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같은 자녀의 독립

by 청블리쌤

자녀가 성인이 된다는 것은 대학생이 되는 시기와 맞물린다. 대구는 지역의 특성상 더 큰 꿈을 실현하려는 학생들은 집을 떠나 수도권으로 유학을 간다.

그러나 예전에는 성적이 좋고 충분히 노력을 많이 했던 여학생들 중에 집을 떠나보내지 않으려는 부모님의 강권으로 지방거점대학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사범대학 컷이 전체적으로 다 떨어졌지만, 90년대 그 당시만 해도 우리 과에 전교 1등 출신 여학생들이 꽤 많았다. 선택에 따라서는 서울대에 진학이 가능하기도 했다.

난 딸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딸과 심리적 독립만 보장하며 집에서 함께 살고 싶었다. 그래서 성적이 잘 안 나오던 과정에서도 기다려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역의 대학에 진학을 해서 함께 사는 경우라도 고등학교 때와는 달라진 심리적 독립을 이루는 과정에서 상상 이상의 갈등을 겪기도 한다는 걸 졸업한 제자들을 통해서도 확인하긴 했다.

그런데도 난 드라마에서 직장을 다니는 딸과 함께 사는 부모들이 내심 부러웠다.

한밤중에 전해진 딸의 갑작스러운 논술 추가 합격 소식은 큰 기쁨과 행복이었지만, 마음 한편으로 딸의 물리적인 독립에 대한 슬픔도 함께 느껴졌다. 괜히 딸을 억지로 일으켜서 논술을 응시하러 서울에 갔던 것조차 후회할지도 모르겠다는 묘한 감정이었다.

그해 갑자기 터진 코로나로 인해 입학 때부터 한 학기만 집에서 비대면으로 대학생활하며 물리적 독립을 유예 받았지만, 2학기에 대학으로 떠나게 된 그 아침에 자고 있는 딸의 모습을 보며 자전거로 출근을 하는 나의 눈가에는 멈추기 힘든 눈물의 폭포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딸을 계속 볼 수 있고 연락도 하며 지내겠지만, 이제부터 딸이 이 집에 있다는 것은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잠시 들르러 오는 것일 테니...

고등학교 3박 4일 수학여행을 떠났을 때 그 기간에도 딸이 보고 싶고 너무 그리워서, 수학여행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바라면서도 빨리 돌아오기를 바랐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어쩌다 한 번씩 집에 내려와서 3박 4일도 채우지 못하고 짧은 시간만 머물다 다시 올라가는 딸의 모습 자체가 너무 낯설기도 하다.

어쩌다 한 번씩 내려와서 대화를 해도 온전히 아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전적으로 동감을 하던 딸의 모습은 아님을 느끼면서 심리적 독립을 실감하게 되기도 한다.

함께 살고 있어도 그런 예전과는 다를 거리감은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독립을 이뤄가는 증거일 것이다.

자녀가 독립을 하면 부모의 짝사랑은 더 짙어진다. 빈둥지증후군이라는 흔한 용어를 소환하지 않더라도,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 컸을수록 그 허전함은 더 깊어진다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부모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연락이나 소통 빈도의 불일치도 가슴 아프다.

그렇게 아이의 삶에서 밀려나는 느낌까지 든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건 다소의 경제적 지원뿐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더 서글퍼지기도 한다.

큰 딸은 자기가 알바를 하면서 생활비를 거의 충당하고 있다.

그래서 더 가슴 아프다. 딸이 공부만 할 유형의 학생은 아니지만, 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즐거운 일만 하기도 모자란 대학생활을 보장해 줄 수 없어 부모로서 너무 미안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더 자주 연락하고, 소통하기를 바라는 건 부모만의 욕심일 것이다.

서로 행로가 갈라진 것 같은 각자의 삶의 여정에서 그저 행복을 빌어주고 마음으로 응원해 주는 것, 그리고 너무 마음 쓰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 부모의 숙제가 되었다.

부모도 자신들의 일상에 더 충실하고, 일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의미를 찾으며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자녀의 독립을 돕는 일이다.

이미 그 독립은 사춘기 때부터 시작되었고, 그로 인해 부모도 상처를 많이 받아 가면서 독립시키는 것을 준비해왔지만 여전히 너무 어렵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이어지는 한 영영 적응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자녀와의 관계에서 그때가 아니면 해줄 수 없는 일들을 부모는 이뤄가야 한다. 자녀는 늘 오늘의 모습으로 머물지 않을 것이니, 그저 지금 이 순간에 해줄 수 있는 것들을 해주고, 아이들의 행복을 살펴주기를... 절대 미뤄두지 않기를, 후배 부모님들께 당부하고 싶다.

물론 과거를 돌아보며 지금 이 순간 혹 있을 수 있는 자녀와의 갈등에서 “아, 옛날이여!”라는 마음과 행동과 말로 후회를 만들어내는 일도 없어야 할 것 같다.

지금 이 순간도 이내 돌이킬 수 없는 추억 같은 과거가 될 것이니...

확실한 건 오늘의 자녀는 어제의 자녀와는 다르고 내일의 자녀와도 달라질 것이고, 그에 따라 부모의 역할도 계속 달라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내 딸이고, 그 사랑은 변함이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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