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대하여(일의 격 10)

by 청블리쌤


교육은 변화에 관한 이야기다. 변화가 면제된 사람은 없다. 스스로 변화를 거부한다는 것은 성장을 거부한다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변화에 대한 저항감이다. 부모와 교사는 늘 그 저항감을 마주한다. 변화에 대한 저항감은 스스로의 성장에서도 가장 크고 높은 문턱이다. 저항감의 첫문턱을 넘어선 후에도 소위 “금단현상”, “요요현상” 등과 마주해야 한다.


학생들의 학습 동기유발도 어렵지만 지속적 학습습관을 형성해 주는 것은 더 어렵다.


그 모든 선택과 출발에서 본인의 지분이 클수록 성공확률이 높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학생들의 출발점에서는 어른이나 또래의 개입이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 수준에서 어떤 정도의 힘으로 밀당 할지가 어려울 뿐이다. 그런 고민이 싫은 어른들은 자신이 제시하는 방향으로 무조건 따라올 것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러나 방향이 맞다고 결과도 늘 옳은 것은 아니다. 아이들 각자 타이밍과 발달속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표준화된 교육과정에서의 가시적 성과에 대한 조급함은 오롯이 아이의 주도성을 인정해 주는 것을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으로 만든다.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변화가 일어나도록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더딘 속도에 좌절할 수는 있지만, 기다림과 애탐으로 결국 얻어낸 성과는 외적 압박에 의한 인위적인 변화값을 훨씬 능가하고, 일시적인 변화를 넘어 지속적인 성장으로 이어진다. 물론 어른들의 답답함과 불안감은 부수적으로 치러야 할 대가이기도 하다.


일의 격이라는 경영학 책에서도 <변화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p.194-195 내용 중 일부분만 발췌함)



“사람을 바꾸는 비결이 무엇일까요?”가 아니라 “그 스스로 변화를 선택하게 도우려면 어떻게 할까요?”라고 질문해야 한다.

내가 주체가 되어 상대를 바꾸는 것은 심리 조종가들이나 하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다.

상대의 변화에 역할을 하고 싶다면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먼저 상대의 변화를 돕기 위해 힘을 쏟을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강력한 필요나 상대의 요청이 없다면 하지 않는 게 낫다.

둘째, 변화하도록 돕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도 상대의 현재 방식을 잘못된 것으로 단정짓는다면 상대는 변화되기 어렵다.

현재 상태를 공감하되, 익숙하지 않지만 새로운 영역이 그에게 얼마나 큰 발전이 될지 보여주고 스스로 그 길을 택하게(결단하게) 할 필요가 있다.

셋째, 결국 변화란 상대의 선택임을 명확히 해주어야 한다.

그 앞에 어떤 선택이 있고, 그 선택들의 결과가 어떠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통찰이 있는 사람은 선택에 있어서 그가 모르는 것, 보지 못하는 요소들을 보여줄 수 있다.





주체적 삶이 변화에 적응하는 태도 밎 능력과 만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조합이다. 주체적으로 변화의 문턱을 넘어서야 지속성과 궁극적인 성장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변화를 일깨워주고 문턱을 넘도록 도와줄 수 있는 통찰력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어려운 미션은 잠자코 더 기다려주는 일이다. 그리고 변화 이전의 상대방의 모습을 전면 부정하면서 새로운 가치의 우월성만을 조급하게 일깨워주는 일도 삼가야 한다. 공감과 진정한 소통 이후에야 성장과 변화가 서서히 시작되기 때문이다.


변화와 성장에 영향을 준 사람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고, 감사 인사조차 받지 못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역할을 감당한 것이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위기와 실패의 시스템에서만 영웅이 필요한 법이다. 진짜 훌륭한 교사와 부모는 unsung hero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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