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의 쓸모와 글쓰기의 삶

by 청블리쌤

요즘 강의 준비를 위해 글쓰기와 관련된 건 뭐든 찾아보는 것 같다.

어린 시절 일기를 들쳐봤다.

억지로 쓴 티가 팍팍 났다. 웃겼다.

그놈의 일기숙제를 혐오하면서도 꾸역꾸역 썼다. 그러면서 밀린 일기는 여간해서는 쓰지 않는 게 자신의 원칙이라고 여기저기 밀린 일기를 쓰면서 그 말을 계속 반복했다.

솔직한 기록이 인상적이었다. 아버지의 엄격함과 완벽주의적 기대에 맞춰 살아가면서 일기장에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마구 써대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보이는 것 그대로가 나의 세상이었다.

특별한 이벤트에 일기감이 집중되어 있었다. 일기감이 없는 날은 독서기록을 적었다.


어린 나에게는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거나 특별함을 발견할 능력은 없었다. 그걸 탓할 생각은 없다.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험난한 직업작가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지금 공적 글쓰기를 이렇게 비전문가처럼이라도 지속할 수 있는 게 그 때 글쓰기 조기교육(?)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ㅋㅋ

아니 역량보다 습관의 문제인 것 같다.


방학숙제로만 쓰다가 학기 중에도 이어지기도 했고...

중학교 때는 놓치고 싶지 않은 행복한 일상을 꾹꾹 눌러 담았다. 행복을 곱씹고 키워가는 상상의 도구라서 누가 뭐라 해도 쓰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무료했던 초등학생 때와는 달리 중학교 때는 그냥 일상에서도 행복을 찾았다. 수학경시대회 학교 대표로 나가기 직전 대회를 준비한다고 며칠간 수업 안 들어가고 수학만 푼 적도 있었다. 그때 난 완전 깨달았다. 반 학생들과 수업을 하는 모든 순간과 그 평범한 일상에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는 걸. 그때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중학교 2학년짜리가 일기장에 중학교 시절이 절반이 남았니 안 남았니 하면서 인생무상이여.. 인생의 허무함이여... 이러고 있었다. 그러면서 단 한 순간의 행복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물론 절망과 좌절의 기억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보니 오히려 그래서 사소한 것에서도 행복을 찾았던 것 같다.


행복해서 글을 쓰기도 하지만, 글을 쓰면서 더 행복해지도 했다. 행복한 감정을 종이위에 구체화시켜서 눈으로도 가슴으로도 더 확인했던 탓이다. 그래서 아직 펼쳐보지 못한 책의 다음 페이지처럼 이후의 행복이 더 궁금해지고 기대가 되기도 했다.


빈 노트를 들고 인적이 없는 학교 구석에 폼 잡고 앉아서 그당시 내게 실존하지도 않은 고독을 되씹으며 시인인 된 것처럼 글을 끄적이기도 했다. 뭘 해도 내가 특별하게 느껴졌던 시기였다. 그때 했던 사랑과 그때 받았던 관심과 친구들과의 뜨거운 우정이 오늘 나의 감성의 대부분을 차지할 수도 있을지도. 그리고 그 과정도 글쓰기를 통해서 엮어가고 형성해갔다.


책 하나를 읽고 나서는 그 감동을 주체하지 못할 것처럼, 그 책의 세상이 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온몸으로 반응했다. 책 하나로 난 온전한 세상 하나를 마주했다. 지금은 수십 권을 읽어야 느낄 수 있는 전율을 그 때는 사소한 구절 하나에 온몸이 떨리기도 했다.

중2 때 <테스>를 읽으면서 차오르는 분노와 슬픔으로 그 세상을 살고 있는 듯 반응하기도 했다. 삶에 대해서 그 현실의 무게도 모르면서 세상을 다 알 것처럼...

<쿠오바디스>의 순교자 삶을 간접체험하고 감히 그 무게를 다 알 것처럼 반응하면서 독후감대회에서 발표까지 했던 생각이 난다. 학교에서는 삶의 실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철없는 어린아이에게 훈계나 비난 대신 상을 주어 격려했다. 교만하게 될 위험을 무릅쓰고 난 덕분에 더 열심히 삶에 대해 고뇌하는 듯한 깊은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을 탐독하면서, 인격 수련장이라는 나만의 노트를 만들기도 했다. 친구들이 보는 나의 장점과 단점과 고칠 점들을 취재하러 다니면서 나 자신을 돌아봤다. 난 게으르고 부족함 투성이였지만 적어도 타인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만큼은 멀쩡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 노력과 애씀이 의미 없지는 않았다. 나의 느낌과 본능에만 충실하지 않고, 잠시 멈춰서 다른 사람들을 살피고 돌아볼 의도적인 기회가 되었던 탓이다.


위선과 진정성 있는 정체성 사이에 난 늘 줄다리기를 했다. 부족한 모습은 당장 급한 돈을 가불해 받듯이 일단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나의 모습을 전시하듯 보여주고 서서히 그 모습이 되도록 애쓰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감수성 예민한 시기를 지났는데.. 훗날에 난 알았다.

인간은 위선으로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사실을... 하는 척하다 보면 실제로 그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그 때는 누구의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 막연하게 믿고 있었던 거다.


대학교 1학년 때, 동기 한 명이 일기를 쓸 필요가 없는 거라는 논리를 내게 펼친 적이 있다. 어차피 인상적인 일은 일기를 쓰지 않아도 기억이 날 거고, 그 정도의 일이 아니라면 일기를 쓸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내가 왜 쓸데없이 동기의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거지?


그때는 바로 반박할 수 없는 그 답을 삶으로 찾고 싶어서였을 것 같다. 내가 나의 논리로 그 동기를 바로 굴복시켰다면 완성된 그 사건은 더 이상 나의 기억 속에 머물지 못했을 테니...


이제는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기는 인상적인 이벤트를 적는 기록장이 아니라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생각할 기회를 가지며, 글로 자신의 감정을 끌어내기도 하는 것이고, 나의 삶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면서 삶의 방향을 정리할 수 있기도 하고, 때로는 의식의 흐름 같은 글쓰기로 나의 삶을 조련하고 이끌고 성장을 만들어 가는 거라고... 글을 써야만 성장하는 건 아니지만, 성장을 구체화시키면서 그 다음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과 동기를 얻을 수 있는 거라고... 어린아이들은 사건에만 집중하지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추상적인 상황에서도 의미를 끌어내며 평범함을 특별함으로 이끌어 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인데 그건 글쓰기로 더 확실해지는 것이라고...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나를 두고 다른 자아를 찾아 나서는 모험을 위해 글을 쓰는 거라고... 때로는 과거의 보존된 기억을 마주하며 감격에 젖고 추억 속에서 잊고 있던 가치도 끌어낼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글을 쓰는 나는 분명 이전과는 다른 나의 모습을 그려가고 있는 것이라고...


일기 예찬을 지속하기에는 난 더 이상 어린 시절처럼 일기를 쓰지 않아 민망하지만...


오히려 어린 시절처럼 특별한 계기나 깨달음이 있어야 글을 쓰고 있지만...

정말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면 일기보다는 이렇게 공적 글쓰기로 생각을 나누는 게 더 당연한 듯한 나의 일상이 되었지만...


그저 어느 때에라도 쓸 수 있다는 것이 축복임을 이미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사소한 울림이라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덤으로 얻는 보너스 같은 축복인 것도...


초등학교 6학년 일기 일부

- 밀린 일기는 쓰지 않는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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