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첫 모의고사 후 딸과의 상담(고1 제자)

by 청블리쌤

첫 모의고사 전 날 딸은 야자를 일찍 마치고도 독서실에서 평소 자신 없던 삼각함수를 마저 정리하고 오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떨림이 설렘처럼 전해졌다.


딸에게 늘 이야기했다.

모의고사는 종착점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기회가 남았다는 의미일 뿐이라고...

그럼에도 긴장감과 떨림을 그대로 간직해야 하는 이유는 실전을 대비한 연습이 수능이라는 더 큰 긴장감을 감당하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모의고사의 성적이 좋고 나쁨은 기분을 결정짓기도 하겠지만 응시하는 과정 그 자체에 이미 큰 의미가 있는 거고, 무엇보다 시간 내 최선을 다하고, 전략적으로 포기와 집중을 실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퇴근해서 오니 모의고사를 마친 딸이 등급 컷을 찾아보고 있었다.

결과가 궁금한 건 애써 참으면서, 그저 애썼다고, 수고했다고 해주었다.

먹고 싶어 하던 치킨을 시켜주고, 밀렸던 드라마도 함께 보았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젊은 날의 도전과 사랑과 꿈을 이야기하면서, 힘들어 하는 아이들에게 괜찮다고 토닥거려주는 듯한 곳곳의 따뜻함과 배려와 격려의 말들이 넘쳐나는 드라마라서 바쁜 딸의 스케줄을 쪼개서 함께 보자고 먼저 제안한 것도 나였다. 그리고 난 딸과 함께 눈물을 훔치면서 감동을 나누고 있다.

모의고사를 마치고도 지친 심신을 달래줄 위로가 되길 바랬다.


그러고는 가채점을 함께 입력하고, 등급 컷을 찾아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딸은 괜찮다는 나의 위로와 지금의 위치가 어떤 의미이고 어떤 가능성이 있으며, 딸의 잠재성과 합쳐졌을 때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거라는 아빠의 말에도, 얼마간의 좌절감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난 그런 딸에게 이런 정도의 말을 해주었던 것 같다.



담임선생님 눈치 볼 것 없다. 정시 파이터임을 밝혔을 때 3월 모의고사 성적 보고 이야기하자고 하셨지만, 담임선생님은 지금 이 순간의 데이터로 드러나는 현실을 객관화시키실 수밖에 없는 입장이신 거다. 현실에 바탕을 두지 않는 학생들의 이상적인 목표는 훗날 더 큰 아픔과 상처로 남을 수도 있으니까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거다.


학생들은 성적과 담임선생님의 현실 조언으로 점점 자신의 이상적인 목표와 욕심의 간극을 줄여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간극이 좁혀지는 건, 그만큼 시간이나 기회가 줄어든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반복되는 메시지와 현실의 무게가 점점 더 크게 다가오기기 때문이기도 한 거다.


그런데도 현실에 굴하지 않고 정말 포기를 모르고 멈추지 않는 소수의 학생들은 현실로 착륙하기보다 이상적인 목표 그 언저리로 결국 날아오르기도 한다.


너는 그중 어떤 유형이 될지 미리 결정할 필요는 없다.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볼 일도 아니다. 너의 목표가 이뤄낼 실현된 꿈일지 망상일지는 그냥 가보면 아는 거다. 그걸 미리 결정하고 판단할 이유는 전혀 없다. 게다가 넌 정시파이터니 그야말로 수능 때까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거니까 복잡하게 생각할 이유도 없다.



<모의고사 유형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

아무리 성적이 신경 쓰여도 기본기와 개념이 우선인 건 본질이다. 억지로 쥐어짜서 비슷한 유형을 암기하듯 빠르게 푸는 것은 이해하면서 풀어내는 것과는 완전 다르지.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지 않은 수학은 보통 두 개 중 하나다. 바로 문제를 미친 듯이 빨리 풀어나가거나 손도 못 대거나... 그러나 원리를 이해하며 접근하면 문제의 변형과 난이도에 관계없이 잠시 멈춰 더 생각한다. 어차피 개정된 수능에서 수학은 예전처럼 틀이 고정된 것처럼 익숙한 유형으로 쉽게 해결하는 문제가 많이 줄어서 유형의 생소함을 원리에 대한 이해로 극복해야 한다. 물론 시간 내 풀려면 더 많은 노력과 익숙한 것에서 시간을 절약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긴 하지만 그건 너도 차차 더 많은 시간을 두고 연습할 거니까...


그러니 모의고사 풀이에만 집중하지 않았던 너의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좋은 모의고사 성적을 보장해 주지는 않았지만, 더 희망적인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충분한 이유는 된다.


국어는 읽기 위주로 너 스스로 꾸준하게 걸어왔던 과정이 서서히 보상을 받는 것 같아 다행이다. 넌 꾸준한 읽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니 결국 완전한 수준까지 갈 거라고 확신한다.


영어도 시간 재면서 모의고사를 연습하지 않았어도 기본기를 다지면서 정확성에 초점을 맞추었으니 이제 그 기본기로 모의고사를 마음껏 풀어 가면 된다. 그것도 시간 재면서 풀 필요는 없고 꾸준하게 하다 보면 나중에 시간 내 풀 준비를 갖추게 되는 거다. 물론 전략적으로 볼 때 1등급을 받기 위해 빈칸추론을 우선적으로 풀 필요도 없고 다 맞추려고 애쓸 필요도 없지. 빈칸추론 반타작만 하면 된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그냥 꾸준히 읽고 문제 풀어 보렴.


실력을 쌓아서 실전을 준비하는 것과, 실제 전략적으로 실전에 임하는 것은 결이 다르단다. 너도 댄스반 실전 무대하면서 겪어봤겠지만, 무대에 서기 전에 사소한 한 동작이라도 확실하게 연습해두면 그만큼 여유가 생기게 되잖니. 그 여유로 무대를 더 즐길 수도 있고, 다른 부족한 부분에 더 에너지를 집중할 수도 있는 거니까...


전략은 포기를 동반한단다. 모든 문제를 다 완전하게 풀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면 더 편해진다. 의대를 희망하는 학생들은 수학 한두 문제를 위해 1년을 더 투자하기도 한다. 넌 의대랑 상관없으니 그냥 하는 데까지 하고, 수능이 가까우면 포기할 영역과 부분을 명확하게 하면 오히려 다른 분야를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게 된단다. 물론 지금 포기할 부분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긴 하겠지.

전략은 차차 세우면 된단다.



<성적에 좌절한 것인가? 어디서 희망을 볼 것인가?>

윤리덕후를 쌍윤 선택으로 인증했지만, 사탐 성적은 아직 고려 대상이 아니다. 윤사는 지금 한참 개념정리 중이고, 생윤은 아직 시작 단계인 거잖니. 물론 탐구도 미리 끝내 놓고 지금 여유 있게 진행하는 것이 더 좋았겠지만, 국영수에 더 치중한 너의 선택도 틀린 게 아니란다.


이번의 국영수 성적만 가지고 좌절할 이유가 있을까?

공부를 하면 점점 더 개념도 명확해지고, 계속 실력이 늘 거라는 확신이 있는지 여부만 따져보렴.

도저히 해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 그럼 된 거다.


사탐도 아직 너가 개념을 완성한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 성적을 논하며 대학의 가능성을 가늠해 보는 것이 큰 의미가 없듯, 국영수도 아직 고3 초반이니, 그리고 넌 모의고사 성적을 빨리 잘 받는 요령보다, 기본기에 더 충실해왔으니 앞으로 차츰 달라질 너의 행보를 기대해 보자.

그리고 앞으로도 펼쳐질 4월, 6월, 7월, 8월, 10월 모의고사도 너의 승부수는 아닐 거다.



<성적이 잘 나온 것이 과연 좋기만 한 일일까?>

시간이 없어서 찍지도 못하고 빈칸으로 답안을 제출한 거에 대해 너무 안타까워하지 마라. 이후의 실전연습에서는 어떻게 전략적으로 대처할지를 몸으로 익힌 셈이니 좋은 경험일 거다.

행여 찍은 게 다 맞았을 경우 당장 기분은 좋겠지만 그걸 어떻게 감당하려고? 네 것이 아닌 것 같은 그 좋은 성적은 이후 오히려 너의 감당하기 힘든 짐이 될 거다. 좋은 건 유지하려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지. 그렇다고 아는 문제만 마킹하는 극단적인 솔직함도 필요 없는 거긴 하지만...



<다들 모의고사 오답노트도 작성하고 모의고사 풀이도 하던데 꼭 해야할까요?>

모의고사 풀이는 혹 중간고사 범위에 포함될 경우를 대비하여 필요할 수도 있고 실전 모의고사에 맞춰 학습한 학생들의 경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단계란다.

그래서 놓쳤던 개념을 찾아내거나,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주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거지.

그렇지만 넌 개념원리 중심으로 공부했으니 굳이 시간 많이 들여서 풀이할 필요 없을 듯 하구나. 어차피 차차 개념이 확립되고 실전 연습을 통해 모의고사 유형에 차차 익숙해지면 풀이할 오답이 자연스럽게 줄어들겠지. 어차피 기본개념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오답노트는 시간낭비일 수도 있단다.

모의고사는 부족한 부분 진단 및 점검이라고만 생각하고 너 하던 공부를 계속 이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너도 그걸 원하는 거잖니. 딴 애들 따라하지 않아도 되고 따라하지 않는다고 불안해 할 필요는 없는 거다.



<결과를 너무 의식하지 않아야 지금 이 순간이 즐거울 거라는 역설>

도달점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의 한 걸음이다. 지금의 이 한 걸음이 훗날 의미 있는 움직임이었음을 깨닫게 될 날이 올 거란다. 기회가 있다는 건 희망이 있다는 거고, 희망이 크기만큼 불안함도 공존하게 되어 있으니, 그런 상황조차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면 좋겠구나.


낮밤이 바뀐 패턴이 완전하게 돌아오지 않았는데도 시험 전 날 일찍 자면서 관리하고, 여러 불리한 여건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했던 네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아직까지 수학 과목에서는 잘 해냈다는 성취의 기억이 없어서 더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이해되지만, 묵묵히 멈춤 없이 정도를 걷고나서 예고 없이 다가올 성취의 놀라운 경험도 기대하렴. 그게 너무 빨리 네게 다가오면 더 큰 부담일 수 있으니 조급할 이유도 전혀 없다.


애썼고, 수고했다^^




<졸업생으로부터의 문자>

같은 날 모의고사를 친 졸업생(고1)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자기 모의고사 영어성적을 인증샷으로 보내며 시간이 부족해서 다 못 풀었지만 풀었던 문제는 거의 다 맞았다고 했다.

분명 그 학생이 원했던 기대수준에 맞는 성적은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라도 영어를 할 수 있었던 건 선생님 덕분이라는 그 학생의 문자에 큰 감동을 받았다.

난 그 학생에게 이렇게 위로를 해주었다.


실망하지말고 다른 애들 하고 비교하며 기죽지말고

아직은 유창성보다 정확성에 초점 맞추면 되니까.

학교수업들으면서 중간고사대비 잘 하길.

단어 계속 보고, 어법도 하는 데까지 틈틈이 보렴.

나중에 시험범위 볼 때 문장 분석하는 시간 줄이도록 평소에 해 두는 게 중요하고.

모의고사도 범위 포함될 거니까 ebs 같은 데서 인강 들으면서 미리 공부하면 좋을 것 같구나.

더 잘했으면 좋았겠지만 이대로도 너에 대한 나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계속 응원할게

소식 전해줘서 고맙다

힘내렴



고등학교 모의고사의 의미 예전 포스팅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2006904718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공부는 암기보다 이해(Feat. 중간고사 공부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