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수를 하여 의대를 합격한 제자가 저를 찾았습니다. 1학년 때 담임이었으니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정겹고 사랑스러웠습니다. 그 제자로부터 가슴 아픈 사연을 들었습니다. 결국 의대를 진학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지금 다니는 의대가 목표였다면 재수도 하지 않고 바로 진학을 했을 거라는 것이었죠. 결국 삼수는 했지만 정시 아닌 수시로 그 의대를 합격했으니 말입니다. 제자의 뛰어난 실력을 100% 발휘하기에는 적어도 본인에게는 변수가 많은 수능이었던 것입니다.
허탈해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다행히 긍정적으로 잘 받아들이며 적응을 잘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위로를 하였습니다.
첫째는 서울로 가지 않아서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지내며 통학할 수 있는 축복을 가진 거라고.
둘째는 우리 삶에 의미 없는 과정은 없으며 그 과정을 통해 더 성장하고, 절실해지고, 더 견고해졌을 것이니 시간 낭비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삶은 우리의 각본대로 흘러가지 않으니, 어떤 이들은 시도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기도 합니다.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 길을 가기 전부터 우리는 본전 생각을 하게 되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꿈을 꾸며 치러야 할 상처와 대가가 있지만, 꿈을 꾸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것도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꿈을 꾸지 않는 것은 스스로에게서 끊임없이 기회를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 삶은 결과로만 판단할 수 없습니다. 과정이 중요하며, 그 과정의 유의미한 총합이 결국에는 더 멋진 결과에 이르게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너희들이 꿈꾸는 인서울의 대학이나 꿈의 대학을 못 가는 게 아니라 안 가기로 다짐하고 있는 거다!” 좋은 대학을 진학하는 것만이 성공 여부를 논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삶입니다. 각자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기회와 자리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 제자는 의대나 치대를 바라고 재수를 했는데 간발의 차이로 진학하지 못하고 교대에 갔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애써 태연한 척하는 것인지 완전히 다 받아들인 것인지 제게는 행복하다고 하면서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저는 그 학생의 실패(?)를 완전 축하해주었습니다.
“의대 갔어도 잘했겠지만 너 같은 인재가 교육계에 입성하게 된 것은 교육계 선배로서 정말 기쁜 일이다. 다른 능력보다 너의 뛰어난 공감능력과 배려심과 사명감 등이 너를 만나게 될 많은 학생들의 역사를 바꿀 역할을 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지. 게다가 재수의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학생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경험을 하였고, 주어진 길에 절심함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으니...”
우리는 그렇게 상처받을 각오를 하면서 꿈을 꾸며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