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분홍색 옷을 입고 가니

by 청블리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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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오늘 학교에 입고 갔던 옷이다. 보통은 벚꽃 필 때 이렇게 옷을 입고 가서 아이들과 사진을 찍는 것이 연례 행사였다.

10년 전 이런 분홍색 패션으로 학교에 갔을 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반 학생들은 나를 보고 이렇게 외쳤다.

"청블리인가?"

그당시 공효진의 사랑스러움을 따서 "공블리"라는 말이 유행이었는데, 학생들이 분홍색 옷에 담긴 lovely한 느낌과 내 이름의 한 글자를 따서 연상되는 말로 "청블리"라고 표현했던 것이었다. 그후로 10년째 여전히 난 그 별명을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물론 나를 직접 대면한 사람들은 왜 "청블리"인지 납득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색깔에 빗대어 시작되긴 했지만, 그건 학생들의 비꼬는 말이었을 뿐이었기 때문이니 그럴만도 하다. 그럼에도 그 별명을 아이들이 계속 불러주었던 건, 그들을 향한 나의 사랑으로 인한 것이었다. 인격적으로 그들을 만나고, 상담도 진심을 다해 주고, 영끌(영혼을 끌어모음)로 수업을 준비하고, 삶에 대한 소중한 가치에 대한 썰을 수업 시간에도 한 번씩 풀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학교에서 중3 학생들은 나의 의외의 복장에 놀라움을 표현했다. 비꼬는 것인지 진심인지 애매한 표현들이 많았다. 그중 가장 임팩트가 있던 표현은 이것이었다.

"딸기우유 같아요"

"스크류바 같아요"

"청블리가 아니라 핑블리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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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에서 연상되는 구체적인 비유였다. 이 반응을 선생님들과 다른 학생들과 공유하면서 신나게 웃었다.

너무 구체적인 비유여서 다른 설명도 필요 없는 있는 그대로의 연상법이었다.

여기서 난 중학교, 고등학교의 차이를 또 생각했다.

중학교는 구체적인 사고에 따른 언어가 지배적이고, 고등학교로 갈수록 추상화되고 학구적인 사고와 언어로 전환된다는 사실... 중학교일수록 몸개그에 더 크게 반응하고, 고등학교에서는 말로도 아이들을 떼굴떼굴 구르도록 웃길 수도 있다는 사실...

고등학생들은 내 옷의 색깔에서 lovely한 속성을 뽑아내서, 그 당시 유행하던 "공블리"라는 말에 나의 이름 한 글자를 결합했다.

그런데 중학생들은 그저 그 색깔로 연상되는 구체적인 대상 하나로 단순화해서 표현했다.

중학교의 사고와 언어가 열등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 발달단계에 맞는 구체성의 발현이니 그저 감탄해 주면 되고 존중해 주면 되는 거다.

추상화된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기도 하겠지만, 한 번씩 명확하고 구체적인 그들의 언어로 임팩트를 줄 수 있도록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더 절실하게 느꼈다. 이렇게 난 또 중학교에서 수업할 때나 학생들을 만날 때의 언어를 또 배워가고 있다.

코로나 방역지침에 따라 아이들은 점심식사 후 교실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담임교사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아이들의 착석여부와 정숙한 분위기를 지도한다.

정해진 시간에 자리를 지키지 않는 학생들을 체크해서 벌청소를 시키려 하니 아이들은 화장실을 다녀왔다고 핑계를 댔다. 그 말이 사실이더라도 화장실에 가서 아이들끼리 몰려서 놀다 오기도 한다.

지난주에 반 학생들에게 시험 잘 보라는 응원의 마음을 담아 초콜릿을 선물했다. 교실에서는 음식을 먹을 수 없으니, 어떤 여학생들은 화장실에 가져 가서 먹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웃픈 현실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화장실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를 담아, 언제부턴가 교실 칠판에 정당하게 화장실에 간다고 자신의 번호를 적는 칸을 그려 놓았다. 일일이 내게 허락받지 않고도 떳떳하게 다녀올 방법을 연구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화장실칸만 있었는데 갈수록 아래 사진처럼 항목이 늘었다. 학생들은 여기다 자기 번호를 적고나서 용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번호를 지운다. 내가 시킨 것이 아니고 그들 나름대로 정한 규칙이었다. 너무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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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내 모습을 희화해서 칠판에 등장시키기도 했다. 오늘은 (사진에는 색깔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지만) 옷 색깔이 분홍색이 되었다.

중학교의 이런 아기자기함에 빠져든다.

아이들이 내가 세월의 흐름을 거세게 맞아서 차츰 잃어가는 나의 순수함과 동심을 조금이라도 회복시켜주고 있다. 고등학생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내가 너무 늙지 않을 수 있는 지속적인 기회가 되었지만, 이 아이들은 더 큰 순수함의 세계로 날 초대하고 있다.

대학 전공시간에 배웠던 Henry Vaughan의 <The Retreat>라는 영시가 갑자기 떠올랐다. 이 시에서는 유아기가 가장 순수한 삶의 단계라고 묘사한다.

추상적인 사고가 늘고 언어가 발달하고, 세월의 흐름을 지나서도 우리 아이들은 순수함을 잃지 않기를 기대하고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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