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애하는 문장들 – 이유미

by 청블리쌤

작가는 제목처럼 자신이 책을 읽으면서 밑줄 그어둘만한, 소위 편애하는 문장을 모아 자신의 느낌을 정리하였다.


내가 블로그의 독서노트나 교육노트를 정리하는 방식도 그러하고, 지금 이 포스팅도 그러하다.

책에서 소개한 작가가 편애하는 문장들 몇 가지만 나도 편애하기로 했다.



p. 47

"응, 난 당사자가 아니잖아. 자기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걸 구경하는 재미로 부모 노릇 하는 거지, 애 낳아서 내가 나서서 성공시키려는 거면 애를 왜 낳아?

그 정성을 가지고 차라리 내가 직접 성공하거나 코치 같은 직업을 가져서 제자를 기르지."

(중략)

"그럼, 재는 나중에 뭐 해먹고 살지?"

"그걸 왜 우리가 걱정해? 본인이 걱정할 때까지 기다려야지. 우리가 먼저 걱정하면 자기가 걱정을 왜 하겠어? 인간은 편하게 살려고 태어난 존재잖아. 스스로 불편해질 때까지 내버려 두자."

-박혜윤 <부모는 관객이다>(책소유, 2020)



자칫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 두고 방임하는 무책임한 부모로 비춰질 수도 있는 글이다. 그런데 원래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었던 부모 유형 말고, 정성을 다해 부모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본 부모들은 안다. 저렇게 마음먹고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어쨌거나 자녀들을 통해 부모가 대신 인생을 살아낼 수도 없고, 부모가 못 이룬 것을 대신하여 성취하도록 만들 이유도 권리도 없다.


어린 나이일수록 부모의 보호와 안정적인 보살핌이 절대적이긴 하다. 그러나 아이가 점차 자아를 찾아가면서 부모의 역할을 축소할수록 서로 더 행복해진다. 사춘기라는 외적 갈등으로 인해 강제적으로 부모의 역할을 재정립할 기회도 있겠지만, 무증상 코로나처럼 언제 왔는지 모르게 사춘기를 보내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니, 부모가 더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어느 정도의 나이가 지나고 나면 부모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정하는 것이다.


난 학교에서도 내가 해야 할 기본적인 역할을 정해서 최선을 다하지만, 나의 열정을 아이들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무대를 마련해 주고 기회도 주고, 손을 먼저 내민 아이들의 손을 절대로 외면하지 않지만, 내가 먼저 손을 잡으려 하지는 않는다. 아이가 뿌리치는 손은 나의 상처에서 끝나지 않고 아이가 더 움츠려드는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어느 정도 관객이다. 작가는 제목에서 벌써 많은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p. 98

나는 생각했다. 아프더라도 우리 슬픔, 건드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날 때마다 서랍을 열어 꺼내 쓰는 무언가처럼 자주 열었다 닫았다 확인하고 꺼내 써야 하는 마음이라고.

슬픔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나와 내 곁에 사람들이 선명하게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하여.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일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잊지 않기 위하여.

- 고수리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수오서재, 2019)



부정적인 감정도 우리가 끌어안고 살아야 할 동반자다. 아픔도 상처도 그 존재를 부인하지 않는 데서부터 치유가 시작된다.

우리는 극중의 다른 사람의 슬픔에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며, 지금 우리의 삶에 감사를 찾아내기도 한다.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을 향해 우리는 죽음과 상관없는 사람처럼 애도해 주기도 한다. 자신이 당장 겪는 일은 아니라는 안도감이 슬픔을 통해 정화작용을 일으킨다.


그리고 자신의 슬픔에서도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삶의 굴곡에서 바닥을 치면 좋아질 일만 남은 것이니(늘 지금 이 절망이 바닥이 아닐 것 같은 불안함도 늘 들지만), 절망과 좌절에서 영영 갇혀 있을 수는 없다.

슬픔과 아픔이 깊을수록 그 반대 이면에 삶에 대한 감격과 감사가 더 커질 여지도 있다.



p. 104

엄마도 한때는 이별이 구원할 길 없는 결말이라고만 생각했어.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가 알게 된 많은 것들은 항상 '이별'이 알려주었다고 생각해. (중략)

살다 보면 알게 돼.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바로 그 잃어버린 것들 덕분에 얻은 것이란걸.

- 임경선 <가만히 부르는 이름>(한겨레출판, 2020)


잃어버렸다는 건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하나를 놓아야 다른 하나를 새로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기들은 새로운 걸 손에 잡기 위해 잡고 있던 걸 바로 놓아버린다. 어른들만 놓지 않고 집착하려 한다. 자발적이든 강제든 우리가 잃어버린 자리에 새로운 것이 채워진다. 또 다른 이별을 마주하기 전, 그저 가진 그 순간에 감사로 누리면 되는 거다. 이 순간 더 집중하며 감사할 수 있는 건 상실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p. 124

어떤 작가에게 왜 신간을 보내주지 않느냐고 따지듯이 말한 사람이 있었다.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 작가가 말했다. 이번에 너희 회사에 새 차 나왔다는데 왜 나한테는 한 대 안 보내주는 거야?

-안도현 《안도현의 발견>(한겨레출판, 2014)


다른 사람의 상황에 처해보지 않고서 우리의 생각만으로 완벽하게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있다고 오만해져서도 안 된다. 우리의 경험과 생각의 틀이라는 필터로 다른 이들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위의 문장이 너무도 공감이 되었던 건 나도 망작이지만 책을 출판할 기회를 얻으면서 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책 나왔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왜 자신에게는 책을 보내주지 않느냐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섭섭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사비를 들여서 책을 사서 주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 대개 작가에게 홍보용 여분의 책을 넉넉하게 지급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출판사의 입장도 있는 것이니 작가들이 섭섭해할 일이 아니다.



p. 144

"손님을 평가하지 마, 절대로, 머릿결이 많이 상하셨네요. 피곤해 보이시네요, 여기 목뒤에 뭐가 나섰어요. 피부가 안 좋으시네요. 이런 말 절대 하지 마. 손님들이 자기 상태를 모를 것 같니? 다 아는데 좀 나아지게 하려고, 기분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려고 미용실에 오는 거잖아.

그런데 머리하러 와서까지 그런 말을 들어야겠니? 그렇게 무신경할 거면 이 일하지 마, 아예."

- 윤이형 <붕대감기>(작가정신, 2020)


전문가라면 평가와 판단의 유혹에서 더 벗어나기 힘들다. 만나는 이들에게 자신의 전문성만큼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확신에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교사와 부모는 매 순간 그런 유혹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어찌 보면 단 한순간도 아이들의 모습은 어른들이 그리는 이상적인 모습과 닮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어른들의 힘겨운 침묵이 아이들을 더 성장시킨다. 단,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은 있다. 사실 그래서 더 확실한 자발적인 완전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겠지만, 어른들은 인내심과 기다림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끊임없이 시험을 받는다.


적어도 이건 확실하다. 아이이거나 어른이거나 판단과 평가, 그리고 그에 따른 즉각적인 조언에 힐링이 되고 위로를 받는 경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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