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정 연수 받던 5년 차 교사 시절에 난 연수 강사들이 너무 높아 보였다. 실제로 정말 훌륭하신 롤 모델 같은 분들이 강사로 오셨다. 그런데 세월이 한참 지나고 어쩌다 보니 나도 그 강사의 자리에 벌써 네 번째 서게 되었다.
후배 교사로부터 자신이 1정 연수 강사하는 것이 목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의 삶은 의도하고 계획하는 철저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런 치열함으로 우리의 삶을 바꿔간다. 그러나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을 넘나들려 할 때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우리가 성취하는 영역은 어느 정도 우리의 노력으로 예측할 수 있고 구체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취에 오히려 더 조급하기 쉽다. 우리의 성취는 우리의 가치와 꼭 일치하지는 않는데도 우리 사회는 성취와 외적 스펙을 본인의 정체성으로 드러내어야 한다는 압박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 관점에서 내가 강연이나 학습코칭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참 위험할 수도 있다. 때로는 게으름을 조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부모나 교사로서 당장 해내야 할 책임을 미뤄두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말 힘겹게 노력하였지만 당장 그 노력의 성취를 눈으로 확인하지 못해서 좌절한 이에게 힘내라는 하는 것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잔인한 푸시가 될 수도 있다. 마치 더 힘을 내서 노력하지 않으면 그전의 노력이 충분하지 않았던 거라는 메시지로 들릴 수도 있는 탓이다.
난 선생님과 학부모님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다른 학교 학생들을 만나면서 학습코칭을 하고 몰입수업을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그려 본 적이 없다. 추구하지도 않았던 일들이 어쩌다 일어난다면, 이전의 과정도 힘겹거나 부담스럽지 않았을 것이고, 추가로 주어진 의외의 기회에도 더 행복할 수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교직 초반부터 내가 가진 자료를 그냥 공개하는 것이 당연했었다. 1999년 홈페이지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다음 칼럼에 영어 관련 강의를 매일 글로 써서 올릴 때도 그랬다. 그걸로 내가 무슨 금전적 이득을 취하거나 또 다른 기회를 그려보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홈페이지와 다음칼럼을 하다가 월간지 <좋은생각>의 자매지였던 청소년을 위한 <좋은친구>의 편집자분과 연결이 되어 창간호부터 기사와 영어 꼭지에 관여를 하게 되기도 했고, 다른 월간지에 학습법에 대한 글이 실리기도 했고, 출판사의 의뢰로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책은 망작이었으나 정식 등록된 도서이기 때문에 명목상 나 스스로를 작가로 불러도 거짓말은 아니다. 오히려 실패의 경험으로 인해 학생들이나 선생님들께 부담없이 유머의 소재로 활용할 수 있어서 좋다.
요즘에는 이렇게 내 개인적인 이야기와 생각을 담아 글을 쓰기도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어자료에 대한 나의 감성과 느낌만 담았을 뿐이었다. 그래도 나의 사소한 작은 노력이 누군가에게 가닿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기는 했다. 물론 조회수와 공감이나 댓글에 반응을 안 할 수는 없었다. 나의 노력과 의도를 누군가 알아주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지만 힘이 되고 지속하는 힘과 동기유발이 되기도 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난 이웃분들과 공감과 댓글로 반응해 주시는 분들께 큰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
타지역 1정 연수 강의를 가는 것에 대해서 나자신도, 주변에서도 의아해했다. 내가 전국적으로 알려진 유명 인사도 아닌데, 이렇게 초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물론 우리 지역에서 초대를 받을 때도 여전히 난 의아해 한다. 날 왜 초대하는 건지... 물론 난 그 의문에 답을 찾으려 하기 전에 주어진 기회에 무조건 진심과 최선을 다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긴 하지만...
강의를 마치고 섭외의 내막이 조금은 드러났다. 그 지역 1정 연수 대표 강사님이시면서, 열정 넘치시는 그 지역의 영어선생님께서 내 블로그 이웃이실 거라는 것이 내 유력한 가설이다. 개인적으로 만나 뵌 적도 없는데 중요한 자리에 나를 추천하셨다는 게 놀라웠다. 직접 검증하지 않았는데, 혹 강의가 안 좋았을 때는 추천자도 책임을 면키 어려울 텐데 이런 모험을 하시다니...
결국 블로그를 통해 의도하지 않았지만 얻게 된 축복의 티켓같은 것이었다. 그자체가 내 블로그의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블로그의 즐거움을 빼앗기거나 순수한 열정도 훼손되지 않으면서 어쩌다 그냥 얻게 되었다는 것이 더 큰 의미였다.
8월에 예정된 진학사 강연도 블로그와 병행하고 있는 카카오 브런치 플랫폼을 통해 들어온 제안이었다.
블로그와 브런치에 기록한 나의 삶의 기록 자체에 대한 반응이었다.
난 강연을 통해서도 그 삶을 그대로 말씀드리고 나눈다. 어차피 내겐 논문 수준의 학구적인 연구나, 나의 삶의 반경을 넘어선 축적된 연구 실적도 없고, 누군가 알아줄 만한 저서나, 유명세도 없기 때문이다. 그 이상의 욕심으로 나의 삶의 반경을 넘어서서 유명하고 유능한 누군가를 흉내 내려 한다면 오히려 드러나는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그나마 강사의 자격조차 상실될 것이다.
이번 1정 연수의 여운은 특히 내게 오래 남았다. 그 현장의 분위기에 취해서, 선생님들의 순수한 열정과 배움의 열의를 만나서, 그분들의 진심 어린 환대를 매 순간 누렸기 때문이다.
참가한 선생님 중 이미 블로그 이웃이었던 한 선생님은 이런 소감을 내게 전했다.
내 강의에 울컥울컥 몇 번이고 코끝이 찡했다고
답을 알 것 같은데도.. 언제나 아이들을 대할 때, 뭔가 부족했던 목마름을, 해소해 준 느낌이라고..
감동의 여운이 오래가서 오후 수업이 귀에 잘 안 들어왔다고...
모두 기억하고 실천하고 싶다고...
모든 선생님들의 느낌을 대변하지는 않았겠지만 난 그걸로 충분했다. 최고의 보람과 기쁨을 이미 선물 받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의 열정을 얘기하면 난 늘 학생들의 열정이 나를 통해 비춰진 것뿐이라고 한다. 겸손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난 열정이나 의지가 없는 학생들의 마음까지 변화시킬 능력이 없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으면서 그저 기다린다.
그런데 그 선생님과 강의 이후 주고 받은 댓글로 더 확신을 얻었다.
그 선생님은 알파벳도 모르는 중2 학생을 점심시간에 만나 도움을 주었고, 그래서 그후 시험 성적이 54점이 나왔었다는 사례를 이야기하셨다. 54점이라는 성적은 여전히 높은 성적은 아니어서 그 선생님도 진심을 다하면서도 잘 하고 있는지 고민이 되고 힘드셨는데 강의를 듣고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고. 그러면서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함께 나아가는 도전, 잊지않고 앞으로도 실천하겠다는 다짐까지 나눠주셨다.
난 그 선생님께 이렇게 답변드렸다.
이미 제 강의를 듣기 전부터 선생님은 그 강의 이상의 삶을 구현하고 계셨네요. 그래서 제 강의는 저의 이야기가 아니라 선생님의 삶을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기회였던 거구요. 그래서 제가 강연할 때 그 느낌이 전달되어 저도 그렇게 가슴 벅찼던 거였어요.
늘 저의 열정은 아이들의 열정에 대한 반영이라고 말해왔거든요. 그 열정보다 더 대단한 건 열정이 없는 아이들의 가능성과 능력을 끌어내는 것인데 이미 선생님은 그걸 하고 계신 거네요. 54점의 점수라면 그 학생에게는 이미 기적입니다. 이미 선생님 덕분에 높은 문턱을 넘어선 거구요. 혹 그 결과를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더라도 선생님이 뿌리시는 씨앗은 훗날 어떻게든 꽃으로 피어날 것이니 선생님의 열심과 아이들에 대한 찐 사랑에 확신의 마음을 가지세요. 단, 젊음이라는 이유로 너무 무리하거나 혹사하지 않도록 조절하셔야 해요. 어차피 교사의 역할을 최소화하여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어주도록 고민하는 것도 함께 해야 하니까요.
그러니까 내 강의가 누군가에게 울림이 있고 감동이 있었다면 이미 울림 있고 감동적인 삶을 살거나 겸손한 배움의 자세로 열망하는 그 열정을 그저 비춰주는 조명이나 거울 역할을 했을 뿐이었던 거다.
어쨌거나 특별하지도 않은 나라는 존재가 그저 매일 만남에 진심을 다하기만 하면 되었던 나의 삶이, 나의 삶의 반경을 넘어서 다른 분들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가슴 벅찬 삶의 의미와 감동을 주는지... 감사하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 될 정도다.
그러나 난 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는 걸 외부강의를 통해 더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었다. 나의 삶의 반경 내에서 살았지만, 늘 나의 학생들을 만나 그 접점에서 상상 이상의 영향을 주고받으며 축복을 누리고 있었다는 것...
요즈음 학교 학생들과 자기주도학습코칭을 통해 온라인에서 만나고 있다.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글을 통해 전해주고, 아이들은 글을 읽은 느낌을 있는 그대로 내게 댓글로 전하고, 난 그들의 그 느낌에 대한 반응을 대댓글로 보여주며 이어가는 확장된 만남, 그리고 서로가 받는 교육적 영향과 삶의 의미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있다. 워낙 멘토링도, 수업도 대단위로 많이 해왔지만, 내가 늘 기억해야 할 것은 인원의 많고 적음으로 인한 판단이 아니라 인원에 상관없이 궁극적으로는 학생들을 개별로, 일대일로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두 명과의 만남에서도 당연히 그런 영향력을 기대하면 되는 거라고...
블로그나 브런치를 통해서도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상상 이상의 일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의 신기함에 놀라고 있는 요즘이다. 당장 그걸로 뭘 하자는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의 삶의 반경에서 가진 것을 있는 그대로 나누는 것도 행복의 연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요즘 부쩍 든다.
그러니 감사와 감격으로 살아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모두가 자신의 삶의 반경에서 즐겁고 행복하시길...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가 주고받는 소통과 공감의 축복을 애써 의식하면서 찾아 누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