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삶으로 학생들을 만나다

by 청블리쌤


항공기 비상시 보호자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쓰고 나서 어린이를 도와주라는 권고 사항이 있다. 부모로서 아이를 먼저 생각하는 본능을 뒤집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게 맞는 말이다. 더 오래, 더 확실하게 도와주기 위해서 내가 먼저 충전하는 과정이 필요한 거다.

때로는 자신을 희생하고 나서 방전된 상태로 아이들을 대하게 되면 오히려 도움이 안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영어과 후배 교사가 이상적인 교육의 실현을 위해 한 학기 동안 과정형 수행평가로 전교생의 글쓰기를 단계별로 첨삭지도를 하면서 진행하다가 번아웃 가까운 증상이 왔다고 해서 위로와 격려를 해 준 적이 있다.

내게 힘이 남아 있지 않고 웃을 수 있는 여력이 없다면, 아이들이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나의 사랑의 크기와는 별개다. 그러면 오히려 존재 자체도 부담이 될 수도 있는 거다.


<글쓰기와 행복교육 >강의 준비를 하면서 이제까지 블로그에 정리했던 독서노트와 교육노트를 다시 읽고 있다. 내가 이걸 다 써서 올렸는지 놀랍기만 하다. 내 글과 느낌이 대단한 게 아니라 내가 소중하게 발췌하여 모아두었던 책의 글귀에 계속 차오르는 감동으로 행복을 느끼고 있다. 정리하여 올릴 때도 행복으로 충만했겠지만 다시 봐도 너무 좋았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교육노트에 교육 관련 도서가 아닌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었다. 난 거의 모든 도서에서 교육적 의미를 발견하려 했던 거였다. 마치 삶 자체에서 교육을 찾으려 애쓰는 것처럼.

삶과 가르침이 분리되지 않을 것처럼, 난 그런 이상적인 교사의 모델을 꿈꾸고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올렸던 글은 변화와 성장의 삶을 갈구하는 모습이었고, 행복에 겨운 모습이었다. 여기저기서 교사로서의 행운 같은 행복을 확인하는 증거를 찾아내는 듯했다.


언젠가 임용교시를 준비하던 임고생(지금은 영어교사)인 블로그 이웃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은 살아 있는 교육학책 같아요”

이보다 교사로서의 삶을 칭찬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나의 블로그에서 그런 모습의 일부라도 발견했다면, 아직 내가 완전한 그 자리에 서게 된 건 아니지만 나의 방향은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감사했다.


교육관련 도서가 아닌 곳에서도 교육적 함의를 찾는 것은 나의 직업병일 수 있겠으나 전문성을 갖춘 영어교사가 되기 전, 아이들과 교감하는 인간으로서의 교사의 모습을 갈구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나를 통해서도 세상을 보기를 바라는 나의 소망이 삶으로 드러나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편지나 수업평가를 보면 물론 수업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아이들은 인간으로서 나의 모습에대한 평가도 하고 있었다. 나의 열심에 대해서도 자극받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삶으로 가르치려는 나의 소망이 조금씩 이뤄지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난 아이들에게 영어단어공부법을 중간고사 끝난 5월쯤 이야기해 준다. 아이들이 스스로 단어 공부를 하면서 좌절을 느끼는 그 시점에 더 절실하게 내 이야기를 잘 들을 타이밍이라는 것도 있지만, 내가 전교생 이름을 다 외운 후여야 했기 때문이다. 사진대장으로 전교생 이름을 외우는 것은 단어장을 들고 단어를 외우는 것과 유사점이 많다. 난 아이들에게 나이가 들어 노화가 진행되어도 교육적 신념과 학생들에 대한 사랑으로 거의 두 달 동안 이렇게 열심히 이름을 외우며 다가간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시간 간격을 두고 반복해서 망각하는 단어 암기법을 이야기해 주면, 아이들은 그저 평범한 조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거기서 용기를 얻기도 하고 따라서 열심히 하고 싶다는 동기를 얻기도 한다. 일종의 삶으로 전하는 메시지인 셈이다.


난 아이들의 편지나 개인적으로 진행하는 익명의 수업평가, 공식적인 교원평가 등에서 그 사실을 확인하며 너무 행복해한다. 나의 사소한 몸짓과 삶의 일부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에 대해 전율하면서.


아이들이 나의 수업에 대해서도 기존의 수업과의 차별점을 찾는다. 중학교 와서는 아직 추상적인 것에 대한 이해를 갖춰가는 과정에 있는 아이들이어서 고등학교보다는 덜 가닿겠지만 수업에서 아이들과 교감하고 감성과 만나는 방법을 찾는다.


수업 외에도 삶의 이야기를 “잔소리”라는 명분으로 해 준다. 교사가 교과를 가르치는 것에 제한될 이유가 없다. 인생 멘토가 되어주어야 한다. 물론 모두에게 그럴 수는 없다. 교과 교사로 선을 긋는 학생들도 있으니 나의 마음이 가닿는 학생들에 한해서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멘토는 인간적인 친밀함이 우선이다. 레포 형성이 되고 교감이 이뤄져야 진짜 멘토로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일단 멘토가 되면 멘토로서 역할을 자꾸 줄여가고 최소화하면서 학생들 스스로 성장할 무대를 마련해 줄 기회가 생긴다.


교사가 먼저 아파야 하고, 먼저 행복해야 한다. 교사의 모든 감정과 개인적인 느낌이 아이들에게 다 전달되지 않도록 때로는 애를 써야 하지만, 아이들에게 필요하고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들 때는 교사의 그 아픔이 아이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로 다가갈 수 있고, 교사의 행복이 아이들의 긍정적인 삶의 자세로 다가가기도 한다고 믿는다. 실제로 그런 교육의 영향을 나는 삶으로 체험하면서 확인하고 있다.


진정한 교사의 역할을 찾는다면 삶의 모든 부분에서 아이들과 만날 준비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의무감이 아니라 그저 행복하면 되는 매일의 일상일 수 있어서 난 의외로 그렇게 많은 노력을 억지로 쏟아붓지는 않는다.

내가 좋아서 읽게 되는 책과 드라마나 영화와 음악으로도 난 학생들을 만나고 그들을 이해하고 소통한다.

나를 통해 행복을 찾고, 삶을 배워가고, 성장하고 변화될 아이들을 생각하며 매 순간 설렌다.


난 적어도 교사로서의 나의 행복감에 있어서 그 누구도 부럽지 않다.

교육에 대한 나의 열심과 열정을 칭찬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나의 열정페이는 내가 누리는 아이들로부터 받는 사랑과 행복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글을 쓰다가 생각난 제자...

아래 링크는 이 학생이 학교 문집에 기고해서 실린 글이다.

내가 학교를 옮긴 해, 이 학생이 고등학교 2학년일 때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를 국어시간에 배우다가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내가 그리워서였다면서 나와 친했던 그 시간의 국어선생님이 소식을 전해왔다. 수업시간에 바로 영상통화로 연결하려는 유혹을 겨우 참았다면서...

이 학생이 왜 김춘수의 시를 보면서 내 생각이 났는지는 아래 링크의 글을 보면 답이 나온다.

이후 이 학생은 지금 예비교사로 잘 지내고 있다고 내게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다.


https://m.blog.naver.com/chungvelysam/221384744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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