부분을 키워가는 것이 인공지능을 초월한 인간만의 능력이다.
협력을 통한 보상은 균등하지만 사기를 통해 얻는 보상은 더 크다. 협력을 통한 보상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사기를 통해 얻는 보상은 적은 노력으로도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은 어느 정도 사기를 당하지 않고 살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기를 당하고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정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내성과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 내 생각 : 그저 위로가 되는 말이다. 나만 사기를 당해본 건 아니라는 말이 이렇게 위로가 될 수가 없다. 공감 능력과 교감이 만나는 지점이다. 우리는 우리의 고통과 괴로움과 문제에 대해 상대방에게서 정답만을 기대하는 건 아니다. 그건 인공지능의 영역이기도 하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마음을 나누며 인간임을 느끼며 치유되어 간다.
그리고 참고로 사기당하는 것에 대해서 김웅검사는 <검사내전>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해석한다.
사기에 속은 것은 그것이 사실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치밀한 수에 속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에 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