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안도현 시집에서 발견한 사랑

by 청블리쌤


마음으로 아끼는 귀한 이에게 시집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오랜만이다. 이런 선물을 받는 것, 그리고 시집을 시간 내서 읽는 것... 그동안 속도감 있는 독서만을 추구했던 탓이다.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나고 받아들이려 하는 욕심이 앞섰던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볼 기회가 되었다.

시집을 읽는 동안 멈추는 법을, 멈춰서 생각하는 법을,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않고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안도현 시인은 오래전 '연어'라는 어른을 위한 동화로 만났었다. 한참의 세월의 흐름을 거슬러, 아직도 강을 거슬러가는 그 연어를 다시 만나는 반가움이었다.

초록강이 연어에게 연어다움에 대해 말하는 아래 구절이 치열함을 일깨우면서도 전해지는 따뜻함이 담긴 인생의 조언으로 살아남아 있다. 힘겨워하는 학생들을 위로할 때도 많이 인용했던 구절이다.

거슬러 오른다는 것은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간다는 뜻이지. 꿈이랄까? 희망 같은 거 말야. 힘겹지만 아름다운 일이란다.



이 시집은 시어가 절제되어 있지만 간결하고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하여 술술 읽히는 것 같지만 그래서 그 여유로 인해 반복하여 읽을수록 더 많은 생각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었다. 제목의 “그대”는 통일을 바라는 작가의 염원이라는 해석도 있으며 작가의 의도까지는 알 수 없지만, 시인이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썼던 시를 읽는 독자의 해석이 마침내 시의 의미가 완성되는 거니 그저 내 나름의 사랑을 이 시집에서 찾아 의미를 완성해 보려 한다.





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대라고 부를 사람에게

그 길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혼자서는 갈 수 없는

끝없는 길을



- 함께 그 끝없는 길을 가자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길은 끝이 없어서 오히려 영원한 사랑으로의 초대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결혼식 축가로 많이 부르는 윤종신의 노래 오르막길이 떠오른다.


여기서 중요한 건 “끝없는 길, 오르막길” 같은 길의 속성이 아니라 그대라는 존재다. 그대와 함께 어떤 길이든 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메시지를 아래 시에서도 발견하였다.



사랑한다는 것


길가에 민들레 한송이 피어나면

꽃잎으로 온 하늘을 다 받치고 살 듯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직 한 사람을 사무치게 사랑한다는 것은

이 세상 전체를

비로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차고 맑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는 나의 세상을

나는 그대의 세상을

함께 짊어지고

새벽을 향해 걸어가겠다는 것입니다


그 함께라는 것이 경이롭다. 서로 다른 세계에 속했던 사람이 만나 빅뱅 같은 일이 벌어진다. 그 다른 세계로 인해 서로가 망가지기도 하겠지만 더 온전한 하나가 된다는 논리적 설명이 힘든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데 그걸 사랑이라고 한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의 아래 구절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성숙한 사랑은 자신의 통합성(integrity), 곧 자신의 개성(individuality)을 유지하는 상태에 있어서의 합일(union)이다. 사랑은 인간에 있어서 능동적인 힘이다. 곧 인간을 동료로부터 분리시키는 벽을 파괴하는 힘이며, 그를 다른 사람과 결합시키는 힘이다.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립감과 분리감을 극복하게 하면서도 이와 동시에 각자에게 각자의 특성을 허용하고 자신의 통합성을 유지시킨다. 사랑에 있어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함께 가는 길에 대한 사랑의 명확한 정의는 다음 시에서도 이어진다.



철길


혼자 가는 길보다는

둘이서 함께 가리

앞서지도 뒤서지도 말고 이렇게

나란히 떠나가리

서로 그리워하는 만큼

닿을 수 없는

거리가 있는 우리

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가리

사람이 사는 마을에 도착하는 날까지

혼자 가는 길보다는

둘이서 함께 가리



철길을 바라보며 시인은 사랑을 생각한다. 오히려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에 더 오래 할 수 있는 길임을 알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사랑과 인간관계는 친밀함이 더 커질수록 서로의 거리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삶을 통해 매 순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딸들이 훌쩍 커버려 이미 심리적인 독립을 이루어 가는 지금 이 순간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뜨겁게 사랑하는 방법을 늘 찾아 헤맨다.


그런데 길을 함께 간다는 것은 서로의 거리를 존중하며 서로를 자신의 욕심이나 고집으로 강요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시인은 그 이상의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에는 "갑"과 "을"이 있게 마련이며 보통은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을"이다. 그런데 그 “을”을 자처하는 더 큰 사랑을 아래의 시에서 발견하였다.



어둠이 되어


그대가 한밤내

초롱초롱 별이 되고 싶다면

나는 밤새도록

눈도 막고 귀도 막고

그대의 등 뒤에서

어둠이 되어 주겠습니다


그대가 별이 되고 싶고, 그것도 찬란한 별이 되고 싶다면, 나도 함께 빛나면 안 되는 것이다. 그 순간 그대가 주인공이 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뭔가를 해주고 같이 함께 빛나고자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사랑의 길을 함께 가는 것은 때론 이렇게 함께 하지 않는 많은 순간들로 이루어진다. 함께 한다는 이름으로 서로의 눈동자만 바라보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집착일 뿐인 거다.

사랑은 다 주고도 더 줄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상대를 위해 정말 주고 싶은 것을 안 주며 기다리는 것이기도 하다.

생색내지 않고 존재감 없이 그에게 도움이 되며 고맙다는 인사를 듣지 못해도 상대를 빛나게 해주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 궁극의 사랑일 수도 있다.

부모도, 교사도 결국 아이들을 초롱초롱 빛나게 해주면서도 결국에는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숙명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사랑을 시작하는 데는 조건이 없다. 그래서 사랑은 위대하다. 돈이 있으면 재미있게 사랑할 수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돈으로 사랑을 시작할 수는 없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그렇게 사랑을 시작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조건이 개입된 사랑으로 인한 두 사람의 결합은 그냥 결혼이 아니라 정략결혼이다.


어렸을 때부터 가난했던 난 그 가난으로 인해 진정한 사랑의 희망을 품었다. 외모에 대한 열등감으로 오히려 더 큰 사랑의 소망을 가졌다. 적어도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의 조건을 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예이츠의 시를 가슴속에 품고 위로를 받았다.


그러나 나 가난하여 오직 꿈만을 가졌고
그 꿈을 당신 발밑에 깔았으니 사뿐히 밟으소서, 그대 밟은 것 내 꿈이오니...



이 시집에서도 그런 느낌의 시를 찾았다.


가난하다는 것


가난은

가난한 사람을 울리지 않는다


가난하다는 것은

가난하지 않은 사람보다

오직 한 움큼만 덜 가졌다는 뜻이므로

늘 가슴 한쪽이 비어 있어

거기에

사랑을 채울 자리를 마련해 두었으므로


사랑하는 이들은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성경에서도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팔복이라는 주제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결핍과 부족함은 채울 수 있는 희망이 있다. 비울수록 더 귀한 것으로 채울 수 있다. 물론 결핍에 대한 자각과 인정이 전제가 되어야 하지만...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난 그대가 그리울 수 있지만 그리움은 결핍과 부족함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된다. 그 자각의 시작은 사랑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불평하기보다 갖고 있는 더 많은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은 그 부족함을 채우고도 남는다. 물질적으로든 마음으로든 늘 가난하기를...


이 시집을 바라보며 행복감에 젖어 오랫동안 멈춰서 생각할 기회를 준 이에게 감사를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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