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해 하지 않는 "어쩌다 보니"의 행복 걸음

by 청블리쌤

Don’t Do Agile, Be Agile!


원래 agile의 의미

1) able to move quickly and easily(날렵한, 민첩한)

2) someone who has an agile mind is able to think very quickly and intelligently(재빠른, 기민한)



Agile Software Development(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 - 위키백과 참고

소프트웨어의 짧은 주기를 생각할 때 기존의 장기 계획 기획 같은 시스템은 빠른 변화에 대처할 수가 없고, 계획 없이 진행하는 것도 너무 무모하다. 애자일 방법론은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에 있어서 아무런 계획이 없는 개발 방법과 계획이 지나치게 많은 개발 방법들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고자 하는 방법론이다.

그래서 프로젝트 생명주기 동안 변화에 맞춘 반복적인 개발을 추구하며 재빠르게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내고 수정하게 된다.

근래에는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다양한 전문분야에서도 실용주의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추구하려는 방법론을 말한다.


그런데 애자일(미국식 영어로는 애절) 방법론에 두 가지 유형이 자주 등장한다.

Doing Agile vs Being Agile


두 가지의 차이점을 간단히 살펴보면...

“Doing” agile is actively doing the practices and applying the practices without understanding the principles behind them.

“Doing” agile은 능동적으로 하던 일들을 실행하고 적용하는데, 그 행동 이면의 원리는 이해하지 못한 채로


“Being” agile is adopting the right principles and practices and applying them to accommodate changing situations and different clients.

“Being” agile은 올바른 원리와 방안을 채택하고 적용하여 변화하는 상황과 각기 다른 고객들을 잘 수용하며 대처함


이러한 용어가 소프트웨어분야뿐 아니라 다른 방면에서도 적용이 된다. 난 교육자니까 교육분야에서 고민을 해보았다.

Cargo Cult 즉 화물숭배 현상에 대한 전설적인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의견이다.

남태평양에는 화물숭배를 하는 주민들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섬의 원주민들은 물건을 가득 실은 비행기가 착륙하는 것을 보았고, 지금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원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활주로 비슷한 것을 꾸민 후 활주로 양쪽에 불을 지피고, 사람이 앉을 오두막을 만든다. 나뭇조각 두 개를 헤드폰처럼 머리에 쓰고 대나무로 만든 안테나도 붙여 관제사처럼 앉아 비행기가 착륙하기를 기다린다. 그들은 완벽하게 모든 준비를 갖췄다. 형태는 완벽하다. 원주민들이 과거에 봤던 것과 똑같은 방식이다. 그러나 작동은 되지 않는다. 비행기가 착륙하지 않는다.

실제로 호주 원주민의 20%인 6,000명 정도가 여전히 화물숭배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 원주민들의 열심은 Doing Agile인 셈이다.


리처드 파인만의 화물숭배 이야기를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교육미신 7가지>라는 책에서 인용하며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전문가가 하는 일을 복사하듯 동일하게 한다고 해서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이 문제의 근본적인 발단은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혼동한 데 있다. 또 보이는 것들은 전체의 과정 중 단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섬 주민들은 단지 보이는 부분만을 모방함으로써 전체 과정이 재생되기를 희망했다.
이것이 우리가 학생들에게 전문가와 같은 활동을 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실수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전문가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본 후에 학생들이 그것을 그대로 재생해 보라고 권장한다.

우리는 너무도 자주 결론에 빨리 도달하고 빨리 성취를 확인받고 싶은 의욕에 원리와 과정을 무시하고 결론만 흉내 내려 한다. 계속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때로는 그게 그럴 듯해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난 학교에서 이런 현상을 “뿌리내리기보다 꽃꽂이에 집중하는” 현상이라고 표현한다. 확실한 뭔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스포츠 감독도, 학원도 기다려주지 않는 대한민국의 조급함이 눈에 보이지 않아 무시당하는 기본기와 기본원리의 근간을 흔든다. 우리의 안전불감증도 기본을 무시한 이러한 성향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대표수업이나 발표수업을 하라고 하면 “Doing Agile”을 한다. 말 그대로 전시하는 수업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가장 필요한 원리의 압축된 핵심을 제시하고, 그 기본원리로 서툴지만 학생들이 교실 밖에서 스스로 해볼 수 있도록 코칭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아이들은 자기주도성을 회복할 수 있다.


전문가는 어설픈 흉내가 아니라 단계별로 서두르지 않고 과정을 거친 후에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발현되어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과정도 행복할 수 있다.

결론을 정해 놓은 것은 그럴듯해 보이는 성취 여부를 떠나서 좌절감과 무력감이 삶의 대부분을 채운다. 늘 충분하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어제보다 다른, 아까보다 다른 사소한 성취와 성장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지기 때문이다.


주제에 넘게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세 시간짜리 강연을 했다.

어떤 선생님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찌질한 것부터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기”에 큰 용기를 얻었다고 하시고, 어떤 선생님은 “어쩌다 보니”라는 말이 마음을 울렸다고 했다.


이런 말에 위로를 받으시는 건, 우리의 사회가, 우리의 시스템이, 우리 어른들이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괜찮다고, 그럼에도 넌 여전히 성장 중이라고, 지금 이 순간 너의 진심이면 된다고... 이런 메시지를 전해주지 못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가장 가까이 있는 아이들에게...


아래 위의 두 가지 개념을 구별하는 일러스트레이션에 큰 영감을 얻는다.

Being Agile은 원리부터 제대로 알고 하는 것이니, 혁신의 출발점이기도 하고, 관계성과 신뢰가 바탕이 되며, 일이나 연구 자체가 즐거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열심만으로는 지속할 수 없고, 더 큰 문제는 방향이 틀리다는 것이고, 원리부터 단계별로 시작하지 않은 열심은 오히려 더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많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 최근에 상담했던 중학생, 고등학생은 그리고 고등학생 딸도 남들보다 수학문제 푸는 속도가 느린 것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난 이렇게 얘기했다. 빨리 답을 얻어내려고 건너뛰듯 서두르는 것은 그저 암기일 뿐이라고. 오히려 문제 푸는 과정에서의 망설임과 주저함이 생각을 깊게 하고 원리를 따지게 해서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역량을 갖추게 되는 거라고... 물론 내신 시험은 암기한다는 태세로 빠른 시간에 풀 수 있도록 충분한 연습을 해야 하지만...(그것도 원리나 이해를 출발점으로 한 숙달됨이어야 한다고)

그러니 속도가 늦는 것에 대해 위축되지 말고, 더 확실하게 고민하면서 도전하라고...

그래야 기대감과 설렘으로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서두르지만 않으면 때가 되면 나오게 되는 역량들을 억지로 강요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축구부 선수였다. 동계훈련을 하는데, 난 분명 축구 경기를 하고 싶어서 축구부에 지원했는데, 경기는 안 하고 계속 뛰어다니고, 지그재그로 달리고, 공을 밟았다가 옆으로 섰다가, 공을 트래핑 했다가, 드리블 연습만 하다가 동계훈련이 끝났다. 재미없이 이런 걸 왜 계속하며, 축구부가 무슨 축구부 아닌 애들보다 축구 경기를 더 안 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었는데... 6학년 축구 경기를 하다가 몸이 기억하고 있는 동작이 자연스럽게 나오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무게중심을 무너지게 하면서 공이 발에 붙은 것처럼 드리블하고 있는 스스로에 놀랐다. 머리로 이해해서가 아니라 지식적으로가 아니라 기본기부터 훈련한 효과가 실전에 나타난 것이었다. 오히려 실전이 없었기 때문에 실전에서 제대로 할 수 있었던 아이러니였다.


난 그러한 기본기의 중요성을 믿는다. 전문성이나 역량은 우리가 언제부터라고 정해 놓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나타나는 것이다. 심지어 과정 중에 한 번도 확인받지 못하기도 하는데도...

단, 출발점과 방향과 지속적인 노력을 피하면서 “어쩌다 보니”는 없다.


그게 내가 늘 외치는 “행복 걸음”이다. 남들의 속도를 많이 의식하지 않는 나만의 걸음... 그게 진정한 성장임을 지금 아닌 훗날 알게 될 것이지만, 과정에 집중하면 그 훗날이 좀 멀어도 상관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충분히 행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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