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의 기억이 주는 확신
올해도 어김없이 전교생 사진대장을 구해서 아이들 이름을 외우고 있다. 언제 다 외울지 아직은 볼 때마다 막막하다. 내게는 매년 다 암기했다는 성취의 기억만 있을 뿐, 힘겨웠던 과정은 그 성취의 기억 속에 묻혔던 것 같다. 올해 이렇게 더 막막하고 힘들게 느껴지는 건, 나이가 좀 더 들었다는 증거이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앞선다. 물론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쓴 얼굴이 평소 모습이 된 것도 한몫했을 거다. 사진대장 속의 얼굴에는 마스크가 없어 마치 쌩얼을 마주하는 느낌까지 든다. 물론 마스크를 쓰지 않던 시절에도 사진을 보고 학생들의 모습을 매치시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 눈부신 기술의 발전 때문에...
어쨌거나 올해 특히 외우기 힘들다고 엄살을 부리면서 미뤄두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일과 중에, 수업 다녀와서, 지하철에서, 저녁때 기운이 남아 있으면 한 번씩 사진대장을 훑는다.
그러다가 날 멈추지 않게 하는 건 결국 이뤄냈던 “성취의 기억”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매년 과정이 어떠했던 결국 해냈기 때문이다. 그 성취의 기억이 자신감처럼 내게 진전이 보이지 않아도 다짐하도록 하는 힘이 되었던 거다.
학생들의 학습에도 이런 성취의 기억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 한 번도 성취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을 일으키고, 격려하며 용기를 주려는 교사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결국 아이들은 사소한 것이라도 성취에 대한 기억이 있어야 막막함에서 구체적인 도달점을 그려볼 수 있을 거였다.
그래서 어른들에게 필요한 건 아이들에게 과도한 목표나, 성급한 성취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결과만 가지고 아이들을 판단하는 것을 유보하여 매 순간 과정 중의 성장을 스스로 성취라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목적의식이 중요할 것 같다.
내게 성취의 기억 외에도, 학생 한 명을 인격적으로 대하게 되는 이름을 불러주는 교감의 순간이 어떤 의미인지를 떠올리지 않는다면 그 지루하고 막막한 과정을 매년 계속할 이유는 없다.
나의 지금의 노력과 애씀은 상상하지 못할 엄청난 의미가 있다는 체험에서 오는 확신이 멈추지 않는 힘을 준다.
아이들에게도 그런 구체적인 목적의식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학생들은 두 가지 목적의식으로 공부를 한다.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다가온다는 생각이 들 때와 학원을 갈 때가 되어 숙제를 해야 할 때다. 이 두 가지 이유가 아님에도 평소에 꾸준히 공부하는 습관이 어떤 식으로든 형성이 되어 있다면 공부를 잘하게 되는 건 시간문제인 거다. 물론 기본기부터 자기주도적으로 단계별로 학습하는 올바른 방향이 전제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래서 난 요즘 중3인 반 아이들과 전쟁을 하고 있다. 플래너를 쓰는 습관을 갖도록 해주기 위해서. 시험이나 학원 외에도 매일 사소한 순간이라도 공부해야 할 이유와 목적의식을 구체화시키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실제 모습이, 그리고 마스크를 쓴 평소 모습이 사진대장과 달라서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난 수업할 때나 복도에서나 아이들의 모습을 부지런히 눈 속에 담아 두려고 애쓴다. 몇 번 튕겨 나왔다가 들어가야 결국 정착을 하겠지만, 기억을 위한 망각의 횟수가 정해져 있다면 난 오늘 망각하면서 기억에 더 가까워진 거고, 아이들의 세계로 가는 문에서 조금 더 가까워진 것일 테니.
완성을 꿈꾸기보다 오늘 만나는 한 명, 오늘 확실하게 이름을 알게 됨으로 일상에서의 만남에 의미를 부여받은 그 한순간에, 그 사소한 (그렇지만 절대로 사소하지 않은) 성취에 난 전율하며 기뻐하기로 했다.
빨리 다 외우면 좋지만 어쨌거나 결국은 다 하게 될 것이 중요한 거고, 완성되기 전의 과정에서도 여전히 난 학생들을 만나고 개별적으로 다가갈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오늘도 난 되도록 많은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준다. 그리고 아이들은 내게로 와 꽃이 된다. 잠재되어 있는 거대한 아이들의 세상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