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이 별안간 학교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한 명 나왔다. 의심증상이 있어 등교중지하고 검사를 받았는데 확진결과가 나온 거였다.
그 소식이 전해진 학교는 그야말로 비상사태였다. 해당 층의 교실에 있는 학생들은 오후의 선별검사 실시 안내를 하고 바로 귀가 조치가 취해졌다.
그리고 교사들은 바로 온라인수업으로 급전환해서 귀가한 학생들의 수업을 진행했다.
보건소에서 역학조사를 하고 검사대상이 결정된 후 오후에 정해진 시간에 귀가했던 학생들 모두가 학교에서 단체로 선별검사를 받았다. 동선이 겹쳤던 동학년 교사들도 모두 선별검사를 받았고, 검사결과에 관계없이 해당 학반에서 수업을 한 선생님들도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2주 자가격리통보를 받았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다행히 다음날 검사에 참여한 모든 학생과 교사가 음성판정을 받아 그 검사 결과 나온 다음날부터 교사들과 학생들은 정상 등교를 했다. 나를 포함한 자가격리 교사들은 예외였다.
보통 온라인수업이라하면 학생들이 집에 있고 교사가 학교에서 수업을 하는 형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가격리 교사들에게는 상상치 못했던 그 반대의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교사는 집에서 실시간으로 학생들에게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들은 등교해서 학반의 TV모니터로 방송수업처럼 수업을 들었다. 대답소리도 들리고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어느 정도의 실재감은 있었지만, 작은 화면으로 제한된 교실을 비추는 카메라의 영상으로 모든 학생들을 능동적으로 관리할 수 없다는 한계는 인정해야 했다.
난 방 안에 격리되었지만, 고등학생인 둘째 딸도 자가격리자 동거인이어서 같은 기간 등교중지가 되었다. 아이들 학교 보내야 한다고 혼자서 거소분리를 선택한 선생님도 계셨다. 이런 분들을 위해 시설을 알아봐 줄 수 있다는 보건소의 친절한 응대도 있었다고 한다. 난 그냥 집에 머물기로 했고, 둘째 딸도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난 평소 방콕을 더 선호하는 스타일이지만, 강제로 격리된다는 자발적이지 않은 상황은 이런 내게도 큰 부담이 되었다.
방 안에서 홀로 아내와 딸들과 한 번씩 영상통화를 하면서 식사를 하곤 했다. 그래도 직접 얼굴을 맞대는 친밀감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는 없었다. 기술은 대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대한 유사한 경험을 도와주는 것이지 인간적 친밀함을 완전히 대체하는 도구가 될 수는 없었다. 한 집에서 영상통화를 하면서 식사를 하는 건 장난으로라도 상상한 적이 없었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니 그 기술의 발전에 감탄하고 감사할 기회가 되기는 했다.
아무런 의심 증상이 없고 별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어떻게든 방역지침을 지키려고 애썼다.
뉴스에서 보던 자가격리 물품도 받았다. (아래 사진 외에 손소독제와 생수도 더 있었다)
담당공무원이 배정되어 하루에 두 번씩 자가진단을 앱으로 제출해야 했고, 필요한 사항에 대해 연락을 주고받았고, 격리해제 검사 등의 일정과 결과나 진행 상황 등에 대해 소통했다.
앱을 휴대폰에 깔아서 격리하는 지역을 벗어나는지도 체크가 되도록 하는 것 같았다. 지침을 어길시 격리 팔찌 같은 것을 하는 수도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난 나름 모범적인 자가격리생이었던 것 같다. 뭐든 지시대로 다 따랐다.
격리해제 검사를 받으러 가는 날, 격리 시작된 이후로 처음 집밖을 나섰다. 일상처럼 지나다니던 길이 낯선 세상처럼 달라 보였다. 우리는 가진 것에 대한 박탈의 순간에만 그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더 절절히 느끼는 것 같다.
이 상황에 처하고 나니 정말 수고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발생한 학교 지역의 보건소에서 개별연락을 저녁 때 받았다. 그리고 거주지 보건소에서도 다음 날 연락을 받았고, 구청에서도 주소 확인 및 상황에 대한 확인 연락을 받았고, 격리담당 공무원과도 연락을 했다. 자가격리자는 나 혼자만이 아닐 텐데 귀찮아하지 않고 진심을 다하는 느낌이 들었고,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일상을 지키시기 위해 애쓰고 계시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격리물품과 함께 도착한 격리통지서의 날짜가 하루 연장이 되어 있어 구청과 보건소에 연락해서 수정된 통지서를 새로 받았다. 역시 신속하고 친절한 일처리에 놀라며 마음이 훈훈해졌다.
나의 몸상태는 자가격리가 억울할 정도로 계속 몸이 멀쩡했지만 방역지침의 중요성을 계속 상기하며 현실을 받아들였다. 누군가는 충전의 시간이 될 거라고 위로를 했지만 충전이라기보다 방전의 느낌에 더 가까웠다. 혹 자가격리를 부러워하는 분이 있다면 생각도 하지 마시길...
자가격리 결정된 다음 날 중고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대면 강연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석 달이상을 고민하며 준비한 강연이라서 기대감도 컸고, 설렘도 있었다. 작년에 했던 강연의 호응이 좋아서 스스로도 감동하고 감격스러웠던 기억이 있었고, 이번 강연은 그 후속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강연 하루 전에 이런 일이 생겨 취소의 위기를 맞았다.
갑작스런 연락에 담당 수석선생님이 아쉬워하면서 이미 공문이 학교마다 다 나가서 연기하는 것보다는, 실시간 줌강연으로 바로 전환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하였다.
작년에는 선생님들의 뜨거운 반응이 느껴져서, 그 웃음과 몰입으로 내가 준비한 내용과 가진 역량의 200%를 발휘했었는데, 줌 연수는 현장감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건 물론, 강사의 입장에서는 현장의 반응을 살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
아무래도 현장감 없이 선생님들의 반응과 피드백 없이 진행되는 것이어서 강연 세 시간 내내 답답함을 안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못내 아쉬웠다.
이후 진행되었던 학생들과의 실시간 줌수업도 마찬가지였다.
난 혼자서 강의식으로 수업을 고집하는 스타일이어서 큰 차이가 없을 줄 알았는데, 현장에서 난 학생들의 반응 하나하나를 다 살피고 있었다는 걸 다시 실감했다.
피할 수 있다면 굳이 하지 않을 비대면 교육 상황인 것이다. 비대면 교육은 대면 교육을 보완하는 역할이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할 근거를 직접체험으로 얻었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교류를 해야 하는 존재다. 교육환경이든 사교환경이든...
코로나가 우리의 그런 절실한 존재론적 필요를 막지는 못할 거라는 확신도 들었다. 그만큼 우리는 대면 네트워크가 절실하니까 방법을 찾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오히려 메타버스가 더 부각되고 지리적, 문화적, 언어적 경계가 허물어지는 느낌이 들지만, 그럼에도 가까이 있는 얼굴을 맞대는 사람이 우리에겐 더 중요하다.
그리고 코로나가 아니면 알지 못했을, 각지에서 소리 소문 없이 묵묵하게 세상의 안전과 삶의 가치를 지키고 계신 많은 분들을 전화로 만나면서 참 감사한 마음이 넘쳤다.
이런 위기감이 아니라도 감사를 전하고 서로를 격려할 기회가 많아지기를, 덕분에 더불어 행복한 세상이 되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