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다는 착각

by 청블리쌤

원제 : Laziness Does Not Exist(게으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큰 딸과 아내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책이다.

큰 딸은 제목을 보자마자 저게 사실이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책 제목부터가 이미 큰 위로를 주고 있다.


사람들마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게으름을 죄악시하며 늘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물론, 적어도 남들에게 비춰진 자신의 모습이 게으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실제로 큰 위로가 될 책이다. 본성상 게으르지 않을 수가 없는데 대놓고 게으르지 않으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는가?


이 책 덕분에 게으름 예찬까지는 아니지만, 성취중심의 사회에서 점차 잃어가는 삶의 여백에 대해서 잠시 멈춰서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었다.


이 책의 모든 메시지가 다 공감되지는 않았지만, 게으름은 “죄책감 없는 온전한 안식이나 휴식”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내게 주어질 “낭비”로 정의될 수많은 즐거운 순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왕 쉴 거면, 눈치 보지 말고 온전히 쉴 일이다.


우리 학교에서 나와 영어멘토링을 하는 학생 한 명이 가족 여행 가서 바닷가를 바라보면서 내 영어문법 동영상강의를 보았다고 했다. 난 최고로 낭만적인 동영상강의였겠다고, 그 의지를 칭찬해 주긴 했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고등학교 학창 시절의 나도 그러했었기 때문이다. 휴식을 반납하며 게으름의 근처에도 가지 않는 것이 성취를 보장하는 프리패스인 줄로만 알았다.


밥을 먹으면서도 공부할 것을 펴놓았었으니 음식의 맛을 제대로 음미할 사소한 즐거움조차 포기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충분히 휴식을 누리면서 충전의 기회를 가지면서 했다면 더 즐겁고 재미있게 하면서도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실력을 확인하고 싶어 외적인 증명을 하려던 그때 나의 모습을 학교에서 학생들을 통해 자주 목격한다. 가슴 아픈 일이다.


그래서 내 딸들은 아빠가 그 극단을 살았던 덕분에 사소한 순간까지 행복을 누리긴 했겠지만, 오히려 “여기가 좋사오니”하면서 게으름의 특권을 누리면서 바로바로 생업(?)으로 돌아오지 않는 부작용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딸들이 느꼈던 행복을 생각하면 난 그 과정이 “낭비”가 아니었다고 확신한다.


이 책에서 확인한 몇 가지 구절을 나의 생각을 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소개하려 한다.


게으르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지쳐 있고 위로를 받고 싶은 분들은 책의 구체적인 사례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시길..



<게으르다는 착각, 그러나 우리 삶에 필요한 게으름>

‘게으름이라는 거짓’은 우리 문화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신념체계다. 이 신념 체계 때문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믿는다.

속으로 나는 게으르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면의 게으름을 극복하기 위해 항상 극도로 열심히 일해야 한다.

나의 가치는 나의 생산성을 통해 얻어진다.

일이 삶의 중심이다.

성취하지 못하고 열심히 할 동기가 없는 사람은 부도덕하다.

게으름은 사실 강력한 자기 보존 본능이다.

동기가 없고 방향을 잃거나 ‘게으르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평화와 고요함을 애타게 찾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를 게으르게 만드는,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나태한 힘 따위는 없다. 한계가 있고 휴식이 필요한 것은 죄악이 아니다. 피곤하고 동기를 느끼지 못하는 게 자기 가치를 위협하지 않는다.

게으르다는 느낌은 일상의 요구를 최적의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지 못하다는 신호다.

우리가 게으름으로 판단하는 겉보기에 ‘나쁜’ 행동들은 실제로 우리 삶에서 무언가가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강력한 신호다.


통찰과 창의력의 순간들은 억지로 한다고 해서 나오지 않는다. 정신 활동을 하지 않는 기간이 필요하다.. 좋은 아이디어들은 종종 아이디어를 내려고 애쓰는 것을 중단했을 때, 예컨대 샤워 중이거나 한가롭게 산책을 하는 동안 떠오른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뇌가 쉬는 동안 머릿속에서 조용히 무의식적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 생산적인 휴식 시간을 ‘부화기 incubation period’라고 부른다.




<덜 하는 것이 우리를 치유하는 원리>

표현적 글쓰기 (스트레스와 우울에 도움 되는 글쓰기)- by 페니베이커

1) 방해받지 않을 시간과 장소 찾기

2) 최소 20분간 계속 쓰기

3) 맞춤법, 문법 신경 안 쓰기

4) 오직 자신을 위해 쓰기

5) 매우 사적이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 쓰기

6) 현재 다룰 수 있는 사건과 상황에 대해서만 쓰기

그리고는 20분 후 글 쓴 종이 버리기


* 효과가 있는 이유? 경시하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 자수성가한 사람과 강인한 사람 미화하는 세상에서의 문화적 메시지와 압박 때문에 우리의 욕구를 간과하도록 배움. 심지어 나약하다는 느낌이나 힘든 감정을 품었다는 이유로 스스로 혐오하기도 함. 표현적 글쓰기는 종일 꾹꾹 참고 발설하지 않은 취약한 측면을 찾아내고 경청할 기회를 주기 때문에 효과가 있음.


또 다른 사람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점도 중요함. 타인이 볼 글을 쓸 때, 우리는 스스로 검열하고 글이 충분히 좋은지에 관심을 두게 됨. 두서없고, 누가 읽기에도 적합하지 않은 글을 쓴 후 버리면 됨. 이것은 자신이 가진 모든 감정과 교감하는 데 도움을 줌.




<게임이 되어버린 삶>

SNS의 좋아요와 팔로워수 기준으로 성공을 측정할 수 있다. 이러한 식으로 타인과 연결된 상태를 유지하는 기본적인 행동마저도 간절히 원하는, 성취에 목매는 과정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주목과 좋아요, 팔로워, 영향력을 갈망한다. 그리고 이런 갈망은 거의 모든 것으로부터 즐거움을 앗아간다.




<성취에 목맬 때 경험은 어떻게 망가지는가>

프레드의 연구에서 기쁨과 의미를 찾는 일은 모두 ‘음미savoring’로 귀결된다. 음미란 긍정적인 경험을 지금 이 순간 깊게 만끽하는 과정이다. 음미는 세 가지 시점에 나타난다. 우선, 다가올 사건을 낙관적인 관점으로 예상할 때 나타난다. 그런 후 긍정적인 순간이 일어나는 동안 그것을 온전히 인식할 때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그 경험이 끝난 후 경외감이나 감사한 마음으로 그것을 되돌아볼 때 나타난다.

대상을 해치워야 할 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천천히 유념하며 대하기만 하면 된다.

“딴생각을 하면서 무언가를 음미할 수는 없습니다. 피자를 먹으면서 과제물을 채점한다면 피자가 얼마나 맛있는지 인식하는 걸 완전히 잊게 됩니다.”


음미의 반대는 ‘가라앉히기 dampening’다. 그것은 긍정적인 경험에 집중하지 못하고 미래에 대해 걱정하거나 무시해야 할 소소한 불완전한 면에 집중해 긍정적인 경험에 찬물을 끼얹을 때 나타난다.

게으름은 행복감을 약화시키고 비참함을 강화하는 네 가지 사고 습관을 조장한다.

1) 억압 : 수줍음, 겸손 혹은 두려움 때문에 긍정적인 감정을 숨기거나 억누름

2) 주의분산 : 이 순간의 즐거움을 무시하고 다른 것들에 신경 씀

3) 트집 잡기 : 경험의 긍정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부족한 것이나 더 나아져야 할 면에 집중

4) 부정적인 시간 여행 :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부정적인 사건을 예상하거나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해 곱씹음.


당신의 존재가 즐거움 없이 달성해야만 하는 의무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당신은 인생을 음미할 수도, 심지어 자세하게 기억할 수도 없다.




<행복을 음미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고습관>

1) 행동으로 나타내기 : 행복감을 행동으로 보여주기

2) 지금 이 순간에 머물기 :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기(멀티태스킹 안 하기)

3) 소통의 기회로 이용하기 : 긍정적 경험에 대해 타인과 소통하기. 좋은 소식 타인과 공유

4) 긍정적인 시간 여행 : 행복한 기억 회상, 사람들에게 과거에 공유한 기쁜 일 상기시키기. 바라는 미래의 모습 계획하고 예상하기




<잘하지 못하는 일을 해라>

습관적으로 과도하게 성취하려 하고 칭찬과 인정을 추구한다면, 잘 못하는 일을 몹시 싫어할 것이다.

무언가를 잘 못하는 것은 게으름이라는 거짓에서 벗어나는 훌륭한 방법이다. 실패를 인정할 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할 수 없는) 일과 상관없이 삶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배운다. 성공할 가망이 전혀 없는 활동을 추구하면, 결과물이 아닌 과정을 즐기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비생산적이고 성공하지 못하는 것에 마음 편히 우리 시간을 ‘낭비’하면, 사회가 우리에게 부여한 체크리스트를 지워나가는 대신 자신만의 목표와 우선순위를 선택하는 자유가 생긴다.


핼버스탬은 이렇게 말한다. “‘실패’는 완전한 패배다. 그리고 패배함으로써 삶, 사랑, 예술, 존재를 위한 다른 목표들을 상상할 수 있다.” 즉, 실패할 때 우리는 타인의 기대를 따르는 대신 무엇을 우리의 진정한 목표와 우선 사항으로 삼을지 선택할 자유가 생긴다. 게으름이라는 거짓은 우리가 잘하는 분야에서 계속 생산적이길 원한다. 그래서 잘 못하는 활동에 빠져 있으면, 우리는 성공해야 한다는 외적 압박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에 의해 동기 부여가 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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