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단순했다. 내 만화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거.
하지만 꿈이 손안에 들어오자 직업이 됐고, 직업은 일상이 됐다. 일상 속에서 난 잊고 있었던 거다. 난 꿈을 살고 있다는걸.
마음의 소리 – 조석(시트콤 버전)
대학교 4학년 때 한창 임용을 준비하던 시절,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예비교사로 칭함을 받으며 실제 선생님들과 만나는 행사에 참여했다.
실제 선생님들이 얼마나 훌륭한 분이셨는지는 내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분들은 내게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 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저분들처럼 교사만 될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불평 없이 매 순간 감사한 마음으로...”
대학교 4학년 때 사대부고 교생을 나갔을 때도 그랬다. 지도교사 분들이 모두 다 그저 하늘같이 느껴졌다. 특히 내 지도 선생님은 정말 모든 걸 따라 하고 싶었던 훌륭한 분이셨다. 영어과 교생 대표 수업을 하게 되었을 때, 지도 선생님이 얼마나 부담되고 힘드셨을지 훗날 사대부고 교사를 하며 교생 지도할 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난 지도 선생님의 수업 방식에 큰 영향을 받았고, 세심한 지도와 칭찬과 격려와 존중을 받으며 수업을 배웠고 대표 수업 후 교수님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수업시간에 일일이 해석해 주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한 것에 대해 한 교수님의 지적을 받았을 때 지도선생님은 나를 변호하시면서 그러지 않아도 되는 당위성과 그게 더 효율적이라는 논지로, 연구수업이라서가 아니라 평소에도 그런 수업을 하고 있다는 말씀으로 논란의 여지조차 주지 않으셨던 "멋있음 뿜뿜”의 순간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리고 내가 교사가 되겠다는 열망은 교생 기간 동안에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학생들을 만나고 아이들과 교감이 이뤄지고 나서부터였다. 대표 수업을 했던 담임 반 학생들의 이름을 다 외우고, 점심시간에 아이들에게 다가가 상담을 하고, 대표 수업이라는 큰 미션을 함께 이뤄내면서였다. 대표 수업 이후 아이들이 정말 발표도 잘하고 수업 참여도 흠잡을 데 없이 훌륭했음에도, 혹 자신들이 모를 실수라도 해서 내가 곤란하지 않았는지 모두가 진심으로 날 걱정해 주었고, 수업과 학생들 칭찬까지 이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던 감동과 감격의 벅찬 감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교생 기간이 지난 후에도 공부하다가 아이들을 떠올리며 이름을 한 명씩 적으면서, 진짜 교사가 되어 만나러 가겠다는 다짐을 이어가곤 했다. 아이들에게 150통이 넘는 손편지를 받았고 나도 일일이 답장을 해주었다.
다음 해 임용 합격으로 교사가 되어 지도선생님께 인사드리러 갔다가, 쉬는 시간에 2학년에 진급한 아이들 교실에 들어가서 인사를 하고 아이들의 열렬한 축하와 격려의 환호를 받았던 환희의 순간도 내가 교사로서 더 힘을 낼 수 있었던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임용 준비하는 후배들을 살펴보다가 지금은 제자들의 상황을 듣는다. 재수, 삼수가 기본 코스가 된지 오래고 지금은 그렇게라도 합격하는 게 기적 같은 축복임을 느낄 정도의 상황이다. 대구 중등 영어교과는 재작년 1명, 작년 2명을 선발했다.
내가 임용을 치르던 해는 5명이었고, 이례적으로 적은 인원이라 모두가 충격받았던 기억이 나는데, 1명, 2명은 여간 자신이 있어도 원서조차 내기 힘든 상황이 아닌가? 합격자들은 수석, 혹은 차석 합격까지만 유효한 거니까...
한두 해 이상의 실패를 겪는 예비교사들의 마음은 더 큰 간절함이거나 좌절감 그 어딘가에 있는 경우가 많았고 모두 아파하고 있었다. 도움을 줄 수 없어 그저 교사로서 그 어떤 경험도, 그것이 사소한 것이거나 아픈 것이거나 관계없이, 의미 없는 경험은 없다고 위로한다. 지금 아픔의 크기만큼 더 큰 공감능력으로 이후 만나게 될 학생들에게 큰 축복의 역할을 하게 될 거라고... 아픔은 사명이 될 것이라고... 결국에 어떻게든 교단에 서게 될 것이니...
블로그로 소통하던 영어과 임용러 두 분이 이번에 임용에 최종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정말 내 일처럼 뛸 듯이 기뻤다. 두 분 다 한 번 혹은 그 이상의 좌절을 겪으신 분들이었는데, 나의 느낌으로는 정말 실력이 출중하고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칠 역량과 준비가 다 된 분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겸손한 배움의 자세로 끊임없이 학생들과 함께 성장하실 분들이었다. 한편으로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어떻게 교사할 기회를 바로 얻지 못하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너무 컸었다. 그런데 결국에 그 꿈의 자리에 나아간 걸 확인하고는 안도의 마음과 기쁨의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분들의 행복만이 아니라, 그 선생님들이 만날 학생들의 행복으로 인해 더 설레고 기뻤는지도 모른다.
대학교 지도교수님께서 한 번은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교사를 3년 정도 하면 권태기가 올 것이니 교사보다는 유학을 가서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그렇게 내게 공부를 권하셨다. 난 공부보다 학생들을 만나게 될 꿈만 가슴에 품고 살아왔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고 말씀드렸다.
훗날 교수님은 동기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공부를 더해보라고 했더니만 그냥 일찍 결혼을 해버렸네.”
내가 교직에 나오자마자 그다음 해인 26살 때 결혼을 했으니 틀린 말씀은 아니었다.
꿈이 직업이 되고 일상이 되는 것은 권태기를 닮아있다. “처음처럼”이라는 짧은 말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건, 모두가 그 "처음"을 잘 기억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 "처음"은 서툴고 어색해도 매순간이 신기함과 설렘과 행복의 기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린 계속되는 선물을 권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를 얻으면 두 개를 바라게 되기도 한다.
절실함이 안정감으로 바뀌면 꿈을 꾸던 긴장감도 사라져간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의도적으로 스스로에게 일깨워야 한다. 어떤 자리에 있건, 특히 그 자리가 사소해 보이는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도 아이들에게 일생일대의 중요한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교사의 자리에 있다면, 매 순간 우리는 그 꿈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행복과 사명으로 떠올려야 한다.
오늘도 일상같은 특별한 하루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