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으로도 실망으로도 멈추지 않길

4월 모의고사 후 고3 딸과 상담

by 청블리쌤

딸은 4월 모의고사도 부담을 느꼈다.

난 딸에게 이런 자세만 강조했다.

"그저 끝까지 시험에 충실하면 된다. 모의고사는 낮에 깨어서 집중하는 평상시의 모습의 반영인 것이니 최적의 컨디션을 관리하는 미션에 집중하렴. 포기할 문제는 빨리 미련없이 지나치고 다음 기회를 기약하는 전략적 시간관리를 연습한다고 생각해라. 수능에서 처음 해보는 실수가 없게, 모든 실수를 다 해봐도 된다. 모의고사는 성적이 아니라 실전 같은 연습이니 그 성취도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않도록 애써 보렴. 아빠는 혹 너가 찍은 거 다 맞고 그래서 지금 당장 감당할 수 없는 성적을 받아서 주춤하게 될까봐 오히려 더 걱정이다."


딸은 시험 후 영어시간에 집중력이 갈수록 딸렸다고 했다.

점수 자체보다 그게 더 궁금했다. 그런 문제의식은 이후의 해결을 의미하는 것이니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해줬다.

수학에서 딸은 처음으로 2등급을 받았다. 어려운 20번 주관식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에 대해 더 뿌듯해했다. 내게 열심히 푼 흔적을 보여주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정답 여부와 관계없이 칭찬받을 일이었다.


언젠가 친구가 고1 때 수학 성적이 이 정도면 갈수록 더 어려워지는데 학년 올라가서 시험 성적이 오른다는 보장이 없는 거 아니냐고 물은 적이 있다.

물론 대개 그 말은 맞다. 학년 올라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3학년이 되면 N수생이 몰려들고, 수능까지 가면 반수생까지 들어와서 원래 등급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객관적 현실이다.

그렇게 밀리지 않으려고 그렇게들 열심히 수학학원을 가고 열심히 문제를 많이 푸는 거다.

그러나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모의고사 성적을 위한 대비는 때로는 원리나 깊은 생각을 생략하기도 한다. 반복적인 연습으로 암기하다시피 자동화시키는 문제풀이로 승부를 거는 경우가 많다. 그런 방식이라면 어려워지는 난이도에 여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치열하게 대비해야하고, 자칫 조금이라도 밀리면 나중에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내가 수학전공은 아니지만 수능이라는 시험의 성격을 적용해보면, 모의고사는 내신시험처럼 가시적인 성취를 본질적인 실력향상으로 이룰 수 없다. 억지로 쥐어 짜내듯이 점수를 받기 위한 훈련을 하면, 엄청난 양의 암기라는 힘겨운 과정을 거쳐야 하고, 오히려 어렵지는 않더라도 원리 중심의 신유형이 나오면 오히려 손도 못 대는 기이한 현상을 마주하게 되기도 하는 거다.


원리부터 차근차근 실력을 쌓고, 생각의 깊이를 더하면 속도는 더디더라도 결국에는 더 쉽게, 아니 과정자체도 더 재미있고 쉽게 갈 수 있다.

내 큰 딸이 그랬고, 둘째 딸도 그런 길을 걷고 있다.

사실 그건 둘 다 학원을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당장의 점수와 성취에 연연하지 않는 기본기부터 수준에 맞는 자신만의 성장은, 학원이라는 시스템에서 기다려줄 수 없는 일인 거다. 가시적인 성과가 없으면 학원의 존립여부도 불투명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수능과 수능유형의 모의고사는 학년에 관계없이 숙성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평상시의 꾸준한 습관이 발휘가 되어 길고 오랫동안 준비해야 어느 순간 물이 끓어오르듯 역량이 가시적으로 발휘가 된다.

그래서 난 두 딸의 1, 2학년 모의고사 때의 처참한 수학성적에도 여유를 가졌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를 격려했다.


이번 모의고사 2등급은 그래서 의미가 있었다. 딸은 자신은 성취의 경험이 없어서 아빠의 격려도 때로는 잘 믿기지 않는다고 했는데, 가능성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런데도 난 그 성적을 유지해야한다는 부담은 버리라고 했다.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 그 이상의 의미는 부여하지 말라고 했고, 20번 문제를 다시 틀릴 수도 있다는 것도 받아들이라고 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면서도 기본부터 차근히 꾸준하게 그 길을 걸어서 숙성의 순간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딸에게 감격적인 마음을 칭찬으로 전했다. 노력의 결과를 확인할 수 없는 그 막막한 길을 멈추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정말 잘 한 거라고. 이후의 길도 설렘으로 그저 행복하게 가면 된다고.

주변 친구들을 보며, 평소 자신의 처참한 성적을 보면서도, 학원을 가야할 것 같다는 불안함을 이겨내 줘서 고맙다고.

다른 것보다 이제는 문제를 재미있게 풀 수 있는 수준이 되었으니 점수에 관계없이 그냥 즐겁게 그 길을 가라고...


그러나 국어, 영어는 망했다. 딸은 수학이 영어보다 잘 나오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웃었다.

그래서 서울대 간 제자 이야기를 재탕했다. 영어는 평소에 너무 잘 나와서 걱정도 안 하고 있다가 3학년 2학기 쯤에 불안해했던... 그러나 고1 때 영어멘토링을 하면서 한 번에 다 이루려하지 않고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하던 습관을 생각하면서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해서 수능에는 수학 한 문제 빼고는 다 맞아서 서울대를 간 학생의 사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면 당장의 성적에 급 좌절하고 불안해하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꾸준한 노력이 유의미한 성취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딸에게 물었다. 영어에 대한 시간투자는 어떠했냐고. 당연히 소홀했음이 드러났다.

당장 수학문제 풀리는 것에 환호하고, 사탐과목에서 진도를 나가면서 눈에 보이는 성취에 들떠있을 때쯤, 영어는 늘 후순위로 밀리는 게 당연하다. 지금 당장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기 때문이다.

영어멘토링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 중에는 실력향상 이상의 뭔가도 있다. 당장 설레거나, 성과로 이어지지 않아도 무심할 정도로 일상처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하는 습관이 가장 중요한 실력 외적 요인이다. 물론 그게 실력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래서 난 딸에게 영어가 망했다고 영어에 몰입하는 것도 말렸다. 조금 시간 투자를 늘리는 건 당연하지만, 다른 과목과의 균형을 바탕으로 한 일상은 유지되어야 하는 거니까.


그동안 정확성에 집중을 했으니, 이제는 기출문제를 유형별로 꾸준히 보면 된다고 했다. 너무 철저하게 분석하려고 머물지 말고, 독해의 전체 흐름과 정답으로 가는 맥을 잡으면 된다고 했고, 내용 자체의 흐름을 잡지 못할 경우는 정확성을 발휘해서 정답여부와 관계없이 독해내용에 집중해보라고 했다. 이왕이면 난이도 쉬운 문제부터, 다양한 유형으로... 시간을 쪼개서 조금씩... 그리고 단어의 의미가 확실치 않아도 문맥에서 해결하는 연습을 하고, 혹 그동안 열심히 했던 단어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는 상황이면 아빠의 영어단어장을 다시 복습하듯 훑어보기만 하라고... EBS는 간접연계니까 오히려 수능기출문제를 풀어보는 게 더 좋을 거라는 건 그전에도 말했줬던 조언이었다.


국어도 최근 들어 가장 부진한 성적을 받았다.

국어도 그렇고 영어도 그렇고, 오히려 지금쯤 그런 성적을 받은 건 공부의 우선순위가 자꾸 밀리는 영어와 국어에 대해 의식적으로 꾸준함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니 오히려 감사할 일이라고...

언제쯤 성적이 회복되고, 오르고.. 그건 따지지 말고 그냥 가던 길을 가자고...

국어도 지금은 <까라마조프 형제들>을 읽고 있는데, 그것만 다 완결하면 국어도 그동안 놓을 수 없었던 소설읽기는 좀 내려놓고 기출문제로 실전감각을 함께 올리는 방향으로 가자고 권해주었다.


사탐도 지난 번 20, 30점대에서 둘 다 40점대로 올라선 것도 본인에게는 완성의 느낌은 아니지만 희망을 준 것 같았다.

생활과 윤리는 확실히 공부량이 적고, 비문학독해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쌍윤(윤리 두 과목 선택)의 길에 만족하고 있다.


상담 끝에 불현 듯 이런 말을 딸에게 하게 되었다. “점점 더 멀어져가네”

"난 네가 집근처 지거국(지방거점국립대)에 가기를 바라는데, 넌 서울로 점점 더 멀어지는구나 흑흑.." 이러면서...

그래도 가는데까지 가는 딸의 선택과 매순간의 선택도 다 존중한다고 했다.


<수시와 정시 사이에서 고민하는 친구 이야기>

3학년 중간고사가 다가오는 시점에 정시파이터를 고민하는 친구들이 자꾸 생기는 모양이다. 딸의 친구 한 명도 고민하고 있다고...

수시로 갈지 정시로 갈지, 객관적인 데이터가 있으니 결정은 어렵지 않을 것 같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3학년 내신과,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수능성적을 생각하면 현시점의 데이터도 확실하지는 않으니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 같다.

내신과 달리 수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성취를 바라봐야 한다.

시험기간 외에도 꾸준하게 학습하는 습관 형성 여부도 중요하다.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해서 수능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가능성보다 이제까지 어떻게 준비해 왔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모의고사와 수능은 기본기로 다져서 평소의 꾸준한 학습습관으로 차츰 쌓아올린 기초공사 위에 더해져야 하기 때문에 당장 성적을 올리기 위한 노력만으로는 몇 달 후의 성적향상을 기약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정시파이터는 외롭고 힘들 길이다. 눈에 보이는 성취가 잘 드러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행여 성취를 했어도 떨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함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한 번씩 확인할 수 있는 작은 성취로 인한 설렘으로도 성적이 잘 오르지 않는다는 실망감으로도 멈추지 않는 일관된 꾸준함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3학년이 되어 그동안의 부족한 내신을 극복해보겠다는 생각은 너무 막연한 희망이었다는 사실도 현실을 마주하며 깨달을 수도 있다. 일단 3학년이 되어 수시를 노리는 학생들은 더 열심히 공부를 한다. 그리고 교과전형기준으로 3학년의 과목은 대개 국어(화작, 언매) 수능 선택과목, 사회탐구 수능과목을 제외하고는 거의 진로과목이어서 9등급 상대평가가 아닌 3단계 절대평가다. 그래서 대학마다 반영을 안 하거나 반영을 최소화하는 경우가 많아 3학년 와서 극적인 내신의 상승은 예전에 비해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런 상황이 아니라도 고3 학생들은 중간, 기말고사 전에 많이 불안하고 힘들어 한다. 드라마틱한 성적향상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른 학생들은 나보다 다들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나 홀로 완전 몰입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대략적인 내신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이 구체화되어 그걸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이른 시기이기도 하다.

수능은 아직 몇 달 더 남았고, 모의고사 성적이 그대로 수능성적이 되는 건 아니므로 내신으로 인한 수시보다는 더 큰 희망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게다가 수능대박의 가능성도 있는 거 아닌가? 그러나 수능대박은 멈추지 않은 자에게 어쩌다 한 번씩 주어지는 복권 같은 행운이다. 보통 수능대박은 남들이 어려워하는 유형의 문제가 나에게만 쉬울 경우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의외로 찍은 거 다 맞아서 수능대박 나는 경우는 드물다. 예를 들어 꾸준히 국어 비문학독서를 했는데, 자신만 자신있던 물리 관련 지문이 나와서 남들 다 틀릴 때 홀로 맞히면 완전 대박이다. 실제로 그 학생은 가능대학을 두 단계 위로 더 건너뛰어 진학했다. 그 경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기회였다.


보통은 중간, 기말고사 현실을 잠시 벗어나 희망을 꿈꾸다가, 9월 모의고사(22년도는 8월 말) 성적에 현타가 오면서 그냥 수시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경우든 아직 확정되지 않는 가능성을 둔 고민이지만... 그래서 너무 어렵다.

치열하게 꿈을 향해 다가가거나 꿈을 타협하는 중간 어딘가에서 만나게 되거나... 결국 고3 과정의 끝에서 구체화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 하루의 기회가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기 때문이다.

딸도 친구도 잘 이겨내길... 끝까지 꿈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길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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