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와 승부욕의 역설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 황선우

by 청블리쌤


20년 이상 잡지 에디터로 일했던 황선우 작가의 <목숨 걸지도 때려치우지도 않고, 일과 나 사이에 바로 서기>라는 부제가 붙은 에세이다.

특히 조직에서, 프리랜서로서, 여성으로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될 책이다.


그중 특히 완벽주의자처럼 평생을 살았던 내게 큰 힘이 되었던 부분을 소개한다.


완벽주의자는 완벽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늘 속상해하는 사람이다.

오늘 학교에서 완벽주의를 꿈꾸는 반 학생과 상담을 하였는데, 그 학생에게 해 준 말은 나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했다.

높은 기준으로 완성을 지향하는 건 당연히 성취의 가장 큰 동력과 동기유발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음을 느낀다.


나의 삶에 완성을 향한 스스로에 대한 다그침이 없었다면, 삶에 대한 여백으로 충전의 시간을 충분히 더 가졌다면, 완벽할 수 없음에도 완벽에 집착하지 않았다면, 난 좀 더 편안하고 즐겁게 그 시간들을 보내면서도 오히려 더 잘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가능성은 학교에서 수많은 학생들을 만나면서 오히려 배우게 된 것이었다.


한순간도 책을 놓지 않는 것으로 위로를 받고, 스스로에게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성취를 매 순간 증명하려 하면서 질척거리며 지루하게 이어지는 시간을 고통스럽게 견디면서 심인성 질병을 몸에 달고 살았던... 그래서 대학시절에도 어떤 과목은 20번 이상을 반복해서 봤으면서도 시험 직전까지 스스로에게 핑계의 여지를 두지 않으려 끝까지 더 봐야 마음이 편했던 강박으로까지 이어졌다.

지금 생각하니 그만큼 고생하지 않았어도 이뤄낼 일들이었다. 아니 더 넉넉하게 이뤄낼 수도 있었다.


충전 없이 방전된 상태로 버티듯 시간을 보냈다. 완성에 대한 부질없는 집착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학생들에게, 딸들에게 더 너그러워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중간고사를 앞둔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너의 시작점을 인정하고 너가 할 수 있는 데부터 갈 수 있는 데까지만 가라고...

아이러니하게도 완성을 꿈꾸지 않아야 완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완전학습에 대한 욕심은 집착을 낳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애초에 완전학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차피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능력만큼만 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완전함을 위해 힘쓰는 노력과 시간은 다른 가능성을 포기한 헛발질일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70-80% 면 충분하고, 그 정도가 되지 않아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서 기회를 볼 수도 있다. 에너지와 시간을 덜 쓰면 목표지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올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그렇게 다시 돌아서 만난 그 자리에서 놀라운 일을 경험한다. 처음의 낯설음은 없다. 심지어 막막했던 것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즐겁게 여정을 이어가면 된다. 어차피 한 번에 완전함을 이뤘더라도 망각을 피해 갈 수 없으니 그렇게 시간 간격을 두고 반복을 해야 하는 숙명이라면 과학과 운명을 거스르는 듯한 무모함은 없어야 한다.


그게 평소 공부할 때 이뤄져야 시험이라는 실전에서 안 풀리는 문제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 할 수 있는 문제를 다 풀고 돌아오면, 의외로 쉽게 해결되기도 한다.

하나를 붙잡고 될 때까지 매달리는 것은 마땅히 칭찬받아야 할 불굴의 정신력이지만, 너무 고통스러운 길이다. 지쳐서 번아웃이 올 수 있고, 너무 애쓴 것만큼 좌절이나 포기도 빠를 수 있다.


아래 글은 위에서 소개한 황선우작가의 완벽주의에 대한 생각이다.


완벽주의 성향을 지닌 사람들에게 대체로 과정은 피곤하며 결과는 불만족스럽다. 너무 높은 기준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다 못해 완벽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중상 이상을 해내고 좋은 평가를 받지만 자기 성취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칭찬하면 자학으로 응수하는 습관은 주변 사람들을 무척 피곤하게 만든다. 완벽하지 않은 상황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심하게 느끼는 이들은 종종 ‘에너지 뱀파이어’이기도 하다. 힘들고 지친 기색을 지속적으로 노출하면서 “괜찮아”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 같은 말을 계속해주기를 기대하고, 반응하는 주변인의 에너지를 빨아먹는다. 그러니 본의 아니게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기대치를 적절히 컨트롤하고 만족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혹은 시작해야 하는데 부담감 때문에 몸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을 때 내가 떠올리는 글이 있다. 이경미 감독이 쓴 에세이 『잘 돼가? 무엇이든』(아르테, 2018)에 들어가 있는 일기 한 구절이다.


쓰레기를 쓰겠어!

라고 결심하니 써지긴 써진다.

매일 다짐해야겠다.

쓰레기를 쓰겠어!


팀을 이끄는 자리를 경험해 보면서 나도 알게 되었다. 물론 완성도가 중요하다. 하지만 관리자 입장에서는 100%를 해내려고 끝의 끝까지 붙들고 있다가 시한을 넘기는 사고를 치거나 스스로를 번아웃에 빠뜨리는 완벽주의자보다는 80% 정도의 결과물이라도 언제나 예측할 수 있을 때 안정적으로 내놓는 팀원과 일하는 게 훨씬 수월하다. 수월할 뿐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서로 결과에 대해 피드백하면서 일을 더 낫게 만들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자기 나름의 완벽주의에 대한 집착을 약간 내려놓는 일이, 결과적으로 더 큰 완벽함을 이루는 길이 되는 셈이다.


매사에 완벽하려 할 때 우리는 항상 어딘가는 부족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기만의 장점과 단점, 강점과 약점을 가진 채로도 온전히 해낼 수 있다고 용기를 낼 때 커다란 가능성과 마주할 수 있다. 완벽으로 가는 과정에는 반복이 필요하다. 완벽하지 않아도 팽개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결과물을 쌓아나가는 성실의 시간 말이다. 단 한 문제도 틀리지 않겠다는 목표가 아니라 적어도 과락을 맞는 과목은 없도록 하겠다는 자세가, 우리에게 계속해나갈 힘을 준다. 그러니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을 버리고 매일 다짐해 본다. 그래, 쓰레기라도 일단 쓰겠어!



완벽주의 못지않게 오히려 자신을 더 힘들게 할 수 있는 승부욕도 결국 지나치면 독이 된다. 오래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처음부터 모든 걸 갈아 넣을 수는 없는 거다. 모든 걸 갈아 넣는 건 즐거움을 포기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역량껏 즐기다 보면, “어쩌다 보니” 이루는 성취가 진짜 행복이다.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얻어지는 자기다움(자기만의 출발점과 속도)의 부산물인 거니까...

처음부터 잘해야 한다는 생각과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야 지금의 실패를 당당하게 받아들이며 성장할 것 같다. 무엇보다 멈추지 않을 수 있을 거니까.


정말 나의 생각을 대변하는 듯한 동일한 책에 담긴 작가의 이야기로 마무리하려 한다.



“누굴 이기려는 마음 대신 슬렁슬렁해야 오래 할 수가 있어.”


누굴 이기려는 마음. 내가 운동을 하는 동력은 그것이었을까? 그래서 마음대로 성과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혼자 지는 기분이 들었을까? 아무도 나와 승부를 겨룬 적이 없는데 멋대로 우월감에 도취되고 때론 또 열패감에 시달린다면, 그건 건강한 동력이 아니라 비뚤어진 호승심일 것이다. 시어도어 다이먼의 『배우는 법을 배우기』(민들레, 2017)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운동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동작을 익히거나 음계를 연주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이는 자신의 부적절한 반응과 감정, 태도에서 자유로워지는 법, 다시 말해 자신의 여러 모습들을 배우는 것···.” 내가 자유로워져야 하는 부적절한 태도가 무엇인지는 분명했다. 나는 이기고 지는 걸 떠나는 법, 잘하지 못하는 채로도 계속하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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