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와 댓글소통
10년 전 쯤 한 여고에서 내 수업과 점심시간 인문학 특강에 열심이었고, 음악과 노래에도 진심이었던 학생이 있었다. 인문학 특강에서 기타치면서 노래할 때 처음 하는 곡도 악보를 보고 바로 따라하며 보컬의 중심을 잡아주었던 학생이었다.
어느날 인문학특강시간에 세월호 사건 때 목숨을 바쳐 제자들을 구했던 선생님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어땠을지 모르겠다고 하니까, 그 제자가 이랬다.
“제일 먼저 기절했겠지”
그 말이 내게 비판이나 조롱이나 비꼼으로 들리지는 않았다. 나의 소심함에 대해서 잘 아는 학생의 악의 없는 솔직한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이후 나를 아는 사람에게는 유머의 소재가 되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어떤 관계성으로든 나를 생활에서 겪어 맥락이 형성된 이들에게만 소위 “빵 터지는”효과가 있는 이야기였다.
6년쯤 지나서인가, 그 제자를 다시 만나 식사를 하면서 그 이야기를 했다.
정작 그 제자는 그 말을 했다는 걸 기억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렇게 예의 없는 말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난 기분 나쁘지 않았으니 마음 쓰지 말라고 했다. 실제로 일어난 일도 아니고, 그런 대답은 나에 대한 관심과 이해로만 나올 수 있는 말이었으니 오히려 기분 좋았다고...
글을 쓸 때 글과 자신의 인격을 분리해야 독자가 순수한 글을 접할 수 있으니 가족이나 지인에게 글을 보여주지 않아야 한다는 책 내용을 인용한 어제 포스팅 글에 그 제자가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쌤이 쓴 글들을 볼 때마다 수집되어 있는 예술 작품의 모음같다!는 생각을 해요. 쌤 글에서는 따뜻한 쌤의 성품이 굳이 감추려 해도 여실히 드러나요. 저라는 독자의 입장에선 글쓴이를 개인적으로 알기 때문에 글의 빛을 더 알아볼 수 있고 그건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ㅎㅎ
이 몇 마디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극찬을 담을 수 있다니....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난 이렇게 대댓글을 달았다. 거의 10년이 지난 제자임에도 이렇게 편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것도 놀랍고 신기한 일이며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었다.
잘 지내고 있지? 반갑다. 너의 칭찬에 아침부터 날아갈 것 같다. 고맙다^^
너의 얘기를 들으니 나를 아는 사람이 내 글을 읽어주는 것이 정말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드네. 덕분에 너와의 인연이 1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 이렇게 이어지고 있는 거라서 신기하고 감사하다. 나의 글을 통해 너의 댓글을 통해 글 이상의 서로의 실존을 소환하고 있는 거겠지. 이렇게 댓글을 쓰다 보니 글쓰기의 놀라운 기능을 하나 더 찾았다. 9월에 선생님들 대상으로 "글쓰기와 행복교육"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는데, 너가 불편하지 않다면 실명 언급은 없이 너의 이야기도 해볼게. 선생님들께 멋진 영감과 좋은 영향력이 될 것 같다....
수업이라는 환경에서는 모든 학생들과 교감을 하고 소통을 하더라도 개별적인 소통의 채널이 어느 정도 닫혀 있어야 수업이 진행된다. 각기 다른 수준과 생각과 개성을 수업 한 시간에 다 때려 넣어서 삶 자체로서의 수업을 구현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교실 밖 상담을 할 때도 내 앞에서는 말 한마디도 못했던 학생이 내게 이메일을 쓸 때는 그 학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유창했던 반전의 아이들이 많았다. 젊은 시절에는 아이들에게 이메일로 상담을 해주었던 기억이 새롭다. 매주 토요일 오후는 이메일 상담 답변으로 행복했던 기억이다. 말로 원활하게 소통했던 학생들도 글로 소통하는 건 완전히 다른 관점과 방식이기도 했고 말하기가 쑥스러운 아이들에게는 유일한 소통의 통로도 될 수 있었다.
영어멘토링을 하면서 학생들의 소감에 일일이 답장을 해주기도 했지만, 한 번씩 반 아이들이나 영어멘티들에게 단체 편지를 써주기도 한다.
그리고 자기주도학습코칭 반 학생들이 매일 한두 편씩 글 읽고 댓글달기를 할 때 편지글을 링크하면, 아이들의 댓글로 답장을 받는 셈이 된다. 그렇게 양방향의 소통을 이어갈 수도 있다.
글을 통해 아이들의 성장을 확인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글을 쓰면서 생각하고 관점을 정리하는 것 자체가 성장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글쓰기 기회를 얻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글쓰기 소통은 교과교육의 확장이고 연장이기는 하지만, 또 다른 차원의 전인적인 성장의 통로이기 때문에 교과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내가 영어과라고 해서 아이들이 영어를 활용해서 소통하는 방법으로 영어실력을 늘려주겠다는 생각은 없다. 외국어가 유창해도 뉘앙스를 제대로 전달하며 의사소통을 세밀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친구들끼리 소통하면서 감성이 자라고 사회성을 키우기도 하지만 교사와의 소통을 통해 삶을 좀 더 배울 수도 있고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교사의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가진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아무리 선생님이 편해도 친구들끼리 편하게 내뱉는 말과는 생각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90%는 생각 쓰기는 10%라고 한다. 쓰기는 그러니까 문자 그대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빙산의 일각이다. 글쓰기가 이루어진다면 교육의 효과는 눈에 잘 보이지는 않더라도 상상할 수 없는 깊이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교사의 일방적인 헌신과 희생이 요구되는 일이 아니다. 교육은 일방통행이 아닌 거니까. 교사도 학생을 통해 삶을 배우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학생들과의 소통이 이뤄지면 그 신뢰를 통해 교과지도에도 더 힘이 실릴 수 있다.
난 학교 수업시간에 내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쏟아붓는다. 교과는 물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학습과 삶에 대한 이야기도 해준다.
그리고 교실 밖에서 아이들 스스로 자기 수준에 맞게 자기주도적 학습을 할 수 있도록 무대를 마련해 준다. 각자 단어 학습을 해서 온라인 시험에 응시하고, 동영상강의를 들으면서 워크북을 혼자서 해결하기도 한다. 수업 외 시간에 아이들을 만나고 온라인으로 점검도 한다. 모두 교실을 벗어난 학습코칭이고 삶 자체의 수업이다.
방학 때는 영어멘토링에 매일 학습플래너 인증샷 및 좋은글 읽고 댓글달기 과정으로 기본기학습에 학습습관형성을 돕는다. 그 과정에서도 글쓰기를 통한 소통이 이뤄진다. 물론 필요할 경우 전화통화로 상담을 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글쓰기를 더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 글쓰기는 거창한 글 한 편이 아니라 간단한 몇 줄이라도 좋고, 오히려 그래야 의사소통이 더 원활하게 이뤄진다.
난 이런 과정을 통해 수업에 갇힌 교사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는다. 교육의 효과는 아이들과의 교감과 소통을 통해 더 극적으로 발휘될 수 있다.
지금도 아이들은 내게 손편지를 전하지만, 지금 시대는 온라인 무한채널 옵션이 더 있는 거라서 교사가 고민과 실행의 의지만 있으면 글쓰기 소통의 기회를 무한대로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교사인 나는 늘 시도 때도 없이 행복할 기회를 얻는다. 그 행복도 이렇게 글쓰기를 통해 전달이 된다.
오늘 아침 교사로서의 행복과 글쓰기의 영감을 준 제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