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고3 딸의 1년 전 다짐

타임캡슐 글쓰기

by 청블리쌤

작은 딸이 작년 국어 선생님의 과제로 제출했던 1년 후 자신에게 하는 다짐과 편지를 학교에서 받아와서 내게 보여주었다. 일곱 가지 목표를 다 이루진 못했지만 그래도 노력했다는 말에 격려를 해주었다.


최근에는 실시하지 않았지만 담임 첫 시간에 꿈종이를 채워보라고 시간을 주었다. 뭐든 자유롭게 자신의 앞날을 그려보고 현재의 다짐을 정리하는 시간을 주고, 수합하여 상담을 하고, 잘 보관하였다가 1년 후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마치 타임캡슐처럼 1년 전의 글을 받아든 아이들 중에는 감격스러워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1년간 눈부신 성장을 이룬 아이들일수록 더 그러했다.


이런 미션은 필요성을 느낀다고 바로 해낼 수 없는 거다. 오랜 시간을 두고 시작을 하면 씨앗을 뿌리듯 시간이 지나고 나서 숙성되는 효과를 체험할 수 있다.


자신의 성장하는 모습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확인이 잘 안되는 탓이다.


물론 꿈종이를 적을 때 1년 후에 다시 돌려받게 될 거라는 걸 미리 알려준다. 그 말을 의식하는 학생들일수록 좀 더 진지하게 적는다.


꿈종이를 채운만큼 상담의 깊이가 달라지고, 그 깊이에 따라 성장의 속도와 분량도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딸의 허락을 구해서 딸이 작년에 썼던 글을 공유한다. 목표가 더 훌륭한지 아닌지를 따지기 전에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현실적으로 고민한 모습이 대견했다.



1년이 지난 2022년 나의 모습

1. 서울 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모습

2. 2021년을 후회하지 않는 모습

3. 희미했던 것들이 선명해져 있는 모습

(꿈, 희망과 인생철학 등등)

4.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꿋꿋하게 나만의 길을 닦아놓은 모습

5. ‘주’가 되어야 하는 것과 ‘숨통’의 구분이 확실한 모습

6. 올바른 습관이 배어 있는 모습

7. 10대의 마지막을 당당하게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


나의 느낌

1. 작년(2학년 5월) 교회에서 강제로(?)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쓴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사실 딴 집 딸보다 공부도 안 하고 춤이나 추고 싶어 하는 방황하는 딸인데도 기다려주시고 괜찮다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겨우 간절해졌는데 잘 할 수 있을진 모르겠어요. 폰도 어떻게든 관리하고 진짜 열심히 해서 딸 얼굴 매일 못 보게 하는 불효를 저지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자신은 없는데 못 그러면 효도한다고 생각하고 대구에 있죠 뭐. 딴 애들보다 잘난 게 별로 없어서 항상 자신이 없었는데 매일 제일 이쁘다, 할 수 있다 격려해 주셔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짜증도 자주 내고 잠도 많이 자는 딸이지만 독립할 때까지 곁에 있어 주세요.


서울의 대학을 가겠다는 확신을 가지면 기뻐해 주겠지만, 아니라도 좋은 건 딸의 말대로 대구에 남아 효도할 기회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목표가 좀 더 구체화되면 일상에서 행동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음을 느낀다.


2. 후회는 목표 달성의 여부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그저 하는 데까지 할 수 있었다면 아쉬움이 있을 수는 있지만 후회는 아닌 것이다.


3. 진로나 꿈에 대해서 선명해지는 바람을 갖는 것도 좋은 일이다. 당장 답을 찾지 못해도 그런 시도와 노력만으로 이미 길을 찾는 것을 예약한 것이다. 헤맴과 방황은 필연적인 과정이다.


4.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은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어서 정말 어렵지만 어려운 만큼 남다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사실 이 말은 아이들 스스로에게보다 부모님들에게 더 필요한 다짐이기도 하다.


5. 공부만 할 수도 없고, 좋아하는 일만 할 수도 없다. 그 대신 선이 명확해야 휴식도 의미가 있고 공부할 때 집중이 가능하다. 딸은 절대로 집에서 공부하지 않는다. 물리적인 공간에서의 명확한 선도 집을 떠나게 되었을 때의 확실한 공부를 보장한다. 그러나 밥 먹으러 집에 와서 이불 속을 먼저 찾는 것은 집을 떠날 수 없고, 떠나지 않겠다는 다짐에 가까운 일인데, 스스로 유혹을 떨치지 못할 때마다 많이 속상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신기한 건 속상해하면서도 맨날 이번엔 다를 거라는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다.


6. 습관은 서서히 조금씩 자신도 모르게 형성되어 있어야 몸에 밴 것이다. 목표하는 모든 습관을 이루진 못했지만 조금씩 습관이 루틴처럼 늘어가고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습관형성은 마음의 의지를 몸이 기억할 때까지다.


7. 아빠 앞에서 10대의 마지막 끝자락에 이르렀다고 함부로 아쉬워하는 딸의 모습이 귀엽다. 어떤 연령대든 그다음 10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는 웅장하고 비장해지기 쉽다. 그저 매일처럼 지나는 일상의 연장일 뿐인데도 그렇게 의미 부여가 된다. 둘째 딸도 이제 민증이 나온다.



<1년 후 자신에게 쓰는 편지>

지금은 아직 시작이고, 모든 게 희미해 보이고 내가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지만 지금부터 꾸준히 정말 꿋꿋이 노력해서 이 7가지를 다 이룰 수 있도록 하자.

남들보다 똑똑하지 않은 것 같고 예쁘지도 않은 것 같고 난 아무 특색도 없다 느껴질수록 더 열심히 하는 니가 되길. 자만에 빠지면 답도 없다.

아빠 말대로 죽어라 하는 건 둘째고 꾸준히 너만의 방식을 찾아서 공부하길.

제발 후회되는 한 해를 보내지 말자 부탁할게.

이걸 읽으면서 다 이뤘다는 뿌듯함, 이제 멀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으면 좋겠다. 언니 내가 응원할게.

* 혹시라도 후회되는 한 해를 보냈다면 포기하지 말고 그땐 더 죽어라 하는 거야. 더 큰 세상으로 나가보자. 할 수 있어.



희미해 보이고 막연해도 뭔가 애쓰고 노력하려는 다짐을 보니 흐뭇하다. 딸은 1년간 나름 열심을 다해 그 길을 걸어왔다. 내가 평소에 하는 잔소리도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는 것도 뿌듯하다. 남들과 양적 팽창을 비교하지 말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재미있게 하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 이루지 못했을 때도 실망하지 않으려 자신을 토닥거리는 긍정적인 자세가 좋았다. 딸은 실제로 이 글을 다시 1년 만에 받아들고 좌절하지 않았다. 여전히 더 큰 세상으로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하다.


난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년에 아빠, 엄마 곁에서 매일 봐도 좋으니 매 순간 배움의 즐거움과 성장의 기쁨을 충분히 누리길 바란다. 그러니까 결과는 어떠해도 좋다. 서울로 가거나 대구에 남거나... 매 순간 선택도 너가 하는 것이고 그 선택의 결과도 스스로가 감수해야 하는 거니까.. 그 자체로도 이미 인생을 배우고 있는 것이니까...


결론을 정하지 않는 걸음은 가뿐하고 그래서 더 즐겁고 행복하다.


첫째 딸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고3 학부모가 되는 것이 부담이 되지 않는다. 그저 매 순간의 즐거움과 행복만 응원하면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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