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읽어야 할 도서로 각 분야의 명사들이 공통적으로 추천하는 책 중의 하나입니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죽음을 늘 곁에 두면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가며 생존한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의 자전적인 체험 수기입니다.
그 생생한 묘사가 그 극한 상황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너무도 편안하게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강제적으로 소름 돋는 간접 체험을 하게 해주며, 인간의 심리와 정신 분석학적인 해석으로 그 체험에 주석을 달 듯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어 독자의 마음의 준비 상태에 따라서는 강제수용소가 아닌 곳에서도 충분히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엄청난 책입니다.
원제는 "Man’s Search for Meaning"으로 공간과 상황만 묘사하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우리말 제목보다 저자의 의도가 더 명확히 드러납니다.
"가능하면 매일같이 면도를 하게. 유리조각으로 면도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 때문에 마지막 남은 빵을 포기해야 하더라도 말일세. 그러면 더 젊어 보일 거야. 뺨을 문지르는 것도 혈색이 좋아 보이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지. 자네들이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어, 일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예를 들어 만약 자네들 발뒤꿈치에 물집이 생겼다고 해보자. 나치 대원이 그것을 알게 되는 날이면 당장 그 사람을 따로 분류하고, 그 다음날 틀림없이 가스실로 보낼 거야. 불쌍하고, 비실비실 거리고, 병들고, 초라해 보이는 사람들, 그래서 고된 육체노동을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을 조만간에, 아니 대개는 아주 빠른 시간 안에 가스실로 보내지지. 그러니까 늘 면도를 하고 똑바로 서서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그러면 더 이상 가스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여기 있는 자네들, 이곳에 온 지 스물네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거야."
죽음의 문턱에서도 삶에 대한 강한 의지는 겉모습으로도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은 본인들 스스로가 선택할 수 없는 외적인 상황에 크게 좌우되는 것이지만,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우리는 삶과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목적이 아니라 뭔가를 알고자 하는 열망의 여부도 반드시 겉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어 학교에서 수업을 해보면 그 차이에 따라 명확하게 학생들을 선별해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본심은 숨기기 어렵고, 마음의 상태는 겉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게 당연하지만 때로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런 것처럼 행동하는 위선이나 연기가 앞서면 진심으로 그런 진정성 있는 마음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물론 그 경우에도 시작한 무력감이 아닌 강력한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지요.
내가 이 경우를 통해 관찰하고 도출해낸 결론은 후에 수용소 주치의로부터 들었던 말과도 일치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에 이르기까지 일주일간의 사망률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추세로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주치의는 이 기간 동안 사망률이 증가한 원인은 보다 가혹해진 노동조건이나 식량사정의 악화, 기후의 변화, 새로운 전염병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희망적인 뉴스가 들리지 않자 용기를 잃었으며, 절망감이 그들을 덮쳤다. 이것이 그들의 저항력에 위험한 영향을 끼쳤고, 그중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기에 이른 것이다.
막연한 희망을 갖는 것보다 절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희망에 이르는 길입니다.
학업도 마찬가지여서 다음 번 시험에서 몇 등을 올리고, 몇 점을 올리겠다는 막연한 희망만이 공부의 목적이 된다면 그 결과의 여부와도 관계없이 쉽게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상태를 때론 비관적일 정도로 명확하게 인지하고 난 후 할 수 있는 한 걸음씩만 걷으려는 의지를 가진 자만 성장을 지속할 수 있고, 생존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수용소에서 사람의 정신력을 회복시키기 위서는 그에게 먼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 주는 데 성공해야 한다. 니체가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이 말은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심리치료와 정신위생학적 치료를 하려는 사람에게 귀감이 되는 말이다. 수감자들을 치료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이 처한 끔찍한 현실을 어떻게든 견딜 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해 그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목표-를 얘기해 주어야 한다. 슬프도다! 자신의 삶에 더 이상의 느낌이 없는 사람, 이루어야 할 아무런 목적도, 목표도 그리고 의미도 없는 사람이여! 그런 사람은 곧 파멸했다. 모든 충고와 격려를 거부하는 그런 사람들이 하는 전형적인 대답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요."
결국 삶의 의미와 목적만이 삶의 이유가 명확한 사람만이 삶을 살아갑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는 경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진정한 삶의 순간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과학자로 그동안 책을 써오고 있었는데 그것을 아직 완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 일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있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또 다른 사람의 아이, 그 아이에게 애정을 베푸는 데에 있어서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각각의 개인을 구별하고,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런 독자성과 유일성은 인간에 대한 사랑처럼 창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일단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아주 중요한 의미로 부각된다. 사랑으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나 혹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된 사람은 자기 삶을 던져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자신의 존재의 이유가 명확할수록 제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도 명확해집니다.
삶에 대한 열망을 회복하고 싶은 분들은 꼭 이 책을 일독하시길 권해드립니다. 무의미하고 무력하게 느껴지는 삶에 가장 기본적인 감사와 삶에 대한 의지를 갖도록 도와주는 힘을 가진 책입니다. 물론 그 이후에 생존을 넘어선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은 각자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