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멋진 작품은 어떻게 탄생했을까>라는 부제가 붙은, 세계적 디자인 스쿨의 수장이자 수많은 디자이너와 예술가를 가르쳐 온 작가의 창작에 대한 실제적인 조언...
“아는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 알게 된다”
그리고 천재의 진실과 창작의 비밀에 관한 우리 시대 크리에이터 50인의 이야기...
나는 교사로서의 글쓰기에 초점을 두고 이 책을 보았다. 교사가 아니라도 우리는 누구나 글을 쓸 기회가 있으니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긴 하다. 일상적인 글쓰기의 반복에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나의 느낌과 생각을 먼저 얘기하고나서 책의 해당부분을 인용했다.
시작이 거창할 필요도 없고, 끝을 보장받는 시작일 필요도 없다. 그저 시작만 하면 자연스럽게 완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한 마디로도 뭔가를 시작할 용기와 힘을 얻게 된다.
위대한 작가조차도 결론을 정하지 않은 채로 시작하여 본인도 모르는 결과물에 놀란다는 이야기는, 더 준비해서 시작해야 하고, 뭔가 더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부담으로 망설이는 모든 이에게 큰 위로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글쓰기를 망설일 필요는 없다. 우리의 글은 모두를 만족시킬 문학작품이나 출판물일 필요도 없으니 그저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학생들의 공부도 이런 격려가 필요하다. 반드시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성적을 보장받아야 할 것처럼 헛된 희망을 주거나, 그런 성과만이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건 아이들에게 큰 상처를 남길 발상이다.
자격이 되거나 뭔가를 충분히 갖추었기 때문에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을 하고 나서야 성장이 시작되는 거다. 그리고 그 성장은 우리의 의도와 시간표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저 자연스럽게 순리에 맡기면 되는 거다.
껍데기가 깨지기 전에는 어떤 알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다. - T. S. 엘리엇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볼 수 있었다면, 글을 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 조앤 디디온
이 예술가들의 이야기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이들이 창조적인 활동과 발견, 만드는 것과 아는 것 사이를 연결 지었다는 점이었다. 칼더는 철사를 이용한 작업, 즉 창작 재료를 조작하는 물리적 행위를 통해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칼더는 ‘만들기 때문에 생각한다’. 에코는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줄거리의 핵심적인 부분을 알게 되었다. 그는 ‘쓰기 때문에 안다’. 해밀턴은 ‘알지 못하는’ 공간을 우선 구축하고, 만드는 활동 자체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발견한다. 그는 ‘만들기 때문에 발견한다’.
나는 작가로서, 책이 ‘저절로 쓰일’ 수 있다는 이야기에 경탄한다. 특히 소설가들은 “등장인물이 하고 싶은 말을 제게 들려줬어요”라고 말하곤 한다. 그 말의 뜻은 알겠다. 나는 끙끙대며 글을 쓰는 스타일이지만, 가끔은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했던 최상의 ‘몰입’ 상태에서 순식간에 많은 글을 써내는 강렬한 순간을 경험하기도 했다. 때로는 조앤 디디온이 말했던 것처럼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쓰지 않았다면 모호하게 남았을 내면의 어떤 부분을 들여다볼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만난 창작자 대다수는 자기 작품을 비전의 산물이라 말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만드는 과정에서 진화해나간 과정의 산물로 보았다. 그들은 창조성을 일깨우는 창작 과정의 놀라운 힘과, 만들면서 알게 되었던 각자의 경험을 생생히 들려주었다.
『캘빈과 홉스』로 유명한 만화가 빌 워터슨은 이렇게 말했다. “저처럼 창작 활동에 몸담은 사람들 대부분은 도착한 다음에야 목적지가 어딘지 알게 되죠.”
나와 창조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들은 모두 만들면서 알게 된다는 개념을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예술가나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창작 활동을 직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들도 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다양한 발견과 배움에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또한 이 개념은 삶이나 정신적 성장과도 연결되며, 아주 개인적인 통찰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만들면서 알게 된다는 개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대부분은 이런 식으로 답했다. “맞네요. 정말 그랬어요. 제 작품과 인생은 만들면서 알게 되는 과정이었어요. 여태껏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게 신기하네요.”
책을 쓰기 시작할 때 우리는 모두 아마추어다.
그러나 차츰 한 문장 한 문장 써나가면, 책은 늘 그렇듯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
문장 하나하나가 모두 그 과정에서 드러난다. - 필립 로스
어떤 시인도 시를 쓰기 전까지는 어떤 시가 나올지 알지 못한다. - W. H. 오든
무엇을 그릴 것인지 알려면, 그리기를 시작해야 한다. - 파블로 피카소
글쓰기와 같은 창작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자아의 변화와 성장을 마주한다. 성장을 하고 나서야 그걸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공부하기 전 학습계획을 미리 세우면 삶이 달라진다. 100% 실행하지 못해도 움직이고 행동할 방향과 동력을 얻는다.
어떤 학생들은 학교에서 내게 플래너 검사를 받기 위해 공부한 내용을 기억해 내서 적어내기도 했다. 학습을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는 되겠지만 보다 적극적인 삶의 변화나 학습태도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어느 정도의 구속을 통해서만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넘어선 변화를 이룰 수 있다.
글쓰기는 아래의 인용 구절처럼 상상 이상의 변화를 가져다준다. 그러니 역시 쓰기를 망설일 이유는 없다.
작가이자 교사인 파커 파머는 이렇게 설명했다. “글쓰기는 내가 나 자신과 대화할 때 드러나는 내면의 기록이죠. 상담 예약도 필요 없고, 돈을 낼 필요도 없는 일종의 심리 상담이에요.” 이번 장의 도입부에서 인용했던 리처드 휴고는 이런 관점을 더욱 확장하여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는 당신의 내면을 밝히고, 더 나아가 창조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늘 한정적이다. 그게 오히려 우리에게 영감을 주기도 한다. 시험문제를 마감이 다가와야 제대로 출제하시던 선배님 한 분은 자신의 출제방식에 대해 이렇게 단순화해서 말씀해 주셨다. “마감이 영감” 라임까지 들어맞는 멋진 표현이다.
시간뿐 아니라 우리 삶의 여러 가지 제한이 우리에게 창작의 절실함과 다양한 변화를 드러낼 기회를 준다.
거의 모든 예술가는 ‘정해진 시간’이라는 제한 속에서 활동한다는 걸 이야기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이러한 제약은 작품의 한계가 되기도 하지만, 창작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예술가 본인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창작자는 드넓은 창조의 바다를 헤매며 최종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좁고 험한 길을 제시간 안에 완주해야 한다.
작품은 권태, 만족, 제출의 필요, 죽음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절대 완성되지 않는다. 창작자에게 작품의 현재 상태란 줄곧 변화하는 자기 내면의 일부를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퇴고하는 것은 글을 쓰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우리는 뭔가를 더하는 것에 비해 버리는 것을 망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업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교재연구를 하면서 쏟아부은 에너지와 시간을 생각하면 준비한 모든 것을 수업시간에 활용하고, 이번 시간 아니면 다음 시간에라도 써먹어야 하지만... 교사의 과욕은 학생들의 좌절감을 부른다. 어차피 버릴 거라는 생각으로 딱 가르칠 것만 준비해서는 안 된다. 작품을 만드는 것이나 가르치는 것은(난 수업을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시간과 노력의 과잉과 낭비로만 완성된다.
다양한 방식으로 원고를 여러 번 읽으면서, 그는 문장을 명료하게 고치고, 이야기에 자의식 과잉이나 사각지대가 있지는 않은지 확인한다. “‘소중한 것을 죽여라kill-your-darlings.’ 제가 퇴고할 때 늘 되새기는 말이죠. 습관적으로 즐겨 쓰는 표현을 의식하고 없애기 위해서요.
벤더의 얘길 듣자 디 프리스코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작가의 일에는 일종의 용기가 필요한데, 그건 버릴 줄 아는 힘에서 나온다”라고 했다. 실제로 나와 인터뷰했던 많은 작가가 글을 덜어내는 과정에서 통찰을 얻는다고 했다.
“글 쓰는 건 좋지만 쓴 글을 고치는 건 싫다고 하는 이들도 있죠.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사실 글쓰기와 퇴고는 똑같거든요. 처음에는 백지 위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죠. 저는 한 문장을 쓰고 나서, ‘이건 좀 아닌데. 처음부터 다시 써야겠다’라고 생각해요. 제게 글쓰기는 뭔가를 써낼 때까지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하면서 나아가는 과정이에요. 수정은 끝나지 않는 작업이죠. 그러나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고치기를 멈추고 마침표를 찍어야 해요. 마감이나 다른 현실적인 제한이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제 작품은 모두 미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의 삶은 실패와 시행착오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영점 조정의 과정이 없이는 절대 어떤 것이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실패할 각오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공도 없다는 말은 식상한 문구로 끝나지 않는다.
리더십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이끌어보는 것이다. 결혼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결혼하는 것이다. 그 일이 내게 맞는지 알아볼 유일한 방법은 오랜 기간 직접 일을 해보는 것이다. 모든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결정을 유보하고 맴돌기만 한다면 삶이 이미 지나가버렸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될 것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산다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배움은 교만함과는 사실상 반의어다. 겸손한 자세가 아니면 절대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교사에게도 해당된다. 교사도 겸손한 배움의 자세로 끊임없이 성장하지 않으면 학생들을 제대로 교육할 수 없다. 늘 자신의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자극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큼 배움이 일어나며, 그 배움은 가르침으로 이어진다.
와인먼은 교사로서의 헌신을 이야기했다. 그는 좋은 교육을 지향한다면 ‘교사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단호히 설명했다.
“배우는 데 옳고 그른 방법이란 건 없어요. 사람들은 모두 달라서, 각자에게 맞는 방법과 수단이 필요하지요.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학생이 스스로 가진 마음속 평가, 즉 자기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고 배울 수 있게 해줘야 하죠. 이게 교사로서의 제 가치관이에요.”
가르침과 배움에 대한 가치관은 와인먼이 사업에서 방향을 잃지 않도록 길을 밝혀주는 북극성이자 지침이었다. 그렇다면 그에게 사업이라는 불확실한 여정을 시작하게 한 진입점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첨단기술을 어떻게 온라인 교육에 활용할 수 있을까?’, ‘기술을 어떻게 대중화할 것인가?’라는 질문들이었다. 와인먼은 사업 초창기를 떠올리며 설명했다.
“제 생각은 사람들의 마음에 반향을 일으켰죠. 아주 참신한 철학이었다고 생각해요. 더 많이 포용하고, 양성하고, 허용하는 방식의 접근이었지요. 이러한 사업 철학의 기반은 ‘아직’ 모르는 이들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배움을 나누겠다는 교육학에 대한 제 믿음이었어요. 린다닷컴의 변치 않는 북극성이요.”
그리고 이 책의 결론 부분에 이르러서 이런 대목을 만날 수 있다.
불확실함으로 창조해가고 성장해가는 인생의 이야기다.
이 책에서 소개된 많은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불확실할 때 창조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사실이다. 창작자는 불확실함의 공간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자신이 배우고 익힌 창작 과정을 통해 발견에 이르게 되며, 이를 통해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모호하여 알지 못했던 삶의 여러 측면을 이해하게 된다.
실행하고 이해한다. 불확실성에 들어가 발견을 이루고 다양한 재료와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외연을 넓힌다. 즉흥적으로 창작하며 앎에 이른다. 이 모든 과정은 인간의 창의성이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거의 모든 것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우리는 인생을 만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차차 삶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