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 안타까움으로 읽었던 이 소설을, 대학교 때 전공 시간에 공부했고(그 당시 팀플로 '테스는 순결한 여인인가'에 대해 토론했던 기억이 난다), 나이가 훨씬 더 들어서 이 책을 다시 보게 되었다. 고전소설은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인생을 좀 더 살아본 입장에서 또 기독교적인 복음의 관점에서 받은 느낌을 정리해 보려 한다.
Spoiler Alert!(결말 포함)
작가가 아예 '순결한 여인'이라고 부제를 붙여 놓은 것 자체가 당대의 윤리관이나 사회의식에 정면으로 반대한다는 뚜렷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작가는 선택하지 않은 것에 의한 운명의 비극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몰락한 귀족의 허울뿐인 이름만으로는 실제 생계가 막막한 그 당시 실제적인 빈부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어리고 순수한 소녀인 테스가 생계에 내몰리며 힘겹게 생활하는 상황을 가감 없이 전달한다.
작가는 결과만 놓고 “그전에 그랬더라면”이라고 가정법적 상상을 하며 가슴 아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예를 들어 테스가 동네에서 이미 에인절을 만나서 춤을 출 뻔했던 일이 있었고, 그때 사랑이 이뤄졌다면 이후 알렉에 의해 처녀성을 잃는 일을 없었을 것 아니겠냐는...
그러나 과연 그랬으면 사랑이 시작되거나, 결혼을 하는 일이 일어났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작가는 분명 이렇게 말한다. 타이밍에 대해서...
“제대로 계획한 일이 잘못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부름이 올 사람을 데려오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시간과 일치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니까 그때 누구를 만났으면... 이런 식의 상상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말 누군가를 타이밍에 맞게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한다는 것은 늘 기적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어린 시절 읽었을 때 테스와 에인절이 결국 이뤄지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지만, 그리고 테스가 꼭 살인까지 했어야 했는지 그 어리석음에 대해 분노하기도 했지만... 이미 테스는 에인절을 만나는 순간부터 희생자가 되어 있었던 거다.
테스를 망친 알렉은 나쁜 놈이 맞지만 (그래도 테스를 이해하지 못하고 바로 돌아서 버린 에인절과 비교하면 테스와 그녀의 가족들을 책임지려는 노력은 했으니) 에인절은 훨씬 더 나쁜 놈이기 때문이다.
에인절 본인은 보수적인 윤리관과 종교성에 대해 비판하며 스스로 진보적이고 순수한 열혈청년을 자처했지만 결국 그 자신이 비판했던 부모님(테스의 불쌍한 처지를 더 잘 이해했던)보다도 더 보수적인 사회적 인식과 윤리관 그 자체였던 것이다. 내로남불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테스는 그런 모순적인 인물에 대한 한결같은 순수한 사랑을 품었을 뿐, 어떤 시기의 어떤 만남으로 결혼을 했더라도 테스는 그녀를 경멸하는(실제로 에인절은 테스의 고백 후 사회적 의식과 인습 등에 익숙하지 못한 교양 없는 신분이라는 차별적인 생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태도로 그 둘의 결혼이 낭만적이고 순수하게 지속되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테스가 체포되는 마지막 순간에 "에인절이 경멸하는 날까지 오래 살지 않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말을 남겼다. 물론 테스 본인의 죗값으로 인한 경멸이겠지만 에인젤은 그 잘못을 포용해줄 큰 그릇은 아니었던 것이다.
테스는 어떻게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는 예정된 비극을 살았던 것이다.
또 이런 비극으로만 작가는 그 당시 사회인습의 불합리함을 외칠 수 있었을 것이다.
작가는 성경을 자주 인용하는 등, 성경에 해박한 지식을 작품 전체에서 자랑하고 있지만, 기독교에 우호적인 태도는 아니었으며,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반복음주의적인 사상을 견지하고 있다.
작가의 시대를 앞서가는 사상가 같은 진보의식은 돋보이지만, 인간의 고통과 용서와 죄의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주지는 못한다.
테스는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당한 일에 대해 평생 죄책감에 눌려 지낸다. 그리고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남자에게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만으로도 작가가 칭한 순수한 여인의 모습이긴하다. 누군가는 양심의 가책도 없이 거짓으로 행복을 붙들고 살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그 순수함을 지키며 본인의 고행과 고통으로 속죄하려는 인간적인 노력은 결국 그 어떤 구원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만 확인하게 될 뿐이다. 테스가 원했던 구원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의 사랑과 용서였다. (그런데 그 사랑도 좀 의심스럽긴 하다. '과연 에인절은 테스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한 것이 맞을까?' '그저 청순하고 아름다운 외모에만 끌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진정한 사랑은 자격을 따지거나 그 사람의 실수나 잘못으로 성립 여부가 결정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과 고통과 잘못은 그를 내치려는 동기보다 함께 공유하고 해결하려는 안타까움으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어머니의 만류에도 솔직하게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 것도 평생을 지고 살아야 하는 죄책감에서 자유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여지없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건 인간에 대한 기대에 대한 실망이라기보다 앞서 언급한 사회통념과 그 당시 윤리관과 절대 화해할 수 없는 경직된 분위기만 확인하게 되었다는 상징적 표현이기도 하다.
한 여인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회심을 하여 전도자가 되었다는 설정의 알렉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영화인 ‘밀양’의 아이 납치살인범의 회심을 통한 스스로의 구원의 위선적인 모습이 오버랩되며 왜곡된 복음주의를 고발하는 느낌도 받았다.
진정한 회심은 자신이 마음 편해지고, 자신의 구원만을 목적으로 하는 이기적인 행위와는 거리가 멀다. 복음은 자신의 안위를 이루는 목적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인간 서로의 용서와 화해는 필수적인 삶의 과정이고 일부이다. 상대방을 다치게 하고 아프게 했다면 내 마음 편하라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원상태로 돌려놓는 것 이상의 노력과 헌신과 애통하는 마음으로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테스의 고백은 에인절에게 잘못을 한 것도 아니었다.
팀 켈러 목사는 "모든 인간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증상일 뿐이고, 그 원인은 하나님과의 단절에 있다"고 말한다. (All human problems are ultimately symptoms, and our separation from God is the cause.)
복음은 분명 하나님과의 회복이 출발점이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삶에서 아름다운 성장과 열매로 드러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가 종교나 윤리의 궁극적인 목적이나 존귀한 인간이 갖춰야 할 자격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복음 이후의 성취이다.
에인절은 반복음주의적 전형이었다. 인간의 노력으로 뭔가를 변혁하고 바꾸려는 진보적인 성향으로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가 시작했던 사랑도 망설이는 테스의 마음에 공감하고 이해하고 그 아픔을 들여다보는 노력보다 자신이 스스로 성취했던 결과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그보다 더 저급한 자신의 죄악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성취한 사랑의 대상자의 결함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었다면 테스가 고백하는 그 순간에 함께 아파했어야 하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복음의 출발점은 자신의 부족을 인식하고 죄인임을 고백하는 지점이다. 그런데 에인절은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음에도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의 죄보다 더 중하지 않을 수 있는 테스의 일에 대해 용서의 마음을 가질 수 없었다. 에인젤은 그 당시 사회의식과 윤리관을 대표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상징하기도 한다. 갑질이라는 행위는 상대방을 자신만큼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신분의 차이나 능력의 차이나 기득권의 고집에 대한 인식으로 가득 차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올 여지가 없다. 은혜는 부족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자 축복이다. 에인젤이 자신의 부족함과 순결하지 못한 처절한 인식이 있었다면, 그럼으로 인해 죄에 대한 고백이 있고 십자가의 복음으로 인해 용서를 받았다는 은혜가 있었다면 테스를 용서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 은혜가 없다면 사실 인간적인 계산으로나, 자신의 기득권적인 특권의식으로나 용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복음 앞에서는 귀천이 없고, 기득권도 의미가 없다. 그 복음의 은혜가 기적을 만들기도 하고 인간의 순수함을 회복시키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는 타이밍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모두 엇갈린 타이밍으로 힘들어한다. 그리고 미래를 내다본 완벽한 선택을 할 수도 없으며, 우리의 삶은 실수투성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필연적인 인과관계로 파멸을 가져오게 된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다.
테스의 살인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인데 그 극단을 치닫게 된 것은 에인절에게서 받을 수 없었던 용서를 자신의 노력으로 바꾸려 했기 때문이다. 악령처럼 계속 따라다녔던 알렉을 물리적으로 완전히 제거함으로 속죄를 받고 용납을 받으려 했다. 그리고 짧은 재회를 위해 그녀는 에인절에게 달려가서 마지막 순간을 같이 한다.
‘이제 그 사람을 죽였으니 자기에 대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 길을 달려오면서 내내 이제 그 일을 해냈으니 당신은 분명히 날 용서해 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구절을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자신의 힘으로 속죄를 얻으려 한 테스의 부질없는 애씀과 그렇게까지 하도록 방치한 에인절의 무심함과 사랑의 부재가 너무 안타까웠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구라도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라도 우리는 너무 많은 분야에서 너무 힘겹게 헤매고 있다.
토마스 하디는 반기독교적인 소설을 썼지만, 난 오히려 이 소설을 통해 복음의 절실한 희망을 읽는다. 복음의 기쁜 소식이 널리 전해지기를 갈망해 본다.
이 포스팅을 읽은 고등학교 1학년 작은 딸의 댓글
먼저 이 책을 읽은게 좀 까마득하게 느껴져서 읽으면서 잊었던 내용이 하나 둘 씩 생각이 났어요 읽으면서 끔찍하게 느껴졌던 테스의 성장배경, 계속 이어지는 불행 등등이요 읽는 내내 가슴 아파하거나 분노 하면서 읽었었는데, 이 책에 대한 제 생각은 정리가 잘 안 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에인절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어요 에인절이 테스를 버리게 만든 원인이 알렉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알렉에게만 더 화가 났었죠 사실 그 모든 불행의 시작이 알렉이라고 볼 수 있잖아요 테스를 그 집으로 보낸 부모들의 어리석음도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지만 저는 테스가 부모의 밑에서 내내 힘들게 일 하고 동생들을 돌보며 살아가는 것 보다는 다른 곳에 가서 일 하며 조금 더 편하게 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알렉은 선을 넘었고, 한 여자의 인생을 완전히 망쳐버렸어요 전 그 점에 초점을 두고 소설 전체를 읽었고, 그 바람에 에인절의 몹쓸 짓에 대해선 깨닫지 못 했네요 테스가 고백 하기로 결정하고 고백을 했을 때 에인절이 받아 들이지 못 할 것이라는 느낌이 사실 들었었어요 (에인절이 그럴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는게 아니라 그냥 완전히 감으로요 ㅎㅎ)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자 에인절의 사랑을 의심하기 보단 알렉에 대한 분노와 테스가 말하지 않았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아빠가 말한 대로 쓸데없는 생각이었지만요 어쨌든 테스에 대한 에인절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었나 곰곰히 생각해본다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에인절도 조금은 이해가 갔던게 자신이 결혼한 여자가 알고 보니 (원하진 않았어도) 순결을 잃은 여자라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을 거예요 지금과 달리 그 시대 상황을 생각해보면 테스는 순결하지 못한 여인으로 보여졌을 것이고 비난 받았어요 그건 작가가 지적하려던 잘못된 시대 상황이고요 그래서 저는 에인절 그 인물 자체에도 잘못이 있지만 에인절 또한 잘못된 시대 상황의 피해자라고도 생각해보기도 했어요 자신도 모르게 보수적인 시대 상황에 스며들었고, 자기자신은 진보적이라 단언했지만 결국 그 시대 관점에 굴복한 것이라고요
또 더더욱 에인절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지 않게 했던건 에인절이 다시 테스를 찾아왔다는 것이었어요 너무 늦긴 했지만 그래도 받은 충격을 극복하고 테스를 찾아왔구나 하고 제 나름대로 생각했거든요 테스가 그렇게까지 되도록 방치한 것이 아니라 충격을 회복하고 다시 사랑하는 여자를 찾으러 왔는데, 너무 늦어버렸다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이렇게 전 받아들였어요 마지막에 테스가 죽을 때 에인절이 테스의 동생과 함께 하는 것까지 저의 에인절은 좋은 사람이다 라는 생각에 의심할 여지를 없애버렸네요 그저 단순히 알렉은 나쁜 놈, 에인절을 착한 놈 이렇게 생각하며 읽은 것 같아요 제가 이 책을 읽었을 땐 이렇게 생각하며 읽었답니당
아빠의 글을 읽으니 인물에 대한 해석들, 각 내용에 담긴 의미들을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새로웠어요 또 이 책에 대한 제 느낌과 생각들을 정리해 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구요 또 관점의 전환도 됐어요 즐거운 활동이었슘다!
딸 댓글에 대한 답글
너의 의견에도 완전 공감한다 에인젤도 시대의 희생자라는것. 하지만 테스의 희생으로 다시 살 길을 얻었다는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라도 십자가의 복음이 필요하고 누구에게나 언제라도 복음으로 기회를 얻게된다는 거지.
테스는 그래도 행복했을 거다. 순수한 사랑을 계속했고 마지막에는 그 사랑을 확인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