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기가 보장하는 행복(Feat. 드라마 나빌레라)

by 청블리쌤


요즘 아내가 추천해 준 <나빌레라>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행복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괜찮아. 아직 늦지 않았어. 잘 될 거야!!!”


드라마를 보면서 진심으로 함께 아파하는 유연한 공감의 마음과 삶의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따뜻한 마음이 이런 위로의 말에 담겨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어른의 타이밍과 생각을 강요하지 않으며, 매번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당장 일으켜 세워주려 하지도 않으며, 젊은이들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응원하는 기다림도 담겼으면 좋겠습니다.


공감하고 응원한다는 건 함께 감정노동을 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대단한 결단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지만 그 나누는 삶의 무게가 결국 삶의 의미만큼의 크기일 듯합니다.


이 드라마는 통념과 일반화에 가려져 있는 행복에 대해 말하고 있어서 공감하며 보는 이들에게 힐링을 선물합니다. 그 행복은 정해 놓은 기준에 의해 줄 세워 놓고 판단하는 것과는 거리를 둡니다.

결론을 정해 놓지 않은 자신만의 행복 걸음... 그것은 남들과 비교하여 느끼는 속도와 조급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학교에서 저는 상처받는 아이들을 많이 봅니다. 공부를 안 하면서 무력감 속에 힘겨워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정말 공부를 잘하고 싶고 욕심도 나서 열심히 하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며 좌절하고 아파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더 가슴 아픈 일은 왜 잘 안 되는지를 스스로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변수가 더 많아지고 공부량이 훨씬 많아져서 몇 가지 이유만으로 단순화해서 원인을 파악하기 힘든 고등학교가 아닌 중학교에서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니까 좀 더 그 이유가 명확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혼자서 학습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서는 학원에만 모든 것을 맡기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그 배경에 부모님들의 불안함에 큰 지분이 있습니다. 학원을 안 보내며 공부시키는 건 엄청난 용기와 도를 닦는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영어의 경우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교과서를 암기합니다.

수업 시간에 복습용으로 본문 해석 연습 학습지를 나눠주고 지켜보았습니다. 신기할 정도로 대다수의 학생들이 해석을 정확하게 적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개별적으로 문장구조를 물어보았습니다.

이 단어는 어떤 식으로 역할을 하는 거니? 여기서부터 어디까지 의미 단락으로 끊어야 하니?


정작 문장에서의 각 단어와 구와 절의 역할이 무엇이고 해석을 어떻게 이어가야 하는지 그러니까 문장 구조에 대해서는 전혀 감이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해석은 정확한 걸 보니 그냥 해석을 외운 것이었습니다.

좀 더 여유가 되고 역량이 되면 영어 본문도 암기할 때까지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영어 문장을 암기하는 학생들 중에 주어가 뭐고, 문장의 뼈대가 뭔지에 대해 전혀 감도 없고, 심지어 개별 단어의 정확한 의미조차 모르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장도 나름대로 수식 등의 역할을 표시하면서 분석해보라고 하니까 to 부정사, 주격 관계대명사, 사역동사.. 이런 식으로 학원에서 배웠던 문법용어 위주로 적어나가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일단 문법용어를 알고 문법지식을 익히면 영어를 잘하게 된다는 착각을 다들 가지고 있었고, 단어만 대충 끼워 맞춰서 무슨 말인지 알면 그걸로 다 된 줄 아는 경우는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가서 문장이 길어지고, 단어가 많아지고, 독해도 추상적이고 학구적이 되면 아이들은 그 수준을 절대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거였습니다.

암기가 가능했던 중학교 범위 시험공부 방법을 고등학교에서는 적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서술형 문제도 풀어야 하고 더 어려운 지문에 도전해야 하는 현실은 암담하기까지 합니다.


아이들은 당장 중학교 수준의 본문을 보면서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할지 모르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저 암기하고 문제만 많이 풀고, 활용도가 전혀 없는 문법 지식을 끝없이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야 불안하지 않고 마음이 더 편해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다른 학생들의 외적 열심을 지켜보면서 더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더 큰 재앙은 그렇게 해서 행여나 점수가 잘 나올 때 시작됩니다. 자신의 방법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개선의 기회를 박탈당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문제 풀이보다 암기보다 원리를 따져서 기본부터 차근차근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단어부터, 문장 구조에 따른 정확한 해석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 사역동사라는 엉터리 용어로 문법을 지식으로 가두지 말고 문장 내에서 어떤 식으로 활용되어 의미를 생성하는지를 이해하고 활용하도록 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렇게 해서 문장의 짜임새를 익히게 되면 단어가 바뀌어도 문장이 길어져도 단어학습만 지속적으로 이뤄지면 해석은 물론 서술형 대비도 된다고... 그러나 아이들은 제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당장 성과가 보이지도 않고 재미없는 기본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가 늘 주장하는 기본기를 위한 노력은 뭔가 특별한 성과를 거두기에는 너무 평범하고 쉬워보이기 때문에, 그보다 더 복잡하고 거창하고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수준에 맞게 재미있게 하는 건 사치스럽고, 보다 더 어렵고 힘겹게 뭔가를 해야만 당장 마음의 불암감을 덜어줄 거라는 부담을 갖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사회 시스템으로부터 강요받은 성취주의에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결과가 좋아야 과정도 보상을 받는다는 느낌이 따릅니다. 어른들도 과정보다 눈에 보이는 성과나 성취에만 칭찬을 합니다. 그러나 혹 칭찬을 받은 아이들도 이후에 그 칭찬의 자격을 지속시켜야한다는 더 큰 불안감으로 공부의 즐거움을 박탈당합니다. 성취나 성과보다 노력과 과정에만 칭찬을 해야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결과만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이 따르면 늘 성과를 내기 위한 기준에 부합한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늘 불안하고 초조해하게 되고,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시기하거나 질투하면서 스스로 기가 죽기도 하고, 자신의 수준을 몰라서 불안하고 소심해지거나, 자신의 수준을 억지로 확신하려고 자랑하고 으스대기도 합니다. 그러다 혹 목표를 성취하게 되었더라도 허탈하기까지 하며 그걸 지켜가야한다는 더 큰 부담감에 더 힘들어 하기도 합니다. 한 순간의 즐거움을 추구하며 일상의 매 소중한 순간을 놓치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사와 부모와 어른들은 아이들이 행복을 지켜줘야합니다. 매순간 즐거움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그래서 행복할 수 있는 교육은 각자 다른 자신의 수준을 인정하고 자신만의 속도와 역량으로 과정 중에 의미를 찾도록 해주는 일이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의 비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소소한 성취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이 드라마에 그런 행복을 시작하게 해주는 기본기와 관련된 장면이 있었습니다.


좀 조급해하시는 것 같아서요.

혹시 발레를 빨리 배우고 싶으세요? 고난도 동작들도 척척해내고 싶으신 거구요?

(마음은 그런데 아직은 힘드네요)

그래서 혹시... 발레를 야매로 배우고 싶으신 거예요?

지금 하고 계시는 기본동작이 별거 아닌 거 같으세요?

저는 7살 때 발레를 시작해서 30년간 해왔는데

어느 갑자기 백조의 호수를 하고 돈키호테를 하고 해적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에요.

단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매일같이 기본 클래스를 했기 때문에 그 작품들이 가능했던 거죠.

지금 어르신이 하고 계신 기본동작들이요.

그러니까 야매를 원하시면 그만 두세요.


뭔가 기본부터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당장 성과가 보이는 것 같아도 그건 타협이고 야매입니다.

통증이 있는데 원인 치료는 하지 않고 증상만 완화시키는 임시로 모면하는 일회적인 이벤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오히려 기본기를 쌓아가기 가장 좋은 단계와 수준에서 기본기를 다 놓치고 고등학교에 가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헤매게 되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생생하게 그려져서 제가 더 조급함과 싸움을 해야 할 지경입니다.



보통은 한 번 시험의 좌절로 기회를 얻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볼 기회가 되기 때문이죠. 보통 그런 좌절을 겪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아무리 훌륭한 조언도 절대 먹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좌절 속에서 원인을 학원이나 문제가 이상했다는 등의 외적인 것에서 찾는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기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사는 늘 자신이 확신하고 있는 최선의 가치가 있는 교육을 실행하는 과정보다 학생들이 절심함으로 시작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고 때로는 불가능하기까지 하다는 걸 느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늘 학생들 곁에서 대기하며 기다립니다.


저는 일단 중간고사가 끝난 후를 숨죽여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아픔을 함께 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마음의 준비와, 용기가 부족해 사소한 몸짓으로 도움을 청하는 아이들까지도 놓칠 수 없다는 긴장감으로 말이지요.

제가 먼저 다가가서 도움을 억지로 줄 수는 없으니 이 시점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여 손을 내밀 때 거부당하지 않고 손을 잡아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일뿐입니다.



교사는 마치 멋진 앨범과 공연을 준비하고 노래를 들어주기를 바라는 가수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인기를 끌지 못하고 혼자서 공연을 하게 되더라도 끊임없이 실력을 갈고닦고 좋은 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식당을 운영하며 훌륭한 음식을 준비했다는 믿음이 있다면 손님들이 오기 전부터 음식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느 순간 아이들이 몰려들지 모르기 때문이고 아이들이 몰려들 때부터 준비하면 늦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든 중요한 건 기본기와 멈추지 않는 연습과 습관형성임을 아이들에게 깨우쳐주어야 합니다. 당장 급한 마음에 곡 하나의 연주법을 억지로 암기하는 것보다, 더 지루해 보이는 기본기를 충분히 익혀서 어떤 곡이든 연주할 수 있는 자유를 선물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선물하는 당시에는 교사도 학생도 체험하지 못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얻게 되는 그 자유가 더 가치가 있음을 그 과정을 다 겪어 본 사람들은 압니다.


저도 그런 과정을 수도 없이 겪어 보았고 성취에 대해 학생들과 딸들과 함께 기뻐했던 경험으로 그 믿음과 확신의 가치를 학생들에게 포기하지 않고 전하고 있습니다. 복음(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지금 당장은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각자의 타이밍에 언제라도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에 개점휴업을 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자기만의 속도로 성장하며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으며 매순간 기뻐할 수 있는 행복교육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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