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교수의 공부는 기존의 공부법과는 다르다. 그가 살아온 인생도 좀 다르다. 돈 버는 일에 초점을 맞추지도 않는다. 그의 인지도라면, 그 후광효과로 이화여대에서 그의 강의는 100명이 넘는 대규모의 강의라도 이상할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폐강의 위기까지 맞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아했지만 이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는 시스템에 억지로 맞추려는 시도를 굳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멋있다. 인정과 명예와 돈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가치를 전하면서, 타협하지 않고 소신을 다하는 삶은, 그 자체로 메시지를 주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이 책은 <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글로 쓴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대담 형식으로 된 이야기다. 그러나 내용은 그렇게 가볍지 않다. 편안하게 던져주는 강의 같은 내용이었다.
모든 내용을 다 받아들이거나, 한 대목도 빠짐없이 감동을 받은 건 아니지만, 교육자로서 나의 수업과 교육을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우리는 수업이라는 환경이 아니라도 학교가 아니라도 나이에 상관없이 그럴 의지만 있다면 뭔가를 배우게 되어 있다.
자신의 연구회에 3년 연속으로 내게 강의를 요청했던 한 수석선생님과 대화하다가 활동중심교사연구회를 만들게 된 경위에 대해 들었다. 연구회 이름에서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그저 수업시간에 학생들의 활동만으로 지루함을 덜어주는 그런 수업이 아니라 삶을 수업에 그대로 옮겨와서 삶으로 배우고 말하는 수업을 의미한다고 했다. 수업이 삶이고, 삶이 곧 수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한 고민이었다. 적어도 교사는 혼자서 말하고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는 수업은 아닌 거였다.
난 작년에 그 활동중심 연구회 세미나 강연을 하면서 그것도 모르고 활동중심수업이라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 매몰되어, 전이가 일어난 수업결과에 대한 강조보다, 삶으로 이어지고 폭발적 배움이 일어나도록 도와주는 교사의 적극적인 역할에 대해서 너무 강조했다. “기억은 생각의 잔재물”인데, 너무 활동에만 집중하면 학생들에게 진정한 배움이 일어나긴 할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었다.
난 학생들이 주인공이 되는 수업만 꿈꾸면서 교사의 역할을 대폭 축소하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할 생각은 없다. 다만 교실을 벗어난 학습코칭에 대한 가능성을 늘 생각하고 있다. 교실 밖에서는 학생들이 주인공이라는 건 명확한 것이니까.
수업 활동 내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고 삶의 축소판처럼 완결된 수업을 완성하려 하면 답을 못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만약 학생들이 수업 시간 중에 삶에 적용하고 응용하는 놀라운 성과를 구체화시켜 보여주었다면, 그건 미리 설계된 설정일 수도 있고 혹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면 화려한 활약을 하는 그 이면에 일반 학생들의 배움도 일어나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니 활동중심수업의 취지를 살리려면 수업에 국한하지 말고 교실 밖 교육으로 확장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 아닐까.
플립 러닝도 그런 개념이다. 개념이나 지식적인 내용은 수업 전에 미리 학습한 것을 전제로 수업시간에는 적용하고 협력하는 활동이 가능해질 수 있다. 이미 배움이 확실하게 일어난 아이들은 협력학습에서 배움의 리더 역할을 할 수 있으니 한 공간 내에서 교사의 개입 없이 수준별 수업이 이뤄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학습에 대한 열의와 기본기가 부족한 학생들이 그래서 수업조차 흥미를 못 느끼는 아이들이 플립러닝의 취지와 효율을 따라갈 것인지는 현실적으로는 너무 높은 장벽이다.
특히 영어의 경우는 최소한의 기초적인 파닉스, 기본 단어, 문장 구성에 대한 기본 문법이 없다면 아무리 삶에 관련된 흥미로운 소재를 던져줘도, 영어를 매개로 하는 한, 수업은 외계어나 암호의 무의미한 나열일 뿐이다. 수업 시간 내에 그 학습 격차를 극복할 방법은 없다.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은 각기 다른 수준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소수의 인원이라도 수준을 맞추기가 불가능하고, 그렇게 수업 수준을 낮추다 보면 중상위권 학생들이 소외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래서 사교육이 필요한 거라는 귀결에 이르지 않도록, 공교육에서도 교실 밖 학습이 필요하다. 물론 수준을 높인 심화과정을 원하거나 삶에 적용 및 전이까지 확장하려는 학생들에 비해 학습의욕이나 습관 면에서 뒤처진 아이들의 경우 훨씬 더 오랜 인내심이 필요하겠지만... 그들이 스스로 극복하도록 격려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상적인 수업에 대한 고민의 끝은 없다. 살아가는 모습도 다 다르고 수준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다. 애초에 이렇게 다양한 아이들을 한 교실에 앉혀 놓은 것 자체가 모순인 상황이다. 그래서 수업은 늘 공통적으로 해야 할 부분, 협력해서 해야 할 부분으로 제한된다.
개별화된 삶의 적용과 아직 본 궤도에 오르지 못한 기본기 학습은 교실 밖 개인의 몫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교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보통은 남들보다 뒤처지는 느낌이 들면 용기를 내기 어렵다. 그래서 아직 늦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는 현실적 격려가 필요하다. 교실을 벗어나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학습해야 할지 헤맬 수도 있다. 헤매면서 스스로 길을 찾아내는 것도 의미 있지만, 이왕이면 효율적인 방향을 제시해서 덜 헤매게 해주면 아이들이 덜 지친 상태에서 뭔가를 계속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 책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최재천 교수의 공부는 다르다. 그래서 일반 중고등학교에 그대로 적용하면 낭패다. 그러나 배움의 본질은 일깨울 수 있다. 배움은 본디 즐거운 것이고, 설레는 것이고, 성장의 과정이다. 남과 다르다고 해서 비난받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책의 내용 중에 아이들에게 주도권을 준다는 것도 인상 깊었다. 상담이든 배움이든 아이들이 주도하도록 하는 것이 진짜 교육이다. 네가 알아서 다 해보라면서 정작 관심도 갖지 않는 방임과는 차별화되는 교육의 방향이다.
책 내용 중 특히 인상적인 구절만 몇 개 발췌해서 소개하려 한다.
서양에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에서 가슴까지”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36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이지만, 아는 것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매우 어렵고 시간이 걸리죠.
-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것도 어렵고, 그 실행을 지속시키는 건 더 어렵다. 아이들의 학습습관 형성을 도우면서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이것이다.
“마음의 의지를 몸이 기억할 때까지”
평소에 “알면 사랑한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요. 자꾸 알아가려는 노력이 축적될수록 이해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공부와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출발점은 상대방이 처한 맥락을 아는 것이며 그건 의도적인 배움과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독서는 일이어야만 합니다. 독서는 빡세게 하는 겁니다. 독서를 취미로 하면 눈만 나빠집니다.
치밀하게 기획해서 공략해야죠. 한 번도 배우지 않은 분야의 책을 공략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독서량이 늘어날수록 완전 새로운 분야의 책을 접할 때, 전보다 덜 힘들어하는 자신을 발견할 거예요.
독서를 일처럼 하면서 지식의 영토를 계속 공략해나가다 보면 거짓말처럼, 새로운 분야를 공략할 때 수월하게 넘나다는 나를 만나게 됩니다.
- 최재천 교수는 그런 독서를 지식의 영토를 넓히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즐거움이 동반된 독서도 물론 필요하다. 취미처럼 하는 독서다. 그러나 지식의 영토를 넓히는 독서는 평생공부의 기반이 된다. 희소식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처음 같지는 않을 거라는 희망이 늘 있다는 것이다. 그건 한 분야에 대해 익숙해지는 걸로 멈추지 않고 다른 영역의 새로운 지식의 문턱을 넘어서는데도 기본 생각의 근력과 이해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미국에서 어차피 미국인보다 영어로 잘 말할 수도 없고, 제가 최고로 잘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말을 잘 못해도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니, ‘에라 모르겠다’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실수도 했는데, 주변에서 오히려 북돋아줬어요. 어느 순간 스스로 달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우리 사회는 실수를 너무 실수로 낙인찍어요. 미국 사회에서 좋았던 건 실수를 실수로 인정하고 지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수하면 사과하면 된다는 생각, 그리고 실수를 실수로 받아준 환경을 경험하면서 떨림을 극복할 수 있었죠.
다른 사람들은 내 실수를 별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의외로 나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너무 겁먹지 말고 들이대야 합니다.
- 실패를 두려워하면 모험을 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학습된 무력감에 대한 두려움을 모두들 가지고 있어서 실패할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잘 시도하려 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책임도 크다. 실수를 통해 더 많이 배우고 더 크게 성장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 자신의 조급함과 답답한 마음을 아이들에게 전가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차라리 실수를 권장하는 건 어떨까?
이번에 교생 지도할 때 첫 만남부터 강조했던 말이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두려움이 없는 것만큼 실수를 하고, 그 실수를 통해서 관념적인 지식 그 이상으로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할 거라고 격려해 주었는데, 교생쌤들이 그 말에 큰 힘을 얻었던 것 같다. 실수를 하지 않고 있다면 실수 안 한 척 연기를 하고 있거나 아예 더 큰 성장에 대한 노력을 멈추고 있는 거라고 난 생각한다. 그리고 실수는 본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어른들의 비판이나 비난 없이도 본인 스스로 충분히 괴롭다. 그리고 아이들이 실수를 하거나 좌절을 하지 않도록 상처받지 않으려고 어른이 개입하는 것도 어른의 의도와 관계없이 결국에 아이들에게 이롭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에서 자폐 변호사인 우영우가 자신을 자신을 너무 보호하려 했던 아버지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오롯이 좌절하고 싶습니다. 좌절해야 한다면 저 혼자서 오롯이 좌절하고 싶습니다. 저는 어른이잖아요. 아버지가 매번 이렇게 제 삶에 끼어들어서 좌절까지도 대신 막아주는 거 싫습니다. 하지 마세요!
리더가 입을 열면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아요. 집단 지성을 이루고 창의성을 끌어내려면, 리더는 어금니가 아프도록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대부분 첫 마디를 튼 사람이 계속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제가 이야기를 이끌기 시작하면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제가 계속 물어봐야 하죠. 그런데 아이가 먼저 말을 시작하면 그 아이가 계속 이야기를 이끌다가, “선생님, 저 지금 가야 해요”라고 말하고 일어나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먼저 말을 시작하게 주도권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제가 주도권을 가지면 아이는 묻는 질문에 답만 하지만, 아이가 주도권을 가지면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인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술술술 붑니다. ‘아! 요 녀석이 요즘 이것 때문에 그렇구나.’ 감이 오죠. 하지만 참는 게 참 힘들어요,
(저도 제 아이와 이야기할 때, 1초만 더 참았으면 되는 건데 그랬나 봐요)
1초는 부족합니다. 1분은 참아야죠. 침묵을 내가 깨지 않도록 이 악물고 참아야 해요.
- 역시 기다려주지 못하는 어른의 조급함은 의도하지 않게 아이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려는 통로를 차단하기도 한다. 상담의 기본은 경청이고, 설득조차도 경청을 통해 이뤄진다는 연구가 있다. 오히려 어른이 말을 먼저 하지 않고 기다리면서 생기는 어색한 침묵으로 하여금 아이들의 말문을 열도록 해야 한다. 늘 성공하진 않겠지만, 어른들이 속성으로 뭔가를 성취하고 이끌어 내려는 노력보다 훨씬 더 어렵기 때문에 성공 여부를 떠나서 더 노력해서 시도해 볼 의미가 충분하다. 지금이 아니라면 시도해봤다는 이유로 나중에 기회를 더 쉽게 얻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