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의 <팡세>를 읽고
파스칼의 팡세에서 건져올린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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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코 현재에 매달리지 않는다. 우리는 마치 오는 것이 너무 더디기라도 한 듯, 그리고 그 걸음을 재촉하려는 듯 미래로 앞서나간다. 또 우리는 마치 사라지는 것이 너무 빠르기라도 한 듯 과거를 정지시키기 위해 그것을 되살린다. 우리는 너무나도 경솔하기에 우리의 것이 아닌 시간 속에서 방황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시간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는다. 또 우리는 너무나도 공허하기에 있지 않은 시간에 사로잡혀 현존하는 유일한 시간을 아무 생각 없이 피한다. 현재는 흔히 우리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현재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겨둔다. 그리고 현재가 즐거울 때는 사라져가는 것을 보고 아쉬워한다. 우리는 이것을 미래에 의해 지탱하려고 노력하고 또 우리가 도달하리라는 아무 보장도 없는 한때를 위해 우리의 능력 범위 안에 있지도 않은 일들을 안배하려고 궁리한다.
각자 자기의 생각을 살펴보라. 우리 생각이 온통 과거 또는 미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알 것이다. 우리는 거의 현재를 생각하지 않는다. 혹 생각한다면 미래를 사용하기 위한 빛을 그것에서 빌려오기 위해서일 뿐이다. 현재는 결코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는 우리의 수단이고 단지 미래만이 우리의 목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항상 행복하려고 준비하고 있으니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은 불가피하다.
기억은 왜곡되기 쉽습니다. 좋았던 시절이라고 붙잡는 그 과거도 알고 보면 그 당시에는 힘겹다고 생각하여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더 좋았던 것 같은 과거에 대한 생각에 매몰되어 있었음에도 과거의 기억이라는 이유로 미화된 포장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너무도 자주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은 견뎌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등학생들은 자신들이 인생에서 얼마나 찬란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지를 인지하지 못한 채 빨리 그 시기가 지나가기를 너무도 간절히 바랍니다. 목표로 하는 좋은 대학에 가면, 그렇게 찬란한 미래에 도달하면 무조건 행복하기만 할 것처럼 생각하며 지금 이 순간을 잘 견뎌낼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인생에는 완전한 도달점이나 완벽한 완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뭔가를 이뤄내도 그게 끝이 아니라 생각하며 늘 그 이상을 바라며 더 큰 꿈을 꿉니다. 그래서 늘 지금 이 순간은 불만족스러울 때에나, 혹 만족스러워도 더 나은 만족을 보장할 것 같은 미래라는 시간의 중요성에 늘 자리를 내어 줍니다.
그 이면에는 일상보다 뭔가 특별한 뭔가를 바라는 심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모리와의 화요일>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에세이에 보면, 루게릭병으로 일상을 잃은 모리 교수가 온전한 건강을 회복하는 하루가 주어지면 무엇을 하겠냐는 질문에 특별한 소원이 아닌 평상시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을 단 하루 만이라도 갖고 싶다는 대답을 합니다.
<Our Town>이라는 희곡에서 에밀리는 죽음 이후 단 하루 살아 있던 날로 돌아간다면 12살 때의 생일날로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특별할 것도 없는 그저 평범한 일상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메세지입니다.
저는 결코 자기가 행복한 줄 모르는 여자아이들을 많이 알아요. 그 감정에 너무 익숙해져서 감감이 무뎌진 거예요. 하지만 전 인생의 매 순간마다 행복하다는 걸 완벽하게 확신하죠. 아무리 불행한 일이 있더라도 이러한 확신을 잃지 않을 거예요. 저는 그런 일들을(심지어 치통마저도) 재미있는 경험으로 여길거고, 그 기분이 어떤 건지 안다는 걸 기쁘게 생각할 거예요. "하늘이 내 위에서 어떤 일을 벌이고 나는 운명을 기쁘게 받아들이겠노라", 이렇게요. <키다리 아저씨>
더 행복할 준비 따위도 필요 없고, 혹 과거의 좋았던 기억이 지금 이 순간보다 더 행복하게 느껴지더라도 현실은 아니라는 사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만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