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are three stages of man: he believes in Santa Claus; he does not believe in Santa Claus; he is Santa Claus. - Bob Phillips
인간의 세 단계가 있다. 처음에는 산타클로스를 믿는다. 그러고는 믿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산타클로스가 된다.
인생의 성장 단계를 잘 표현하는 인용구다.
산타클로스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것은 개인에게 생긴 변화다. 동화의 세계에서 소설의 세계로 나아가는 단계라고도 할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책에 푹 빠져 살았다. 주로 재미있는 동화 위주로 읽었고, 고전소설도 당연히 줄거리 위주의 어린이용 책만 보았다. 초등학생이라고 삶의 고단함을 전혀 느끼지 못한 건 아니지만, 책 속에는 늘 해피엔딩이 있었고 늘 막연하게라도 희망만 가득했었다.
그러다 5학년 때쯤 아버지가 이제 때가 되었다며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 완역본을 과제로 던져주셨다. 벌써 책의 두께에 압도되었다. 그런데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건,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장을 덮을 때의 느꼈던 삶의 무게였다.
그래서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남자 주인공이 책을 다 읽자마자 격분해서 책을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아버지께 결말에 대해 따지듯 얘기하던 그 장면이 너무 공감이 되었다.
그때가 내게는 산타클로스를 더 이상 믿지 않게 된 상징적인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존재도 하지 않는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애써 부인하려 하지 않는 것은 아직 고단한 현실에 들어서기 전, 동심파괴를 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제한 없이 상상할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현실을 넘어서 세 번째 단계인 어른이 되면 아이들에게 동심에 담긴 꿈과 희망을 전하는 역할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마지막은 정말 의미 있는 성장의 단계다.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게 된 것은 자아의 성장이라면, 마지막 단계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고 돌보는 자아의 확장이기 때문이다.
<빨강 머리 앤>에 이런 대목이 있다.
고아원에서 농장 일을 시키고 물려줄 남자아이를 데려 오려 했던 나이 든 남매, 마릴라와 매튜는 막상 고아원에서 보낸 아이가 여자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매튜는 차마 아이를 돌려보낼 수 없어 그냥 앤을 집으로 데려온다.
당황한 마릴라는 이렇게 말한다.
"저 애를 키워서 우리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그 말을 들은 매튜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가 저 애한테 도움을 줄 수 있지."
그게 진짜 어른의 모습이다. 계산하지 않으며 때로는 논리적으로 따지지 않으면서도 더 사랑해 주는 모습... 도움을 베푸는 어른들이 있어야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하고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른들도 관계 속에서 함께 성장하고 힐링하며 더불어 행복해진다.
어른이 되면 두 단계 아이들을 만난다.
아직 산타클로스를 믿으면서 이후의 현실에서의 고단함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충분한 동심과 희망과 상상력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충전해야 하는 어린아이들로부터, 산타클로스가 없는 듯한 진짜 현실을 힘겹게 마주하며 어른이 되어가는 청소년들을, 부모는 가정에서, 교사는 학교에서 만난다.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게 된다는 것은 노력해도 안 되는 일도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원하는대로 다 되는 것이 아님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현실을 마주하면서도 혹 바뀌지 않을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삶의 의미를 찾고 행복한 길을 찾는 과정을 거치면서 진짜 어른이 된다. 그 아픔의 터널을 통과하고 또 다른 터널을 지나고 있는 어른들만이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진심어린 위로를 해줄 수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희망이지만, 그전에 어른들이 아이들의 희망이어야 한다. 행복도 그러하다.
삶의 어떤 단계에서도 우리는 성장한다. 궁극적 성장의 형태는 다른 이들에게 미치는 선한 영향력으로 발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