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100일 앞둔 딸에게

by 청블리쌤

수능 D-day 103일, 아침을 먹으면서 딸에게 이랬다.

엄마랑 오랜만에 휴가 같은 시간이어서 극장에 가서 데이트하려 했는데 코로나가 심상치 않아 포기해야겠다고. 고3 딸을 두고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이러니까 자기는 상관없다고.

그래서 엄마, 아빠는 너 고3이라고 특별히 의식하고 그러지 않을 거라고 하면서 이렇게 얘기를 이어갔다. 대화라기보다 그저 일방적인 아빠의 잔소리였다.




아빠와 엄마는 너 수능시험 칠 때도 실컷 놀 거다. 언니 수능 칠 때 덕분에 수능감독 빠져서 재미있게 놀 거니까 너는 너의 길을 가라고 그랬다. 아빠, 엄마는 교문 앞에 서서 하루 종일 기도하고 정성이 닿도록 뭔가를 하려는 분들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한 번씩 오늘 아침처럼 엄마가 알바하러 가는 시간이 촉박함에도 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도시락을 준비해준 것처럼 응원과 지지의 마음이 행동으로 드러날 때도 있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편한 고3 학부모인 것 같다. 심지어 딸이 공부 마치고 집에 올 때 고생했다고 안아주기는커녕 그냥 둘 다 자고 있잖니.


그러니 넌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니, 뭐니 그런 부담은 갖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우린 너의 매 순간의 선택과 여전히 너에게 무한대로 펼쳐질 기회를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응원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엄마, 아빠에게 중요한 건 너의 행복이야. 엄마, 아빠의 기대에 부응하려 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비춰진 너의 모습을 판단하지 말고, 그저 너 스스로 행복해야 한다. 그것도 도달점까지 참고 억눌렀다가 한 번에 행복한 것이 아닌, 그냥 과정 중에 모든 순간이 행복하면 좋겠다.


그건 너가 할 수 있는 일과 너의 통제권을 벗어난 일을 구별하는 데서부터 시작될 것 같아. 그냥 할 수 있는 일만 하는 거지. 다른 애들하고 비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너가 가장 큰 부담을 느끼는 8월 말 중요한 모의고사에도 너무 의미를 부여하지는 말고 너무 비장한 각오로 임하지도 말고. 그냥 넌 무심한 듯한 일상에 충실하다가 8월 시험을 맞아야 부담 없이 실력 발휘가 될 수 있고, 수능도 마찬가지로 일상처럼 맞이하게 될 거다. 8월 시험은 어차피 수능 성적이 아닌 거잖니.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N수생들의 유입으로 8월 보다 무조건 더 떨어질 거라는 비관적인 이야기들을 쏟아낼 텐데, 너가 안 믿으면 되고, 너가 통계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선택하면 되는 거다. 아니 반응을 안 하면 된다.


어쨌거나 수능 때까지는 기회가 있는 거니까 그 기회를 누리고 즐거워하렴. 물론 수능 치고 나서 그 결과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겠지. 그러나 최선을 다한 결과라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너의 행복에 이르는 길과 대책을 찾을 수 있을 거다. 최선을 다해 봐야 뭐가 부족하고, 뭘 더 보완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도 알아낼 수 있거든.


그러니 오늘 할 수 있는 기회를 활용하기만 하렴. 오늘보다 내일 덜 하게 되어도 괜찮다. 계속 기회가 있다면 기회를 안 쓸 이유는 없으니 그저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는 거지.


물론 너가 댄스 전공한다고 했을 때 너의 진심도 몰라주고 마음을 다해 응원해 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이번만이 유일한 기회라는 마음으로 널 몰아붙이지 마라. 올해 입시가 제일 좋은 기회는 맞지만, 인생 전체의 항로를 다 결정지을 유일한 기회는 아니니까.


고모도 경대 떨어져서 전문대 유아교육과를 간 것이 그 당시 실패라고 생각했지만, 이후에 유치원 근무하면서 방통대 졸업하고, 외대, 아주대 대학원 졸업해서 지금 자기가 제일 잘하는 일을 행복하게 잘 하고 있잖니. 이번에 꼭 그래야 한다는 데서 벗어날 수 있어야 과정을 누리면서 최선을 다할 수 있고, 혹 목표를 이루지 못했어도 다음 기회를 넓은 시각으로 볼 수 있단다.


너의 목표를 이번에 이루지 못한다고 또 기회가 없는 게 아니다. 물론 이런 공부를 1년 더 할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이번에 고생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지만, 일단 끝까지 해보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이라면 또 그걸 감당하게 되어 있단다.


너 스카이를 제일 많이 보내는 학교가 어딘지 아니? 성균관대다. 성균관대 학생들이 반수해서 스카이를 노리는 거지. 물론 그만큼 소위 BTS(Back To 성균관)도 많긴 하지만. 너가 혹 성균관대를 가게 되어서 BTS가 될 각오로 스카이를 노린다고 해도 성균관대면 감지덕지지 무슨 반수를 더 하냐고 핀잔 주지 않고 그저 응원할 거다. 혹 당장 서울로 대학을 못 가게 되어도 그곳에서 목표로 했던 대학의 경쟁력을 너가 쌓아갈 수 있을지 선택할 권리가 있고, 아예 한 번 더 도전해 볼 권리도 있다.


아빠는 너의 모든 그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할 거다.


지금은 걱정이 많겠지. 수능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지고 불안해지는 맘, 이해한다. 그런데 수능 직전까지 떨리고 불안한 마음이 들어도 막상 시험이 시작되면 그냥 몰입하게 되어 있단다. 감독선생님들한테는 그렇게 시간이 안 갈 수 없지만 올림픽정신으로 수능을 치러 오는 학생들이 아니라면 시간순삭처럼 느껴질 거란다. 물론 그 순간에 실수를 최소화하고, 문제 푸는 전략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기억하게 해서 효율을 최대화하는 준비가 필요하긴 하겠지만...


그 준비도 너가 하는 데까지만 하면 되는 거다.


너가 댄스부에서 공연할 때 준비가 덜 되었어도 무대에 서게 되었잖니. 물론 연습을 더 하고 준비를 더 잘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을 수 있지만, 공연하는 그 시점에 연습 부족시간만큼 의식하면서 그 순간에 몰입 못할 일은 없었잖니.


수능도 마찬가지다. 수능 전에는 진심을 다해 최선을 다하지만, 그 순간이 오면 그냥 거기까지임을 받아들이고 집중할 수 있는 거지. 혹 준비가 덜 되었더라도 내가 준비한 것만큼 다 쏟아부을 수 있다면 점수를 떠나서 그걸로 다 충족된단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너무 효율을 추구하거나 이상적인 것을 추구하지는 않도록 하렴.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집중이 잘 되어도 그걸 포기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수능 때 실력 발휘가 된단다. 요즘 얼마 전 아빠 말 때문인지, 너가 자발적으로 일찍 일어나서 애쓰고 있는 것도 공부 덜 잘 되는 시간을 포기하는 어려운 결단을 한 건데, 정말 잘하는 일이라고 칭찬해 주고 싶다. 그래서 오히려 앞으로 점점 보상을 더 받을 거다. 리듬이 자꾸 깨져서 늦게까지 자고 일어나면 그 좌절감을 감당하기가 더 어려웠을 텐데 이제 조금씩 심리적인 안정감도 찾게 될 거고...


너가 청각 등에 좀 예민해서 주변에 집중을 못 하게 하는 방해요소에 대해서도 그저 훈련이라고 생각하렴. 적어도 수능장에는 지금 독서실에서 신나게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니... 수능 때의 긴장감은 모의고사 때와 평소와는 달라서 더 몰입하게 되어 주변의 방해요소에 덜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지금 주변에 널 힘들게 하는 상황들이 널 훈련시키고 있는 거라고 발상을 전환하면 좋겠구나. 수능이라는 현실은 무균실이 아닌 데다가, 혹 너가 지금 공부를 무균실 같은 환경에서 할 수 있다고 가정하더도, 그럴수록 오히려 현실에서의 사소한 자극에도 무너질 수도 있는 거니까 그저 익숙해지고 무뎌지는 연습과 노력도 필요하단다. 세상 일이 다 그렇듯 바꿀 수 없는 환경보다 내가 바꿀 있는 나의 사소한 영역에 집중하는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며 애쓰는 것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에 대해 걱정하는 것보다 더 현명한 건 너도 알고 있잖니.


지금 너가 받아들일 것은 그저 오늘에 집중할 일뿐이란다. 내가 할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하며 집중하는 거지. 이후에도 기회는 있겠지만 지금의 기회가 가장 좋은 것이니 그 기회에 감사하는 일... 뭔가 불안하고 걱정이 된다는 건 기회가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 오히려 설렘으로 반응하게 되면 좋겠구나.


공부가 재미있거나 즐거운 과정일 수는 없지만, 그건 성취해야 할 결과 값에 대한 부담 때문인 것이고... 그저 매 순간 즐거움을 누리면 좋겠다. 후회나 아쉬움 따위 신경 쓰지 말고, 미안한 마음도 갖지 말고 그저 오늘 기회가 있다는 사실에 설렘을 누리렴.


수능이 다가온다는 건, 완벽하지 않고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걸 배운다는 의미란다. 그리고 그걸 행복이라고 규정하면 되는거구.


아빠 엄마는 어떤 결과든, 어떤 과정이든 널 무조건 응원하고 지지한다. 그저 오늘 누릴 너의 행복에만 집중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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