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다섯, 스물 하나 ep.3를 보고
설렘과 감성이 가득한 좋은 드라마를 만났다. 3회에서 교사로서의 역할에 크게 공감했던 장면을 소개해보려 한다.
드라마의 여주인공 희도(김태리)는 당장의 성적에 상관없는 열정과 절실함을 가진 펜싱선수다. 그녀에게 국가대표추가선발전이라는 기회가 주어졌고, 절실함으로 정규 훈련시간 외에 코치선생님께 도움을 청한다.
희도 : 1등을 하고 싶습니다.
코치 : 국가대표가 되고 싶단 얘기가? 야 봐라 야. 꿈꿀 줄 아네.
희도 : 꿈은 누구나 꿀 수 있죠.
코치 : 아니. 꿈꿀 줄 모르는 아들이 태반이다. 근데 닌 꿀 줄 안다고.
꿈을 꾸는 건 자유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기회자 권리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꿈을 꿀 엄두조차 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교육현장에서는 꿈꿀 자격을 따지는 것 같은 분위기가 있어서 그렇다. 당장 비교되는 상대평가의 성적이 대다수의 학생들을 초라하게 한다. 의대진학을 많이 하는 명문 여고에 있을 때 소위 전교권이 아닌 아이들은 감히 자신이 의대에 진학하고 싶다는 희망을 겉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결국 도달하지 못할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 꿈을 정하고 끝까지 해보았을 때 도달하지 못해도 후회나 여한은 없을 것이니 꿈을 꾸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꿈을 꾸지 못하는 더 큰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언감생심, 올려다보지도 못할 목표처럼 보이는 현실의 벽 때문이다.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될 수도 있는데 아이들은 자신의 능력과 당장의 자신의 자리에 대해 고정관념을 가지며 그 이상을 상상하려 하지 않는다.
물론 고3이 되어서 이룰 수 있는 목표는 훨씬 더 제한적이긴 하다. 그래서 난 주로 고1 학생들을 만나려 애썼고, 그들에게 늘 이런 말을 했다.
너희들의 꿈은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지 않는 것이다.
“인 서울 대학”, 못 가는 게 아니라 안 가는 거다.
고3 첫 모의고사 성적이 수능성적이라는 소문이 있다. 그런데 그 소문이 현실이 되는 경우가 너무 많아 그저 가짜뉴스라고 넘기기 힘들다. 고3 담임을 오래 하면서 그 소문이 맞는 이유를 찾았다.
그렇게 믿고, 심지어 그러길 바라기 때문이다.
현실과 꿈과의 괴리가 클 경우 그 간격을 메우려 치열하게 애써야 하는데, 그 소문을 믿어버리면 더 이상 치열하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 죄책감없이 놀 수 있는 일종의 면죄부를 받게 된다.
그러니까 현실을 꿈으로 밀어 올리는 게 아니라 꿈을 현실로 낮추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현실과 이상이 만나야 인지부조화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우린 생존을 위해 어떻게든 양자택일을 하게 되는데, 보통은 후자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고3 과정은 그 어느 때보다 공부만 아니면 뭘 하든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다. 공부 외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명확한 그 시점에 뭘해도 완전 꿀잼이다. 고1 때 영화보는 건 그저 영화지만, 고3 때 야자 째고 영화를 보면 어떤 영화든 그건 인생영화가 된다. 자습을 째고 본 ‘죽은 시인의 사회’는 그래서 내 인생영화가 되었다.
꿈을 꾸는 건 자유지만,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은 거저가 아니다. 꿈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과정이 두렵기도 한 거다. 그걸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만 꿈을 꿀 수 있다. 꿈을 꾼다는 건 잠이 드는 것이 아니라 잠을 깨며 현실을 마주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꿈을 꿀 줄 모르는 것은 자신이 진짜로 뭘 좋아하는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른들은 안전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아이들에게 권하기도 하지만, 강요를 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도 어른들이 설계하는 경우가 많다. 그 때 필요한 것이 사교육이다. 정작 어른들의 목표를 달성하고도 나중에 자아를 찾게 된 아이들은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며 버티고 살거나, 진로를 놓고 방황하기도 한다.
수입이나 인지도나 명예나 권력의 정도에 따라서 성공을 규정하여 아이들의 목표를 강제로 정해 놓는 경우가 많으니 아이들이 진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기가 너무 어렵다. 그걸 찾아내는 과정 자체를 사치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찾아내는 과정은 실패와 좌절의 시행착오가 필연적인데도 아이들에게 그런 정도의 여유를 줄만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늘 조급함과 불안함으로 아이들이 원하는 것, 꿈을 꿀 자유도 사실상 박탈되기도 한다.
그렇게 희도는 코치의 허락을 얻어 결국 정규훈련 외 시간에도 훈련을 받는다. 펜싱부 사이에 개인지도를 받는 거냐는 수군거림에 펜싱팀의 에이스가 코치에게 따지듯 묻는다. 왜 희도만 특별지도를 하냐, 편애하냐 뭐 이런 암묵적 항의였다.
코치의 대답이다.
학생이 지도를 요청을 하면은 그 요청에 응하는 게 코치로서의 의무다.
그라고 그게 내한테는 참 기쁨이고.
근데 ‘선생님, 저 한 시간만 더 봐주시면 안 될까요?’ ‘저 팡트 자세 괜찮아요?’
이, 물어보는 게 쉽거든. 씁, 아들이 이게 쪽팔려서 그라나. 그런 말을 하는 아들이 아무도 없다. 아무도.
정말 폭풍 공감을 하면서 여러 번을 돌려 보았다. 정말 그렇다. 나도 늘 학생들의 절실함과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학습코칭도, 질문에 답할 준비도 다 되어 있다. 그래서 16년 넘게 영어멘토링 학습코칭을 체계화하여 진행해 왔다. 물론 그 과정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고 유의미한 교육적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난 더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얼마든 상담에 응해줄 수도 있었다. 내게 먼저 손을 내민다면 언제든 잡아줄 수 있고, 내가 먼저 손을 놓는 일도 없다. 먼저 손을 내미는 학생들에게 반응을 하면 학생들 사이에 편애한다거나, 개인지도 한다는 소문이 날 수도 있지만,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기나 질투도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데 자신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때만 일어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건 아이들 모두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중학교 처음 와서도 겨울방학때까지, 끝까지 나의 모든 코스를 따랐던 진짜 제자 같은 학생들 12명이 남긴했다. 고등학교 때와 비교해서 적을 뿐, 내게는 한 명 한 명이 모두 큰 의미였다.
한 번씩 친구나 지인들이 내게 컨설팅 신청을 해 온다. 난 조건 없이 만나서 도움을 준다. 심지어 브런치 독자분의 전화상담에 응했고 필요한 조언을 아낌없이 드리기도 했다.
어쩌다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를 강제로 내게 상담을 시켰을 때는 결과가 좋지 않았다. 학생 본인의 간절함과 만났을 때에만 엄청난 교육적 성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선배교사는 영어멘토링으로 자신의 딸을 내게 부탁하셨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온라인 코칭을 하였고 한 번씩 만나서 상담도 했다. 물론 나의 코칭과 영어코스는 혼자서 공부하도록 독립시키는 과정이어서 자주 만나거나 자주 연락하지는 않는다. 올바른 방향설정이 핵심이고, 기회가 닿아 꾸준한 습관형성까지 해 줄 수 있으면 더 좋다. 그 아이는 의대를 진학했다.
그 선생님은 자신이 담임하는 반 학생 중 영어가 절실한 아이들의 컨설팅도 개별적으로 의뢰하셨다. 단 한 번의 만남이라도 그 순간 난 최선을 다했다. 그 이후로도 공식적인 학교 행사에도 초대하여 한 번씩 마음이 가난해진 절실한 학생들을 만날 기회를 마련해주셨다. 그 정도로 나를 신뢰하신다는 생각에 나에게 부담을 주신다고 미안해 하셨지만 난 너무 감사했다.
학생들의 간절함을 마주하는 일은 내게 사명 같은 일처럼 느껴진다. 아이들의 변화가 그 변화의 가능성과 이후의 성과가 마주하는 그 순간에도 예언 같은 확신으로 다가오며 나에게도 희망 같은 설렘과 뿌듯함이 가득 찬다. 내게 보수는 중요하지 않다. 그 자체로 난 충분히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외면하지 말고 지금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보고 인정하라고. 그리고 가난한 마음으로 학교 선생님들께 손을 내밀라고. 거부당한다면? 그건 자신의 잘못도 아니고 자신의 가치가 거부당하는 것도 아니며 받아주지 못하는 교사의 문제일 뿐이라고.
올해도 어김없이 새로운 반 학생들과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만난다. 나의 역할에 설렌다. 성적에 관계없이 내게 손을 내미는 학생들이 더 많기를, 학생 한 명이라도 그의 삶에 긍정적인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편으로 내가 너무 아이들에게 집착하지 않기를 다짐한다. 학생들과 아이들을 만날 때 내 의도나 나의 타이밍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이 우선이라는 것, 행여나 혹 긴 기다림이 있더라도 지치지 않기를 또한 바란다.
드라마에서 희도가 부당한 현실에서 자기 목소리를 높였다가 거부당하여 상처 받았던 상황에... 때로는 앞뒤 맥락 없이도 무조건 자신의 편이라는 확신을 주는 누군가의 존재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때가 있다고 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내가 펜싱을 왜 못하는지 지금 깨달았어. 펜싱에서 제일 중요한 게 상대방과 거리조절이거든. 지금 내가 그걸 못 하네. 너무 많이 기대했다. 고유림한테든, 너한테든.
거리 조절은 관계 유지의 기본 원칙 중 하나다. 상대가 준비 안 되었는데 가까운 관계라는 이유로 무조건 들이댈 수는 없는 거다. 특히 사춘기를 만나는 어른은 특히 거리 유지에 신경 써야 한다. 사춘기는 거리유지 해달라는 절규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거리는 한 번에 정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거리를 조금씩 넘나들며 세밀하게 정하는 것이다.
올 한 해도 학생들과의 세밀한 밀당에 성공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