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 하완

by 청블리쌤


(2018.7.19.)

제목이 열일 하는 책입니다. 특히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되는 내용이 가득합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몇 가지 경구 같은 표현들입니다.


열심히 사니까 자꾸 승패를 따지게 된다. 지는 게 싫어서 열심히 살지 않기로 했다.

현명한 포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힘을 빼고 살아 본 적이 없다.

우연한 즐거움으로 가득한 목적 없는 헛걸음. 이런 게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재미가 아닐까?

세상은 우리가 불행하다고 속인다. 불행하지 않으려면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한다고 속삭이면서.



책을 재미로 보았지만 그 모든 내용에 공감을 하며 삶의 방향을 재설정하려는 열심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을 보면서 저는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이 책의 내용을 실천이라도 하듯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고2인 큰 딸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학교에서 담임선생님과 상담할 때 이 정도의 성적이면 좀 더 열심히 노력하면 성균관대 이상 가겠다는 격려 말씀에 딸은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며 고생할 생각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교육은 전혀 안 시키지만 학원을 보내달라고 제게 조른 적도 없습니다.
다른 학생들처럼 수학을 치열하게 풀지 않고 재미로 풉니다. 급할 것 없이 여유 있게 말이지요.
그리고 연애도 열심히 합니다. 학교 밴드부에서 베이스기타를 치면서 활동하고 그 취미 같은 생활을 고2가 되어서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주변의 상위권 친구들이 빨리 고등학교 과정 끝내고 좋은 대학을 진학해야겠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고등학교 생활이 행복하다는 이유에서지요.
본인은 행복할지 모르겠지만 그걸 지켜보는 부모의 입장은 마냥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2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 영어를 100점 맞고도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 우려를 표현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편안하게 지내던 딸에게 기말고사가 끝난 후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영어 2등급 받은 아이들 중 자신이 1등이라는... 간발의 차이로 1등급을 놓친 아픔이나 아쉬움보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간신히 억제하였습니다. 2등급 1등이 감당이 되지 않는 것은 “could have pp(그럴 수도 있었고)”, “would have pp(그럴 뻔했고)”, “should have pp(그랬어야 했던)” 일 중 가장 간발의 차이인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쨌거나 현실은 “didn’t(일어나지 않은)”라는 것이지요.
또 미적분 문제를 자신의 생각대로 쉽게 푸는 방법을 수업시간에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중간고사 때 그 쉬운 방법을 기억하는 반 학생들이 15점짜리 문제를 거의 맞혔는데 정작 본인은 시간이 부족해서 그 문제는 풀지도 못했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집에서 하는 겁니다. 상대평가체제에서 남에게만 좋은 일을 한 것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다니요. 속은 쓰리지만 그래도 잘했다고 해주었습니다. 부모의 속상함이 아이에게 전이된다고 해서 처절한 동기유발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을 이미 충분히 체험해왔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딸의 생활은 제 삶의 스타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데, 그래서 딸은 행복한 것 같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는 입시에 대한 집중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억압 속에 살아 행복한 느낌 자체가 사치였는데 딸은 어디서 배운 것인지 타고난 기질인 것인지 입시라는 억압, 그리고 더 심해진 사교육 시장의 확대에도 자신의 행복을 지켜나갑니다.
그렇게 저는 딸로부터 그런 여유와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우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니 그런 격한 공감과 함께 딸과 저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행복이 반드시 이후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현실의 벽을 의식하기 때문에 부모님들은 노심초사 아이들의 여유로움과 학업에만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아이들에게 후회할 거리를 만드는 것이 아닌지를 늘 고민하며 그 고민과 염려로 아이들을 더 억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실은 알려주면서 본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은 방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딸은 자기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가며 그런 모습들을 통해 삶의 모습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며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게 됩니다. 젊을 때의 패기로 아이들을 무조건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여유를 갖고 존중하면서 기다려주는 법을 차차 터득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기회가 박탈되지 않게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과까지 개입하려 해서는 안 되며, 본인 주도적으로 성취하고 얻어 가는 것들을 부모의 공적으로 바꿔가서는 안 된다는 확신도 듭니다.

이 책의 내용이 다 옳지는 않고 관점에 따라서 논란의 여지도 있지만 한쪽으로 치우지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메시지만큼은 옳습니다.
치열하게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삶이라는 경주를 지속하는 이들에게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게 하는 따뜻한 책이었습니다. 물론 이미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딸에겐 절대로 보여주지 않을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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