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를 강조하는 것은 목표의식을 뚜렷하게 해주는 효과가 분명 있다. 그러나 결과만 강조하면 안 된다. 과정의 중요성이 무시당하고, 과정 중에 행복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간혹 목표했던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면 그전의 과정도 그 노력과 애씀과 시간도 다 부정될 수도 있다. 목표는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최소한 높게 잡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모든 목표를 다 이룰 수 없다. 그런데 한두 번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더구나 정말 열심히 애썼는데도 그렇다면 좌절감이 더 커지며, 또 좌절감이 반복되면 학습된 무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내가 평소에 많이 강조하는 것은 “어쩌다 보니”라는 말이다. 당연히 이상적인 목표와 현실적인 전략도 필요하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목표를 내가 정한 마감 시한 내에 끝내야 한다는 데서 조금은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해낼 거라는 희망을 품는 것이다. 그래야 과정을 즐기며 누리면서 끝까지 해볼 힘이 생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은 죄책감 없이 “행복할 만큼만”이라도 된다. 이 말은 미래의 성취를 위해 현재를 담보로 행복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요즘 교육현장에서는 학생주도수업이라는 키워드가 다시 강조되고 있다. 올해부터는 평가에 논구술 요소를 의무적으로 포함시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학생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적 지침이다.
지난 주 우리 학교 교직원 워크샵에서 훌륭한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다. 그 전날 나의 강의와 비교되는 것 같아, 강사 소개하는 순간부터 민망했다. 강사 선생님과 비교해 보니 난 공인된 전문가도 아니고, 전문지식이나 역량을 갖춘 강사도 아니고, 외부에서 알아주는 실적과 수상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개수업 및 수업 결과물도 화려하지도 않았던 탓이다.
역시 강사 선생님의 명성에 걸맞게 강의 내용은 훌륭했다. 적어도 학생들의 활동과 평소의 교육활동이 그대로 담긴 드러나는 결과물을 보니 감탄을 금할 길이 없었다.
지난주 강연의 핵심 중 하나는 질문하는 수업이었다. 교사의 교육과정을 꿰뚫어보는 질문이 학생들의 탐구역량을 강화한다는 것이었다.
그 선생님은 대구에서 시행하고 있는 IB(국제 바칼로레아)지정 학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계시기도 했다. IB 과정은 이상적인 교육을 현실 속에서 제시한다.
그런데 난 강연 내내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그 선생님이 하시는 걸 따라할 수도 없지만, 따라하더라도 과연 학생들의 역량이 강화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강의를 함께 들었던 한 선생님은 훌륭한 교육진행 과정에서 학생들이 너무 고생하겠다는 의견을 내게 전했다.
활동중심 수업에 대한 나의 너무 현실적인 관점이 화석처럼 굳어져서 유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학생들 입장에서 과연 도움이 될지에 대해서는 계속 의문이 들었다. 작년 활동중심 연구회, 하브루타 연구회 교사모임에서 연구회의 추진방향에 역행하듯 강연을 했다. 물론 활동중심, 하브루타 방향이 틀렸다고 전면 부정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중요한 전제가 있음을 강조했고 선생님들은 어느 정도 수긍해 주셨다.
얼마 전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공부법 특강을 하면서 이야기했던 내용이 갑자기 떠올랐다. 아래 짤로 강의를 시작했다.
이렇게 메시처럼 드리블하는 게 멋있어서 똑같은 상황을 설정하여 재연하듯 흉내를 낸다고 이런 역량이 키워진 것일까? 그럼 다시 물을게. 이렇게 드리블을 잘 하고 싶으면 이 장면만 반복해야 하겠니 아니면 기본기를 연습해야겠니? 그러니까 축구를 잘하고 싶으면 축구 경기를 많이 해야 하겠니 아니면 경기 전 연습을 많이 해야겠니?
다른 예를 들어볼게. 악기 연주를 잘하고 싶으면 일단 연습과 연주 중 무엇을 많이 해야 할까?
답이 정해진 질문이었지? 공부도 이런 거란다. 고등학교 영어는 중간고사, 모의고사, 수능을 잘 보는 게 목표니까 고등학생이 되면 바로 모의고사를 풀겠다는 것은 기본기 연습 없이 바로 게임과 연주에 참여하는 것과 같단다. 그런데 영어학원을 가면 수준에 상관없이 어려운 모의고사를 많이 풀도록 시키지? 물론 학원에서 분석을 해주지만 내가 스스로 그걸 분석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되지 않으면 어설프게 그 특정한 상황에서 흉내만 내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거다. 이렇게 혼자서 영어지문을 읽을 능력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는 학원을 그만둘 수가 없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기본기 역량을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막연하게 불안해서이기도 하지.
정말 게임과 연주를 잘하고 싶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게임과 연주는 잠시 참고, 초라해 보이는 기본기를 연습해야 한다. 악보를 볼 줄 알고 기본기를 몸에 익히면 어떤 곡이라도 연주할 수 있게 되겠지. 그러나 그 단계를 무시하고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에 그냥 개별적인 곡을 암기하듯 흉내만 낸다면, 그다음 새로운 곡을 만났을 때도 그저 암기하듯 흉내 내는 데서 벗어날 수 없을 거다.
그러니까 영어 모의고사나 수능을 잘 보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에는 모의고사를 보면 안 되는 거다. 모의고사를 볼 준비를 하는 거지. 게임이나 연주를 앞두고 연습을 하는 것처럼. 물론 때가 되면 리허설도 필요하겠지만.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라도, 초라해 보여도 모의고사가 아니라 기본부터 꾸준하게 할 수 있도록 다시 시작해야 한다. 매일 “행복할 만큼만” 꾸준하게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쩌다 보니” 연주를 하고 멋진 축구 게임도 할 수 있게 된다.
서툴러도 내가 스스로 해보면서 조금씩 완성해가는 것이 자기주도학습인 거란다.
그런데 이건 학생들 학습에만 적용되는 건 아닐 거다. 교실 수업도 마찬가지다. 특히 중학교에 와서 아직 추상화 능력이 한창 발달 중이고, 기본기에 대한 이해도와 집중력도 부족한 학생들을 만나다 보니 활동중심 수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명분을 찾기는 쉬웠다. 교사 입장에서도 자신이 진행하는 수업의 성취가 눈에 보이기를 바라기도 한다. 적어도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이 없다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그런데 중학교는 오히려 더 눈에 보이지 않는 기본기를 갖추어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꽃꽂이보다 뿌리를 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활동중심 수업이 가능하다는 것은 착시현상인 경우가 더러 있다. 모둠별 토론 수업이 잘 진행되는 것의 전제는 학생들이 핵심 및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을 생략하면 안 된다. 그런데 그 과정을 생략해도 잘 진행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면 그건 이미 핵심 지식을 익힌 소수의 학생들에 의해 토론이 주도되기 때문이다. 그 소수의 학생들은 수업을 듣지 않아도 이미 완성된 지식체계로 재미있게 활동을 할 수 있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체계화된 핵심 지식을 배울 기회를 놓쳐버린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아이들은 학교보다 학원에서 핵심 지식을 배워야 할 상황에 놓인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오히려 학습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
창의력은 과정에서 역량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기본기를 갖춘 후의 결과물이다. 물론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를 수업시간에 마련해 주고 발휘하도록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건 핵심 지식을 학생들에게 체계적으로 전달한 이후에야 가능하다. 그런데 과목별로 주어진 주당 시수를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을 다 해낼 시간적 여유가 되지도 않으며, 아이들이 그 역량을 짧은 시간에 결과물로 만들어낸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찌 보면 교사들은 아이들이 제대로 뭔가를 자연스럽게 해낼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역량강화가 된 것처럼 보이는 결론을 정해 놓고 아이들의 활동으로 증명하려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영어의 예를 들면 영어쓰기 역량은 최종 성취물이다. 그런데 중학교에서도 영어에세이 쓰기 등의 활동을 시킨다. 영어 에세이 쓰기는 기본기를 학교에서 잘 가르친 후에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결과일 뿐인데, 수업 과정에서 이걸 증명하려 한다.
어떤 학생의 에세이에서 이런 글을 발견했다.
At the camp we counted the nights.
해석을 하면 밤을 셌다는 말이다. 밤 하나, 밤 두 개.. 이렇게 셌다는 것이 아닐 것이니 야영에서 밤을 새웠다는 것을 의도하여 번역기를 돌릴 때 우리말을 잘 못 입력한 것 같았다.
영어문장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 영어문장을 많이 써봐야 한다는 건 전체가 옳을 때만 옳다. 기본기가 갖춰진 상태에서는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많이 써보는 것이 맞지만, 문장 구성원리와 기본 단어를 학습하지 않고 영어 문장을 쓰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영어쓰기 역량강화는 영어쓰기를 시킴으로써 가능한 게 아니라 영어쓰기를 안 시켜야 가능한 거다. 영어쓰기를 할 수 있는 기본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게 우선인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교실을 벗어나게 되면서 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연주는 때가 되면 각자의 타이밍에 학생 스스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교육부는 뭔가를 계속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 교사도 눈으로 확인하는 성취를 바라기도 한다. 물론 준비된 아이들에게는 이런 방향이 역량강화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아이들은 학교수업 없이도 어차피 이미 그전에 그런 역량을 갖춘 것이다. 수업환경에서 이게 가능해 보이는 것은 학원을 다니면서 이미 그 수준을 넘어선 학생들에 의해 주도되기 때문이다.
4차 산업의 역량이 어떻고, 창의성이 어떻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시대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말이 넘쳐나는 시대라서 교사도 눈치를 안 볼 수는 없다.
강사 선생님이 미네르바 대학의 우수성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교수의 일방적인 수업이 거의 없는 학생들 중심의 이상적인 교육이 이뤄지는 대학 모델이라고 말했다. 그건 강사 선생님만의 의견은 아닌 듯하다. 그런데 난 이렇게 되묻고 싶다.
그 학생들은 기본기에 충실한 뛰어난 역량을 갖췄기 때문에 그 대학에 입학한 거 아닐까요?
비판, 분석, 토론 능력은 핵심적인 지식을 갖추었고, 읽기와 쓰기 역량을 충분히 훈련한 이후에 이뤄지는데, 그런 기본기가 없는 학생들에게 입학을 허락했을 때 교수의 가르침 거의 없이 그런 역량들을 키우고 발휘할 기회가 있을까요?
결국 비판, 분석, 토론의 역량도 지식을 기반으로 한 배경지식의 구조화나 문해력 등의 기본기를 갖춘 이후에나 가능한 거 아닐까요?
그런 기본기가 없는 미네르바 교육활동은 악기 연주법도 모르면서, 알더라도 충분히 체화시키지 못했으면서, 악보도 볼 줄도 모르면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같이 하라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미네르바대학은 영어로 교육과정이 진행되는데 물론 영어능력이 안 되면 입학시험에 통과할 리도 없지만, 영어능력이 거의 없는 학생들이 영어를 잘하기 위한 역량을 키우기 위해 입학을 한다면 영어역량이 강화된다고 믿어도 되는 걸까요?
결론적으로 난 이렇게 제안하고 싶다. 늘 부족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나의 교육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활동중심 및 학생주도 수업의 전제는 교사의 핵심요소 집약 단순화, 아이들 schema에 맞춘 체계화된 재구성이다. 그렇게 학생들에게 기본을 가르친 후에 활동을 진행해야 한다. 수업시간을 온전히 활동 및 학생주도 수업에 할애하려면 최소한의 핵심 컨텐츠를 동영상강의 등의 방법으로 사전 학습을 시킨 후에 진행한다(이는 플립 러닝의 정의이기도 하다). 물론 사전 학습으로 충분하지 않은 경우 수업 시간 교사의 피드백이나 학생활동에서 학생들끼리 학습 격차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수업을 디자인한다. 그리고 학교수업만으로 부족한 기본기는 교실밖 개별 학습코칭을 통해 완전학습이 이뤄지도록 돕는다. 소위 블렌디드러닝을 최대한 활용한다. 이미 교사와 학생들은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에듀테크의 문턱을 다들 넘어섰으니까 교사의 컨텐츠 구성만 남았다.
그리고 학생들이 자기주도학습을 할 수 있도록 습관형성을 돕고 학습코칭을 하며 개별지도에 힘쓰는 공교육교사의 노력도 필요하다.
학생들이 교사와 교사의 수업을 돋보이게 해서는 안 된다. 역량강화를 이루었다는 교사의 만족을 위해서 수업해서도 안 된다. 교사는 학생들이 주인공이 되도록 존재가 드러나지 않을수록 좋고, 역할을 최소화해서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교사의 가르침은 교사가 더 이상 필요 없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난 당장의 성과를 확인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면서, 결국 학생이 정확한 해석과 독해를 하고 시험에 잘 대비하기도 하며, 영어문장을 구성하여 영작하는 취미와 힐링의 과정을 스스로 누리도록 독립시키기 위해 수업을 하고 학습코칭을 한다.
발단단계에 맞지 않고 아직 열매를 맺힐 때도 되지 않았는데 그럴듯해 보이는 결과물을 학생들이 연기하도록 인위적으로 이끌어서는 안 된다.
학생 역량 강화교육은 수업 중 보이지 않게 조금씩 형성되는 과정을 거쳐서 오히려 때로는 교실을 떠나서 학생들 스스로 발휘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교육역량강화는 교육의 과정이 아니라 교사가 계획하지 않은 순간에 자연스럽게 학생 개별적으로 나타나는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