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성실함이 불러오는 희망
코로나 시국으로 재조명 받은 고전소설입니다. 절망에 처한 인간들의 모습을 너무도 생생하고 개연성 있게 잘 그려내어 마치 코로나 전염병의 시국을 취재하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인간의 유한성과 해결되지 않은 재앙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있고, 인간의 의지로는 끝낼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현실적인 희망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전염병의 경고에 즉각 반응하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며 심각해지고 나서야 경각심을 갖게 되는지 작가는 이미 이때를 내다보기라도 한 듯이 이렇게 묘사합니다.
(참고로 작품의 페스트는 문자 그대로 전염병의 상황이기도 하지만, 작가는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나서 전쟁에 대한 상징적인 상황으로 페스트를 빗대어 그려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실제로 작가 노트에 전쟁에서부터 작품의 착상이 시작되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필경 너무나 어리석은 짓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법도 없는 것이다. 어리석음은 언제나 악착같은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늘 자기 생각만 하고 있지 않는다면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시민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네들 생각만 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휴머니스트들이었다. 즉 그들은 재앙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재앙이란 인간의 척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앙이 비현실적인 것이고 지나가는 악몽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재앙이 항상 지나가 버리는 것은 아니다. 악몽에서 악몽을 거듭하는 가운데 지나가 버리는 쪽은 사람들, 그것도 첫째로 휴머니스트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들이 딴 사람들보다 잘못이 더 많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겸손할 줄을 몰랐던 것뿐이다. 그래서 자기에게는 아직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고 믿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재앙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추측했던 것이다. 그들은 사업을 계속했고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고 제각기 의견을 지니고 있었다. 미래라든가 장소 이동이라든가 토론 같은 것을 금지해 버리는 페스트를 어떻게 그들이 상상인들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믿고 있었지만 재앙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일상을 유지하고 싶은 항상성으로 인해 부정적인 상황은 최대한 미뤄두는 인간의 심리와 본성이 반영되고 있는 것이지요. 미뤄두는 습성은 그 상황을 의식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재앙을 자신의 통제권 아래 둘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은 겸손함의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지적합니다.
그러고 보니 학교에서도 시험을 앞두고 겸손할 줄 아는 학생들이 미리 대비를 하여 재앙을 막고, 그 극단의 학생들은 막연한 낙관주의로 미뤄두기를 하거나, 눈앞에 성적이라는 재앙(?)을 확인하고 나서야 심각성을 의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코로나 시국에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자발적인 자가 격리를 하고 극도로 조심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사태가 심각해진 이후였습니다. 그리고 사태가 호전되기 시작하자 자체 종식을 선언한 듯 또 다른 낙관주의를 품게 되었죠.
작가는 페스트를 이렇게 상징적으로 제시하기도 합니다.
이번 이 유행병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있다면 당신들 편에 서서 그 병과 싸워야 한다는 것뿐입니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 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정직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코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리유.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은 더욱더 피곤한 일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피곤해 보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누구나가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니까요.
실제로 코로나 확진자들의 이해하지 못할 방심에 온 국민이 분노하였습니다. 전염병은 특히 무증상감염을 일으키는 코로나는 일반 병과는 달리 혼자 아픈 것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해이해지지 않아야만 이런 피해를 주지 않을 수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는 이런 페스트나 코로나 같은 독성이 내재되어 있는 겁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과 표정과 동선과 모든 활동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 그렇게 우리는 촘촘한 네트워크에 얽혀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전염병은 그걸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독성을 뿜고 살고 있었던 것인지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필연이라면, 작가는 건강, 청렴, 순결성 등 좋은 속성을 나누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국에 의료인들의 희생과 봉사에 온 국민이 감동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도 늘 자리를 지키시던 분들인데 위기의 상황에 좀 더 그분들의 존재감이 드러나고 있을 뿐이겠지요. 우리는 그들을 영웅이라고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지만, 실제 그분들은 영웅이 되기 위해 자리를 지키는 것은 아닐 겁니다.
예전에 이국종 교수의 인터뷰에서 그 힘든 중증외상센터의 고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저는 “사명감”이라는 고상한 단어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이국종 교수는 그저 직업이라서 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게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명감은 포장해서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일상으로 드러나는 그분들의 생활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의료인들의 그 땀과 얼굴에 붙은 반창고 등을 기억할 겁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의사 리유는 그 어려운 상황에 신도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헌신적일 수 있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정말이에요. 앞으로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지, 이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는 무엇이 올 것인지 나는 모릅니다. 당장에는 환자들이 있으니 그들을 고쳐 주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반성할 것이고, 또 나도 반성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긴급한 일은 그들을 고쳐 주는 것입니다. 나는 힘이 미치는 데까지 그들을 보호해 줄 것입니다. 그뿐이지요.
결국 거창한 명분이나 목표를 이루려는 거창한 큰 동작이 아니라 일상처럼 맞이하는 성실함이었습니다. 이 사회는 그러한 일상적인 성실함으로 존재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웅이 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진정한 영웅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진정한 영웅들은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절망과 좌절의 순간에 고통을 맞이하는 순간에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작가의 생각입니다.
잠시 동안 묵묵히 있던 의사는 몸을 약간 일으키면서 타루에게, 마음의 평화에 도달하기 위해서 걸어야 할 길이 어떤 것일지 생각해 본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 그건 공감이죠."
일상적인 성실함도 시작은 공감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함께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진심을 담아 행동하지 못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