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귀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확성기

2006년 육아일기

by 청블리쌤

첫째 딸은 아토피 공주다, 다리와 발끝, 손끝까지도 가려워하고 너무 긁은 나머지 갈라지기까지 했다.

하루는 자기 발가락을 나에게 보여주며 설명을 한다.

"이 발가락은 이젠 부드러워졌어. 만져봐. 부드럽지? 이건 아직도 딱딱해. 만져봐, 딱딱하지?“

눈물이 났다. 이 어린 게 고통을 이미 다 받아들이고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빠에게 설명까지 하고 있는 거다.

그래도 한참 가려울 때면 이런다. "이거 언제 다 나아?" 엄마의 대답은 "많이 가렵고 참기 힘들면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그랬잖니."


믿음으로 밖에 대답할 수 없다. 이 방법, 저 방법 많이 써봤지만 완치가 되지 않는 아토피, 주변에선 더 심한 애들의 예를 들며 이는 거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애써 위로하려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은 마냥 위안이 되거나 편하지는 않다.


아이들이 아플 때 우리 부모는 육체적으로 대신 짊어질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을 떠안으며 산다. 차라리 ‘내가 아프지’ 하는 생각은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부모의 심정에 대한 진부한 표현이다.


한센병 환자들의 문제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데 있다고 한다. 발을 삐어도 고통을 느끼지 못해 그냥 걸어 다니다가 발이 망가지고, 고통을 느끼지 못해 살점이 찢기고 떨어져 나가는 것을 모르면서 몸이 상한다고 한다.


나니아 연대기 영화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겨우 주목받게 된 신학자 C.S 루이스는 그의 저서와 강연에서 고통은 귀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megaphone(확성기)이라고 말했다. 고통을 통해 알려주시려 하는 건 감사다. 아니면 우린 우리의 건강과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터이니..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처음부터 잘해주면 너무 힘들어진다. 예를 들어 보충수업시간표를 예쁘고 작게 만들어서 하나씩 나눠주면 애들이 감동 아니 감격을 한다. 다음 달엔 조금 고마워한다. 그 다음 달엔 당연히 여기고, 그다음부터는 늦게 나눠 주기라도 하면 짜증 내고 왜 안주냐고 오히려 따진다.


그런데 그게 우리 모습이다. 가진 것을 당연히 여기니 안 가진 것에 대한 불평만 나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감사를 깨닫게 해주시기 위해선 (평소에 속삭이시는 음성까지 들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고통이라는 확성기를 사용하시는 거다.


내가 가진 육체의 가시는 목이다. 마이크 없이는 한 시간도 수업할 수 없을 정도로 목이 안 좋다. 목이 아프다고 수업하는 걸 포기할 수는 없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고, 누군가를 위해서 뭔가를 할 수 있는 내가 가진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느끼는 건 감사다. 내게 주어진 목소리.. 귀한 줄 모르고 마음대로 막 쓰다가 아픔을 느끼고 나서야 깨닫게 된 거다. 그저 당연히 주어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


아무 생각 없이 목소리를 사용하다가 느끼겠지, 이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축복임을...

감사를 잊고 지낼 때, 나의 아픔은 감사할 수 있는 sign일 거니까.


딸의 아픔을 보면서도 느낄 거다. 감사를 잊고 지낼 때마다 떠오르게 하시는 확성기의 음성으로, 그보다 더 많이 가지고 누리고 있는 걸 보게 하시면서... 아이를 더한 아픔으로 바라보면서 아이를 더 사랑하고 있음을 느끼고 더 기도하게 하시고 가진 것에 대한 감사를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임을...


그리고 그 은혜가 내게 족할 때, 그때 딸의 그 아픔을 거두시리라 믿는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족한 은혜로 인해 여전히 감사할 수 있기를...



"우리가 가진 것 중에 받지 못한 것이 무엇인가?"

오소 기니스의 <소명>




하나님의 아들은 인간의 고난을 면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고난이 자신의 고난과 같은 것이 되게 하기 위해 죽기까지 고난받으셨습니다 .

조지 맥도널드의 <전하지 못한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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