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학생들은 담임이 없을 때 더 잘하나?

학급담임의 역할

by 청블리쌤

존재감이라는 건 내가 없을 때 두드러져야 정상이다.

"너의 빈자리가 너무 컸어. 누구도 널 대신할 수 없어."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다. 대체불가라는 건 나만의 경쟁력이자 상대방에 대한 나의 존재의 이유가 되는 말이니까.

PCR 검사 결과 대기하면서 출근을 못하고 있었다. 나 없이 반 아이들은 잘하고 있을지 염려도 되고, 혹 함께해 주실 수 있는 부담임선생님께도 죄송하고 그랬다.

그런데 한편으로 학생들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반장에게 전화를 해서 학반을 부탁했다. 그저 평소대로 해달라고 하면서, 오늘은 큰소리를 쳐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오늘 모든 학생이 다 자가진단에 참여했다. 따로 전화를 해서 독촉을 할 필요도 없었다.

평소에 지각은 1분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심어주었었는데 오늘 지각한 학생들은 계 탄 거다. 운 좋게 나의 잔소리와 벌을 피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반은 등교하자마자 영어단어시험을 친다. 일부러 내가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그저 시험칠 때 한 바퀴 둘러보며 격려하는 정도? 학반에 성적 좋고 성실한 학생으로 영어단어도우미를 이미 선정해서 오로지 그 학생이 모든 것을 주도해서 진행한다. 나의 역할은 단어시험지 배부하는 정도다.

영어단어 시험을 치고 각자 채점하자마자 아침독서를 시작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책을 안 가져온 학생들을 뒤에 세워두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책을 다 가져와서 그 시간에 책을 본다. 딴짓을 하는 학생들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심어주었다.

오늘도 단어 시험 이후 독서할 수 있도록 반장에게 분위기 살펴 달라고 전화로 부탁했다.

1교시 시작 5분 전 학생들은 휴대폰을 제출한다. 휴대폰도우미도 알아서 시간이 되면 제출받고 보안이 되는 곳에 보관하도록 열쇠까지 관리한다. 7교시 마치면 내가 종례하러 오기 전 도우미가 휴대폰을 꺼내서 학생들에게 돌려준다.

칠판 담당과 급식수저배부 도우미도 기간별로 다 정해두었다. 2인 1조로 1주일씩 당번이 돌아간다. 점심시간 급식순서가 되면 수저도우미를 선두로 번호대로 급식실로 이동하고, 급식 후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도 훈련시켰다.

가정통신문을 배부하고 번호순으로 제출받는 학생도 자원을 받았다. 내가 시키지 않아도 통신문 배부 다음날 제출할 것이 있는 경우 번호순으로 수합해서 내게 전해준다.

게시판을 정비하고 공지사항 등을 칠판에 적는 도우미도 선정했다. 오늘 기초학력시험이 있는 날인데 칠판에 시험 일정표 적어달라고 연락만 해두었다.

학년초부터 학생들이 작성한 타임캡슐 꿈종이와 자기소개서로 1차 상담을 아침과 점심시간에 시작했다. 학습코칭은 차차하기로 하고 어떤 학생인지 파악하고 당장의 고민을 나누는 시간으로 목표를 잡았다. 학습플래너를 초라하게라도 시작하도록 독려했고, 주 1회 검사도 예고했다.

요일별로 청소 당번을 정하고 조장을 아이들 스스로 정하도록 했다. 마치면 문단속까지 마무리하고 조별로 귀가한다.

이렇게 학반에서 나의 역할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나의 잔소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든다. 나의 존재감은 처음 시작할 때만 명확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어멘토링 학습코칭에서도 나의 영향력을 점점 줄여가며 결국에는 나의 도움이 필요 없도록 만드는 것이 과정의 목표다.

오늘 아침 대기하면서 학급담임으로서의 동일한 역할을 확인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반에 강한 임팩트 있는 명확한 가이드라인 제시가 필요했다. 난 학급담임을 하면서 이러한 사항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첫 시간에 아이들에게 학반 마스터플랜을 명확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적어도 아이들이 왜 그런 것까지 해야 하는지 납득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인 1역할을 강조하며 학반에서 뭔가 의미 있는 일들을 이루도록 한다. 처음에는 담임교사의 감독과 지도가 필요하지만 결국에는 교사 없이도 자기주도성과 주체성을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교육방향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담임으로서의 나의 목표도 담임의 존재감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오늘처럼 담임이 없는 날도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역할과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인지하며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초반에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아이들을 지도한다.

내 경험상 물론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내가 없을 때 아이들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더 명확한 책임감을 가지고 임한다. 한 번씩 담임이 없는 상황이 아이들을 더 성장시키는 느낌이어서 내가 자꾸 피해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까지 하게 된다.

교사와 부모는 결국 아이들이 자신을 필요로 없는 순간을 위해 애써야 하는 숙명을 지닌다. 그 순간이 오면 서글픔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기쁨의 순간도 없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걸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힘들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기쁨과 행복일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설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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