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제목의 흡입력으로 책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멋진 강의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중 글쓰기와 독서 두 분야로 나누어 인상적인 구절에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려 한다.
<글쓰기에 대해>
한 호흡에 읽기 어려운 문장은 분리하고 입에 붙지 않는 어색한 조사는 수정하거나 삭제한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접속사가 필요하다는 선입견을 버리면 간결해지고 힘이 붙는다. 선문답 같은 대명사, 읽는 사람 보고 어쩌라는 건지 알 수 없는 쉼표나 말줄임표 등의 부호는 없앤다. 그 자리를 무엇으로 대신할지 고민할 필요는 있다.
구조가 같은 문장이 연달아 반복되는 것도 피할 수 있다면 좋다. 같은 구조의 문장이 이어지면 지루하다.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같은 구조의 문장을 점층적으로 쌓는 경우는 예외다.
그러나 지금까지 말한 전부를 합쳐도 이것 하나보다 덜 중요하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다. 혼자 쓰거나 말하고 있어도 교감해야 한다. 상대의 눈을 바라보고 건네는 느낌이라면 좋겠다. 강력한 지지를 호소하느라 이글거리는 눈빛이든, 안부를 염려하며 은은히 바라보는 눈길이든, 호기심과 상상을 자극시키는 개구쟁이 같은 눈길이든, 나와 당신 사이에 마음의 길을 내야 한다. 길을 내고 싶은 욕심이 앞서 억지를 부리거나 무리하면 안 된다. 그래서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는 힘을 주어야 하면서도 힘을 빼야 하는 모순이 늘 발생하며 이 모순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경험과 훈련에 달려 있다.
글쓰기의 기본기에 대해서는 얘기를 더 해봐야 잔소리다. 그러나 정작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방향을 잡아서 훈련하는지를 아는 것은 노력이 성과로 이어지게 하는 티켓과도 같다. 이런 책들을 보면서 동기유발을 했다면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같은 책을 보면서 구체적인 지침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인용구 마지막 문장처럼 경험과 훈련이다.
그리고 상대를 존중하며 글쓰기... 당장 눈앞에 없어도 누군가 이 글을 읽을 거라는 목적의식이 있다면, 그렇게 편지를 쓰는 것 같은 존재감이 글의 흐름과 내용과 진심의 전달 여부 등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글감에 관련한 정보나 지식 등의 자료를 원고 분량 대비 최소 다섯 배 이상 확보하고 검토를 마쳤으며 생각을 정리해 전체 흐름과 방향을 결정했을 때 달성할 수 있다. 지식과 사유, 판단. 셋 중 하나만 부족해도 문장에 갇혀 뭉그적거린다.
자료를 찾는 이유는 당신들 모두를 대변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싶어서다. 그럴 만한 타당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고 싶어서다. 찾은 자료는 정작 10분의 1도 원고에 활용하지 않는다. 그래도 자격을 갖추지 못한 채 모니터 앞에 앉으면 문장을 밀고 나가는 힘이 떨어지면서 스스로 부끄러워진다. 그 감지기가 내게는 속도다.
요점은 자료나 속도가 아니라 자격이다. 당신들 모두를 대변할 수 있는 자격을 가졌노라는 자신감 없이 —설령 그것이 착각일지라도— 글을 완성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 자격은 남이 내게 줄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 나만이 내게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냥 아무런 자료조사나 외부의 자극 없이 자유롭게 써 내려가는 글은 나 혼자 보는 일기에 가깝다고 작가는 말한다.
글을 쓰는 것은 ‘마중물’ 같은 외부 자극으로부터 시작된다. 나의 경우 교사로서의 현장감과 직간접 체험으로 쓰는 교육노트, 책을 읽으면서 쓰는 독서노트가 글쓰기의 주요 테마다. 실제로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하는 상담, 편지글도 결국 있과 학생들에게 쓰는 편지글도 교사로서의 축적된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영어교사로서 전문성을 발휘하는 정보 전달 위주의 글을 쓴다. 이 경우도 나의 기존 지식이 바탕이 되긴 하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자료수집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고, 공개적인 글이기 때문에 나름 검증의 과정까지 거친다.
소설가도 소설을 쓰기 위해 삶의 체험을 하거나 전집을 읽으면서 겨우 이야기의 틀을 잡고, 몇 페이지를 채운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자료조사나 평소의 공부가 저자의 말대로 당장은 10분의 1만 쓰인다고 해도, 자신의 직간접 체험의 데이터베이스에는 그 흔적을 남기며 저장된다. 나중에 다른 글을 쓸 때 활용될 수 있다.
글은 이미 공부와 경험을 끝낸 내용을 쓰기도 하지만, 쓰면서 공부와 경험을 시작하기도 한다. 즉, 성장했기 때문에도 글을 쓰지만, 글을 쓰면서 더 많이 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글은 나의 성장의 단면이다.
모든 배움이 다 글로 표현되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 아래 인용구처럼 여백의 미가 때로는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써야 할 말을 아는 것이 중요하지만 쓰지 않아도 될 말을 아는 것은 더 중요하다. 더불어 전하고 싶은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자기검열을 뛰어넘어 과감하게 변칙과 파격을 시도하는 모험이 필요하다.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와 칼럼 등이 문장의 기본기를 보여준다면 노랫말은 문장의 변칙을 들려준다. 내가 노랫말에서 배운 미덕은 ‘생략’이다. 없어도 되는 말은 쓰지 않는다는 헤밍웨이의 하드보일드 식 글쓰기와 다른 개념이다. 의도적으로 생략해서 상상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수신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생략했는데도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은 앞서 썼듯 내 심정이 네 심정이고 네 심정이 내 심정인 보편적 공감대, 내 심정과 네 심정의 보폭이 맞을 때 나온다. 간혹 내 심정이 네 심정보다 앞서 나가는 바람에 뒤에 남은 네 심정이 내 심정의 뒤통수를 멀거니 쳐다보게 만들면 곤란하다.
필요한 말까지 생략하면 선문답처럼 난해해진다. 어떤 어휘를 끝까지 남기고, 어떤 어휘를 과감하게 생략해 수신자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보내야 할지 선택해야 한다. 어휘의 뜻과 맛을 파악하고 있다면 취사선택하기가 보다 수월할 것이다.
위 인용구는 저자가 노래 가사를 언급한 내용이다. 생략과 여백은 독자에게 더 많은 생각과 여운으로 초대한다. 작가가 때로 불친절하게 보일 정도로 말을 줄이면 독자가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열린 결말은 그 끝을 생략하면서 보는 사람의 허탈함과 분노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보는 이들이 생각하는 참여를 강요한다.
<독서에 대해>
흥미로운 사실은 독서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한 답이다. 2년 전만 해도 ‘시간이 없어서’라고 대답한 성인이 가장 많았으나 이번에는 ‘책 이외 다른 콘텐츠 이용’이라고 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많은 이들이 예견한 바다.
2020년 현재, 인터넷과 스마트폰만큼 재미있는 것은 없어 보인다. 정치와 사회, 산업, 문화 등의 분야뿐 아니라 개인의 정서에 끼치는 영향력도 무한해서 금지하고 절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알아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서사와 구성, 어휘력과 문장력 등을 배울 수 있는 교재로 가장 적합하지 않은 것을 꼽으라면 역시 SNS와 동영상 플랫폼일 수밖에 없다. 태생이 반응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반응은 ‘첫인상을 결정하는 시간은 3초’와 흡사하다. 두뇌를 거친 사고가 아니라 시각과 청각 등 외부 자극에 따른 사고로 발생한다. 그러니 자극을 줄 수 있는 흥미롭고 핵심적인 내용만 골라 연결하는 구성이 적당하다. 절정을 향해 서서히 달아오르거나 끓어오른 후에 긴 여운을 남기는 등의 서사는 필요 없다. 필요한 것도 남는 것도 오직 ‘반응’뿐이다.
책은 남의 관점이다. 관점은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할 때 그 사람이 보고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 또는 처지를 이른다. 어떤 관점이냐는 무엇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이기도 한데 의미가 없다 하는 것도 관점이며 열두 명이 모였을 때 열세 가지 관점이 나올 수 있다. 옳고 그름으로 재단하려 들면 책의 도움을 받아 자기 내면으로 입장하는 티켓을 받기 힘들다.
사유, 추론, 음미, 상상, 사색 등으로 내면을 수시로 소반다듬이해 올바른 관점을 가진 사람은 왜곡된 보도나 SNS, 인터넷에 노출되어도 크게 타격받지 않고 가벼이 휩쓸리지 않는다. 물론 그에게도 어느 날 새벽 세 시쯤 채권자가 찾아올 테지만 영혼을 바스러트리는 위험으로까지 몰리진 않을 것이다. 과거 내면에 집중한 시간들이 오늘 나에게 주는 혜택이다.
독서는 차차 영상매체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느낌이 들수록 더 가치를 발하는 삶의 필연적 성장 도구다. 독서를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관점도 갖게 되고, 다른 이들의 삶을 함께 살아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